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2 10:15

“‘대장금’ 효과, 외교관 수백명도 못 해냈죠”


[인터뷰]책 ‘꿈의 왕국을 세워라’ 출간한 이병훈 PD

〈대장금〉과 〈이산〉의 이병훈 PD가 책 ‘꿈의 왕국을 세워라’를 펴냈다. 연출 인생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펴낸 책에서 그는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PD는 “시청자들에게는 드라마의 제작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었고, 후배 연출자들을 포함한 방송 관계자들에게는 내가 체험했던 시행착오를 들려주면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에는 ‘고통의 강’이라 불리는 캐스팅의 어려움과 그에 관한 비화들이 실려 흥미를 끌었다. 특히 〈허준〉의 황수정, 〈대장금〉의 이영애가 모두 캐스팅 7순위였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지금이야 이영애가 아닌 ‘장금이’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이병훈 PD가 〈허준〉부터 〈상도〉, 〈대장금〉까지 첫 순위로 생각했던 여배우는 바로 송윤아였다고. 그러나 그녀는 “끝내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송윤아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지금도 주변에선 반대하지만, 그래도 송윤아와 한번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젠 나이가 좀 안 맞아 갈등이 되긴 하지만, 송윤아에 대한 미련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닙니다.(웃음)”

 
 
▲ '대장금' '이산' 등을 연출한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 ⓒPD저널
40여년에 걸친 연출 인생 동안, 그에게 사극은 거의 전부였다. 〈암행어사〉,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부터 사극의 새바람을 일으킨 〈허준〉과 〈대장금〉, 그리고 〈이산〉까지. 그는 사극을 통해 숱한 왕조들을 재건했고, 이를 통해 ‘드라마 왕국’을 건설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극의 거장’이라고 한다. 그 역시 “내게 맞는 옷은 사극”이라고 말한다. 

물론 ‘거장’이란 칭호는 때때로 부담스럽다. 시청자들의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 냉혹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먼젓번보다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에 시달리지만, 방송이 나가고 찬사를 받을 때의 엄청난 희열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즐거움 때문에 기꺼이 고통을 감수한다는 그다.

한 편의 사극은 청소년들이 잘 모르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역사책에 미미하게 기록된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게다가 〈대장금〉 같은 경우 전세계 64개국에 수출되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는 “단순히 한국의 드라마가 수출된 게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역사와 음식과 의상과 문화 이런 것들이 모두 수출된 것”이라며 “홍보로 수천억, 수조 원을 들여도 이루기 힘든 일”이라고 자부한다.

“국위선양으로도 그 이상 큰 게 없죠. 외교관 수백 명이 이룰 수 없는 걸 드라마 한편으로 이뤄낸 거예요. 좋은 드라마를 만들면 그 좋은 드라마가 전 세계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수단이 된다는 데 대해 큰 책임과 보람을 느낍니다.”

〈이산〉 이후 잠시 주춤하던 사극의 인기는 최근 MBC 〈선덕여왕〉을 통해 다시 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선덕여왕도 이 PD가 탐냈다는 사실. 〈서동요〉를 끝내고 차기작으로 정조임금과 선덕여왕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그는 결국 〈이산〉을 택했다. 

 
 
▲ 이병훈 PD가 펴낸 책 '꿈의 왕국을 세워라' ⓒ해피타임
“〈선덕여왕〉을 보니 재미있게 잘 만들었더군요. 제가 만들었다면 또 달랐겠죠. 저는 당시 덕만공주(선덕여왕)와 천명공주, 선화공주 이렇게 세 명의 공주를 중심으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김영현 작가가 쓴 〈선덕여왕〉은 선화공주를 빼고 덕만과 천명, 그리고 미실을 중심으로 했더군요. 저는 미실을 등장시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각도가 전혀 다르죠.” 

요즘 그는 〈선덕여왕〉 후속으로 내년 1월부터 MBC에서 방송될 〈동이〉 준비에 한창이다. 〈이산〉의 김이영 작가와 손잡고 15부 정도까지 스토리를 완성한 상태다. 〈동이〉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생애를 그릴 예정이다. 숙빈 최씨는 그동안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주인공인 사극에서 ‘최 무수리’라는 이름으로 잠깐씩 등장한 인물이다. 궁중 최하층민으로 숙종의 사랑을 받고 아들을 낳아 성군으로 키워낸 이가 바로 숙빈 최씨다.

“드라마는 시각을 달리 해서 보면 항상 새롭죠. 동이(최 무수리)라는 하찮은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유일한 절대군주였던 숙종시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를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죽을 때까지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순을 넘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장에서 더위와 추위와 고군분투하는 그를 가족들은 걱정하지만, 그의 열정은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왕국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그의 왕국은 늘 새롭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