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8 15:29

“SBS 예능,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때”


박정훈 SBS 예능 총괄 CP

조급증인가, 기획의 실패인가. 최근 2~3년 간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는 SBS 예능 프로그램이 ‘대수술’에 들어간다. 지난 2월 예능 총괄 CP로 자리를 옮긴 박정훈 국장은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겠다는 계획이다.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고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시청률이 나오던 <솔로몬의 선택>, <도전 1000곡>, <진실게임> 등 장수 프로그램도 예외는 없다. 오히려 장수 프로그램들은 제일 먼저 변화의 시험대에 올랐다. 기존 틀은 유지하면서 조금씩 수정이 가해지는 형태다.

   
▲ 박정훈 SBS 예능 총괄 CP
지난 6일 첫 시험대에  <도전! 1000곡>은 <도전 1000곡! 한소절 노래방>으로 바뀌었다. 21일 <솔로몬의 선택> 역시 진행자를 임성훈에서 김용만으로 교체돼  <TV 로펌 솔로몬>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법률 정보 버라이어티로 거듭난다. <진실게임> 역시 현재 변화를 모색중이다.

이번 5월 개편에서도 두 개의 프로그램이 폐지된다. 토요일 저녁 MBC <무한도전>과 경쟁했던 <라인업>과 월요일 저녁 방송되던 <대결 8대 1>이다. 특히 <라인업>은 방송 7개월 만에, <대결 8대 1>은 지난해 10월 방송 5회 만에 종영됐다 1월 부활했으나 또 다시  폐지가 결정됐다. <일요일이 좋다>의 한 코너였던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 역시 폐지가 잠정 결정됐다.

지나치게 프로그램 교체 주기가 짧아 SBS가 조급증에 걸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박 국장은 오히려 “SBS 예능은 변화의 시점을 놓쳐 침체에 빠진 것”이라며 ‘변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SBS 예능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 하는 이유는 조급증 때문이라기보다 “기획을 탄탄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무한도전>처럼 오랜 시간을 줘 시청률이 올라가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도 훨씬 많다는 것. 결국 핵심은 ‘기획력’이라고 말하는 박 국장은 “시간이 지나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되는 프로그램들은 빨리 정리해줘야 한다”며 “그러한 판단을 하는 일이 예능국장이란 자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 트렌드, 연출자의 능력, 조직적 지원, 출연자 자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판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예능 총괄 CP가 된 이후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시간을 되도록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 국장은 “2월 예능 총괄 CP가 된 이후 ‘장수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 팀’을 만들어 두 달 정도의 기획 시간을 줬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새로 준비하고 있는 두 개의 프로그램도 약 4~5개월 정도의 기획 기간을 거쳐 여름쯤 방송할 계획을 잡고 있다.

박 국장은 앞으로 SBS 예능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해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얼리티의 기준은 시청자. 그는 “시청자가 리얼리티로 느끼는 상황을 만들어야 웃음과 감동이 있다”며 “시청자와의 ‘공감’, 정서의 공유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밀어부칠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자는 항상 옳다”.

“‘연출자의 감옥’에 갇힐까봐 두렵다”

박 국장은 <잘 먹고 잘 사는 법>, <환경의 역습>, <생명의 기적>, <육체와의 전쟁> 등으로 이름을 알린 교양 PD 출신으로 편성기획팀장으로 근무하다 2월 예능 총괄 CP로 자리를 옮겼다. 예능 프로그램의 연출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을까.

박 국장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어렵다”며 “예능국에 와서 모르는 것도 알게 되고, 예능이 굉장히 어려운 장르라는 것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예능을 전쟁터로 따지면 최전선의 격전장”이라고 표현했다. 연예인 자원은 한정돼 있고, 방송 3사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많아 출연자 중복 문제도 생기고, 시간대가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양, 예능이란 장르 구분은 무의미하다”며 “결국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같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일수록 오히려 시청자의 마음과 멀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웃찾사> 연출자가 재미를 판단하는 것보다 일반 시청자가 재미를 판단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고 말한다. 연출자는 녹화현장에서 수많은 함성 속에 쌓여 있어 자기도 모르게 재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일종의 ‘연출자의 감옥’이다. 그런데 오디오, 음악환경, 열기가 없는 곳에서 그냥 TV로 방송을 보면 한심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방향을 세울 수 있다. 자기 객관화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박 국장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신도 그 감옥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란 생각 때문에 두렵다.

