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4 11:40

네티즌, 더 이상 뉴스 소비자가 아니다

[기획] 행동하는 블로거, 정책검증에 의제설정까지

훗날 2008년 5월을 떠올릴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단어들이 있다. 광우병, 네티즌, 그리고 블로거(블로그를 활용하는 사람)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이 일부 언론의 보도였다면, 여기에 연료를 공급하고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한 것은 바로 네티즌이다. ‘효순이·미선이 사건’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촛불을 들었던 그들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을 막기 위해, 혹은 좀 더 나은 검역 환경을 만들기 위해 펜 대신 촛불을 들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들은 더 이상 뉴스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은 뉴스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생산해내며, 의제 설정 역할까지 하고 있다. 뉴스에도 진정한 웹 2.0 시대가 열릴 것인가. 미국산 쇠고기 논란과 관련한 주목할 만한 웹(web)상의 움직임들을 짚어봤다.

광우병 논란, 네티즌이 주도

온라인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에서 단연 눈에 띈 곳은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이었다. 웹사이트 분석평가 전문 업체 랭키닷컴에 따르면 지난 2일 다음 ‘아고라’의 방문자수는 199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수치는 1주일 전인 4월 25일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같은 날 페이지뷰도 1주일 전과 비교해 3배 가까이 상승해 5000만 페이지뷰를 넘었다. 이날 ‘아고라’ 방문자수가 급격히 증가한 데엔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논란이 큰 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아고라’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찬반 논란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이명박 대통령 탄핵 등의 서명운동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 네티즌은 더이상 뉴스를 소비하는 주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뉴스를 생산해내고 이슈를 만들어낸다. 네티즌, 그리고 블로거는 이제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네티즌들은 ‘아고라’ 외에도 ‘블로거뉴스’, 카페 등에서 활동하며 미국산 쇠고기 논란을 증폭시켰다. ‘블로거뉴스’는 다음이 지난 2005년 11월 오픈시킨 ‘블로거가 만든 뉴스’ 서비스로, 개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모두 뉴스가 될 수 있다. 언론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 역시 의제 설정을 하는 셈이다.

지난달 29일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를 파헤친 뒤 ‘블로거뉴스’에선 광우병 논란이 화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다음 측이 매일 ‘오늘의 태그’를 광우병, 쇠고기 등으로 설정하면서 이슈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블로거들의 관심사가 포털의 정책에 반영되고, 다시 포털의 운영 정책이 블로거의 관심사로 떠오른 식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이희완 인터넷정보관리부장은 “네티즌들이 직접 의견을 표출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쇠고기 문제가 감성을 건드리며 정부의 불신과 겹쳐져서 큰 파장이 생긴 것 같다”고 해석했다.

미국까지 촛불문화제 확산

네티즌 혹은 블로거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이들의 의견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방식은 서명운동, 촛불집회 등으로 나타났다. 다음 ‘아고라’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돼 13일까지 130만 명 이상의 네티즌이 서명에 동참했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디씨뉴스에서도 86% 이상의 네티즌들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상의 움직임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회원 수 15만이 넘는 카페 ‘안티 이명박’(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이달 초부터 꾸준히 열고 있다. 전국에 13개 지역모임을 거느리고 있는 ‘안티 이명박’은 서울뿐 아니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촛불을 높이 들었다.

또 지난해 11월 개설된 ‘미친소닷넷’은 전국 각지는 물론이고, 미국 LA에서도 촛불문화제를 이어갈 방침이다. 여기에 회원 수 1만 6000명이 넘는 정책반대시위연대 등이 힘을 합하면서 안티 이명박 전선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단순히 반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것이 촛불집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신문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보도하는 행태를 비판하며 규탄 대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중·동이 광우병 위험성에 대해 참여정부 때와는 정반대의 논리와 주장을 펴는 것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진행된 ‘네티즌과 함께하는 조·중·동 왜곡보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네티즌은 조·중·동의 보도에 대해 “언론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미래를 바라보며 글을 써야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식적인 이해를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우리들의 울분 차원을 떠나 대한민국의 상식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성토했다.

블로그 정보 ‘믿는다’ >‘안 믿는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행동이 적극적이 될수록, 정부와 언론의 공격 또한 심해지고 있다. 정부와 조·중·동 등 일부 신문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을 든 수만 명의 네티즌과 국민들에 대해 “방송이 선동한 것”이라고 매도했고, 10대들의 참여는 “의식이 완전하지 못한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이라며 폄훼했다.

 게다가 대통령 직속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음 측에 이명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댓글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네티즌들은 크게 분노했다. 또 정부의 대응이 국민들에게 불신을 주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움직임은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의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이거나 추진 예정인 정책들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 포털 다음의 '블로거뉴스' 첫 화면. 블로거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기사를 올리며, '블로거뉴스'에서 이슈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이처럼 인터넷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여론 확산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블로그와 같이 네티즌들이 직접 이슈를 생산하는 공간이 새로운 미디어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지난 2월 5일~15일 전국의 만 15~4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을 인터넷 미디어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블로그 생산 정보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도는 모든 분야에서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정보 미디어로서 블로그의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후 블로그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논란이 ‘블로거 뉴스’를 통해 확산됐듯이, 향후 블로그는 무시 못 할 미디어로 기능하며 일반 국민 여론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블로거 뉴스

국내 2위 포털 업체인 다음이 지난 2005년 11월 오픈한 서비스다. ‘블로거 기자단’에 속한 네티즌이 다음 블로그에 기사를 작성하면 미디어다음 ‘블로거 뉴스’에서 소개되는 식이다. 미디어다음 최정훈 팀장은 ‘블로거 뉴스’는 “블로그 콘텐츠와 뉴스서비스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블로거 뉴스’는 다음과 네이버의 차이를 결정짓는다. 이번 광우병 논란에서도 네이버는 네티즌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지 못해 “보수적”이라는 항의를 받은 반면, 다음은 ‘블로거 뉴스’를 통해 광우병 논란에 관한 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지지를 받았다. 민언련 이희완 부장도 “이번 논란은 다음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증폭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희완 부장은 그러나 “그동안 포털이 네티즌들이 갖고 있는 이슈와 괴리되는 부분이 있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만 해도 포털의 뉴스박스 안에서 벌어졌던 논란들이 이슈화되어 드러나지 않았다. 보수화된 편집 경향을 보였다”면서 “네티즌들이 ‘아고라’나 ‘블로거 뉴스’를 통해 이슈를 선점하면 포털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이 의제 설정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보수적인 태도에서 자율적인 태도로 네티즌들의 능력을 확대시키는 방향이 옳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촛불

온라인상의 여론이 오프라인 여론의 힘을 뛰어넘는 경우는 2000년대 들어 종종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이·미순이 사건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 사태 당시에도 온라인이 결과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여론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효순이·미선이 사건은 2002년 월드컵 분위기에 휩쓸려 언론에서 소홀히 다뤄지기 일쑤였으나, 일부 시민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서울 시청 앞으로 수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오도록 이끌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인터넷의 덕을 봤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사모’를 비롯한 모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규모를 확장했다는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도 인터넷 여론은 힘을 발휘했다. 일반 네티즌은 물론, 유명 인사들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그 힘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산 쇠고기 논란은 네티즌들의 의제 설정 역할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MBC 〈PD수첩〉이 여론에 불씨를 지피긴 했지만, 그 불씨를 키운 것은 네티즌 스스로였다. 정보 공개와 공유가 최근 인터넷 문화의 핵심이 된 만큼, 파문의 확산 속도도 예전보다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웹2.0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네티즌 여론’의 힘은 얼마나 커질지 주목된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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