2008/10/07 11:50

'PD수첩'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채훈 PD의 종점에서] ‘PD수첩’ 후배들에게

<PD수첩> 정말 혼났다. 촛불 뜨거웠던 봄부터 지금 무르익는 가을까지 정말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PD수첩>은 살아서 뚜벅뚜벅 제 길을 가고 있다.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아이템을 회피하는 ‘자기검열’의 덫에도 빠지지 않았고, 우쭐하여 남의 말에 귀 닫는 ‘소영웅주의’에도 빠지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PD수첩>은 최근 겪은 혹독한 시련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거라고 믿는다.

8월 12일의 사과방송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날 확대간부회의 엄기영 사장의 발언 중 “보도ㆍ시사프로그램의 정확성과 공정성,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이른 시일 안에 보다 강화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 “데스크 기능을 강화하고 법률전문가와 사전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타율’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옳지 않다. 방송사의 ‘내적 규제’라 할지라도 자율성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PD 개개인에게는 ‘타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엄 사장이 밝힌 후속조치는 전혀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시련을 통해 PD들이 더욱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무장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검열’과 다르다. 자율성과 창의성에 덧붙여 ‘무한 책임’과 ‘절대 완성도’를 스스로 추구함으로써 ‘타율’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모든 PD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이번에 다시 철저하게 학습했으므로 결국 ‘전화위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종점에 도착한 PD의 야단맞은 기억이 혹시 재미있을지? 꼭 20년전, 1988년 봄, 입봉 프로그램으로 <명작의 무대 -만해 한용운>을 만들었다. 당시 노조 창립 초기라 매우 과격하게 뛰어다녔다. 선배들이 볼 때는 애송이 PD가 프로그램에 전념 안 하고 딴짓하는 게 게 몹시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당시 최아무개 부장께서는 사전 시사 때 100가지 가까운 지적을 했다.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디오 레블이 여기는 높고 저기는 낮다, 인터뷰 끝나는 지점 1/15초 짧다, 이 사람 인터뷰는 불필요하다, 이 곳 그림 순서 바꾸는 게 좋겠다, 자막 디자인이 불만스럽다” 등등. 프로그램의 흠을 시시콜콜 지적하는 선배는 군부독재 유산, 그 화신으로 보였다. 하지만 “프로그램 못 하는 X이 노조한다”는 비난이 제일 듣기 싫었으므로 묵묵히 모두 고쳤다. 너무 힘들어서 사람 안 보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혼난 덕분에 입봉 초기에 매우 좋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뒤 <명작의 무대>를 열 편 가까이 만들면서 매번 “지난번보다 좋아졌다”는 선배들의 평을 들었으니까. 어떤 멋진 상을 받은 것보다 당시의 칭찬이 PD로서 더 자랑스럽다. 최아무개 선배께 뒤늦게나마 감사드린다.   

또 하나, 2001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보도연맹’을 만들 때 야단맞은 기억. 당시 학살 가해자 측에 있었던 어른들 인터뷰 할 때마다 “요즘 잣대로 당시 상황을 재단하지 말라”고 혼났다. 특히 학살 현장 지휘관 김창룡의 직속상관이었던 장도영(한국전쟁 당시 육본 정보국장)은 “여보셔, 그때 어떤 상황인지 알아? 앞에서 적들이 밀려오고 있어.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거야, 알겠소?”라며 길길이 뛰었다. “빨갱이한테 동조할 사람을 어떻게 그냥 둘 수 있었겠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장도영에게 야단맞은 덕분에 당시 상황이 시각적으로 더 잘 보이게 됐고, 덕분에 프로그램이 좀 나아진 것 같다. 그분께도 감사드린다. (당시 한홍석 PD가 장도영을 인터뷰하느라 나 대신 야단맞았지만 촬영 화면을 보니 나한테도 야단치고 있었다.)

2002년 국가보안법 다큐멘터리 만들 때 정아무개 팀장(존경하는 동기이자 방송계에 이름을 날리는 명문장가)에게 혼난 것도 기억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에 반대되는 입장을 균형 있게 넣어서 편집했지만 다 보고 나면 결국 ‘폐지’ 쪽 손을 들어 준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정 팀장은 “보수적인 사람이 봐도 반박할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며 심각하게 질책했다. 당시 나는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으므로 “네가 만들어 보라”며 심술을 부렸다. 한쪽은 인권을 중요시하고 한쪽은 체제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므로 양쪽이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는 것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국보법 존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최대한 진지하게 성의껏 다루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고, 정 팀장은 그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팀장 말을 안 들은 결과 극우단체들이 이 프로그램을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철이 안 들었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PD수첩>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치검찰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하고 있다. <PD수첩> 팀은 작은 실수를 빌미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몰상식한 권력과 국가기구에 아직도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사내외의 오해와 편견에도 흔들림 없어야 한다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얻은 게 있다. <PD수첩>은 더 좋은 프로그램이 될 게 분명하다는 점이다. 최근 방송한 ‘오체투지’에서는 ‘소통’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를 차분히 되짚어보는 넉넉함을 보여주었고, ‘유모차부대’와 ‘국가보안법’ 등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아이템을 방송하는 의연함을 보여주었다. 이슈를 따라다니는 탐사 프로그램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사랑과 자유, 소통과 공존, 평등과 평화 등 인간 보편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깊이를 더했기 때문이다. 시련을 통해 PD들이 더욱 성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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