“처음 예능국에 왔을 땐 하나도 안 웃기던 프로그램이 지금 보면 재미있다. 그래서 나도 그 감옥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걸 경계하고 있다. 그건 시청자와 멀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시청자 입장에서 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음은 박정훈 SBS 예능 총괄 CP와의 일문일답.

-최근 몇 년 간 SBS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SBS 예능이 침체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변화의 시점을 놓쳤기 때문이다. 변화를 좀 더 일찍 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장수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형식은 살리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을 취할 생각이다. <이적의 음악공간>을 폐지하고 <김정은의 초콜릿>을 신설한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도전 1000곡>, <솔로몬의 선택>에 변화를 줬다. <퀴즈! 육감대결>의 경우도 27일부터 형식 업그레이드 된다. 

-<라인업>을 폐지하고 <스타킹>이 편성된다. <스타킹>을 선택한 이유는?

“<스타킹>은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버라이어티로 굉장히 SBS다운 버라이어티다. 예능 프로그램 대부분이 시민 참여가 아닌 연예인들이 나와서 하는 버라이어티다. <스타킹>은 독특한 포맷을 갖고 있다. 처음엔 장기자랑을 보여줬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휴머니즘이 드러나는 코너로 바뀌었다. <스타킹>의 ‘딸랑이거’의 경우 재주가 안 돼도 연예인과 시민이 같이 어울리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토요일에 계속 리얼 버라이어티를 넣을까 고민하다가 SBS의 독특한 버라이어티를 넣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스타킹> 시간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있다! 없다?> 역시 연예인 오락쇼가 아니라 현장을 좇는 프로그램이다.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온가족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개편으로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연령층과 상관없이 모두 편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형태를 바꿀 예정이다.”

-<스타킹>이 <무한도전>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일반인들의 재주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스타킹>을 볼 것이다. <스타킹>은 <무한도전>과는 시청층이 다르다. 유사 프로그램보다는 차별화하는 것이 시청자들의 선택폭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본다. <스타킹>을 <라인업> 시간대에 편성하려던 것은 편성기획팀에 있을 때부터 갖던 생각이었고, 여기 와서 실행한 것이다.”

-<라인업> 시청률 부진의 이유는 뭐였다고 보나?
 
“시간대가 문제였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이미 인기를 얻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다보니 비슷한 포맷이란 비판이 나왔다. <라인업>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예 새로운 형식으로 하자는 것이 <미스터리 특공대>다. 발상의 전환을 해서 차별화시키자는 것이다.

-MBC 하면 <무한도전>이 떠오르고, KBS는 <1박 2일>이나 <해피투게더> 등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는데 SBS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없다.

“이제 대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개선책을 찾는데 타이밍을 놓쳐 경쟁력이 낮아진 것이다. 프로그램이 노화됐다. 그래서 예능국 오고나서 <웃찾사>도 1~2개 코너 빼고 다 바꿨다. <웃찾사> 개그가 유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가급적 유치하지 않은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코너를 개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신인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24일까지 신인을 선발해 새피를 투입할 예정이다. <웃찾사>의 전성기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개그는 트렌드도 변하고, 시청자 취향도 변하는 것 같다. 그에 맞춰 변신하려고 한다. 프로그램이 너무 자주 변해도 문제지만, 너무 안 변해도 문제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변화가 중요하긴 하지만, SBS 예능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수명이 짧은 것 아닌가. <라인업>의 경우도 7개월만에 폐지됐고, <대결 8대 1>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이번에 폐지되고 프로그램이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새 프로그램은 뭐든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최대한 오랜 기간 노출해 익숙해지게 만들어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 모범답안일 것이다. 그러나 판단을 할 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형식인가를 봐야 한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도 훨씬 많다. 프로그램 생명력의 핵심은 기획력이다. 기획력과 제작력이 괜찮아서 시간을 기다려주면 된다고 판단되는 게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어려울 것이라 판단되는 것도 있다. 그런 건 빨리 정리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하는 일이 예능국장이란 자리인 것 같다. 예능국장은 사회 트렌드, 연출자의 능력, 조직적 지원, 출연자 자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프로그램을 계속 밀어야겠다는 확신이 서면 미는 거고, 그러한 확신이 안 설 때는 판단을 빨리 내려줘야 한다. 안 되는 것을 갖고 다듬는다고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동안 SBS 예능 프로그램의 수명이 짧았다고 보나.

“기획을 탄탄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준비가 탄탄하지 못했다. 물론 회사에서 빠른 시간에 결정하고 프로그램을 폐지해 생기는 폐단도 없지 않다. 그러나 <라인업>의 경우를 예로 들면, 7개월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고 본다. 시청률이 3~4%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시청자에게 외면받았다는 것이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제작진에겐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제작진, 출연진들 모두 최선을 다 했다. 물론 아쉬움 있겠지만 최선을 다 했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해 <라인업> 출연자들도 여한이 없다고 얘기하더라.”

-그동안 SBS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이 탄탄하지 못했던 이유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과거에는 2주만에 앞팀과 뒷팀이 교대하기도 했다. 이번엔 프로그램을 재포장하는 데도 두 달 정도의 기획 시간을 줬다. 물론 새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잘 나올 것으로 본다. 예능국 오고나서 장수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팀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문제를 분석하고 업그레이드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그리고 PD들과 함께 많은 회의를 거쳐 나름대로의 형식을 바꿔 들어가는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SBS 예능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찾아 보지 않는 것 같다.

“시청자의 기대수준을 만족시켜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한 번 외면당한 프로그램은 다시 되돌리기가 굉장히 어렵고 회복도 어렵다. 그래서 뜨는 데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기대수준을 갖고 보니 기대 수준 충족시켜주면 그 기대감을 갖고 계속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예능은 매번 지속적으로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해서 정말 힘들다.”

-예능국장 되면서 책임PD들도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됐는데 이유는 무언가.
 
“PD의 꽃은 연출이다. 연출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거다. 선배가 연출하면 조직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다. 누구나 연출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그런 문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배일수록 연출해야 한다. 국장이 최고의 보직이 아니라 연출자가 최고의 보직이다. 모든 시스템도 다 연출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5명의 책임 PD 가운데 3명이 연출하면서 책임 PD 하고 있다. 모든 책임 PD가 연출하면 행정 공백이 생기니 2명은 연출하지 않고, 3명은 연출하도록 좀 바뀌었다. 과거의 CP급은 연출로 전환했다.”

-편성기획팀장을 하다 예능국장이 돼 두 달 반 정도 지났는데 실제 일해보니 어떤가.
 
“피곤하다.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어렵다. 편성기획팀에 있어서 대략적으로는 알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잘 몰랐다. 예능국 와서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예능이 굉장히 어려운 장르라는 것도 느꼈다. 연예인 자원은 한정돼 있고 방송 3사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많다. 그래서 출연자 중복 문제도 생기는 것이고, 시간대가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다. 교양은 맞편성도 거의 없고, 한번 틀이 잡히면 그대로 가는 편이다. 예능국은 전쟁터로 따지면 최전선의 격전장이다.”

-교양 PD 출신이라 예능 프로그램 연출 경험이 없는데.

“교양, 예능이란 장르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런 게 어디 있나. 예능이든 교양이든  결국 시청자들에게 즐거움 주는 것은 같다. 예능 프로그램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갑자기 <일요일이 좋다> 버라이어티 연출을 하라고 했으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혼란스럽지 않았던 것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전문성이 꼭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일수록 시청자의 마음과 멀어진다. <웃찾사> 연출자가 재미를 판단하는 것보다 일반 시청자가 재미를 판단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 연출자는 녹화현장에서 수많은 함성 속에 쌓여 있다. 일종의 연출자의 감옥이다. 그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재밌다고 생각하게 된다. 오디오, 음악환경, 열기가 없는 곳에서 그냥 TV로 방송을 보면 한심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방향을 세울 수 있다. 자기 객관화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금 두려운 건 처음 예능국에 왔을 땐 하나도 안 웃기던 프로그램이 지금 보면 재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감옥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런 걸 경계하고 있다. 그건 시청자와 멀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시청자 입장에서 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SBS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나.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거다. 시청자가 리얼리티로 느끼느냐 아니냐가 리얼리티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경우 연예인끼리 결혼했다는 설정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을 더 리얼리티로 느낀다. 결혼한 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티격태격하는 것들은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느끼는 리얼리티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웃음과 감동이 있다. 공감을 못하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시청자와의 ‘공감’, 정서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시청자와의 정서 공유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밀어부칠 것이다. 시청자는 항상 옳다.”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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