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8 11:44

“대통령님 고맙습니다! MBC를 하나 되게 해주셔서”

[2008년 한국의 언론인, 그들이 사는 법(1)]
김보슬·이춘근 MBC PD

벌써 44일째다. MBC 공정방송 사수대는 〈PD수첩〉 제작진을 보호하기 위해 44일째 철야사수를 이어가고 있다.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제작진에 대한 강제 구인이 우려되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박성제·이하 MBC노조)는 지난 8월 26일 ‘공정방송 사수대’를 꾸렸다. MBC 전 조합원이 조를 이뤄 24시간 〈PD수첩〉 제작진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PD수첩〉 ‘광우병 편’을 제작했던 김보슬·이춘근 PD는 그날 이후 회사 안에 자리를 잡았다. 김보슬 PD는 여자 숙직실에, 이춘근 PD는 노조 사무실에 짐을 풀었다. 제작진에게 세 차례나 소환 통보를 하고, 수사를 밀어붙이던 검찰은 현재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동시에 김보슬·이춘근 PD의 회사 안 거주도 길어지고 있다. 24시간 회사 안에서 생활하는 그들은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회사 밖을 나설 때는 사수대를 대동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 김보슬·이춘근 PD,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보슬 이춘근 MBC PD

지난 2일 MBC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보슬·이춘근 PD를 찾았다. 방송을 위해 회사에서 밤을 새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오랜 시간 회사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은 이들에게 처음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답답한 생활에 지쳐있을 법도 한데 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에는 함께 분노했다.
사수대에 오는 노조원들과 함께 곧잘 술을 마시곤 했던 김보슬 PD는 요즘은 몸이 좋지 않아 이춘근 PD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있다. 대신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지난 1일부터는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방송을 하던 사람이 방송을 안 하니까 목표도 없어지고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이렇게 계속 길어지면 사람이 망가지겠구나 싶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PD수첩〉 이후 새로 배정된 〈불만제로〉 팀에 가서 매일 한 시간씩 회의도 하고 있다. 비록 지금 당장 방송을 하지는 못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다.

이춘근 PD에게는 MBC 방송센터 1층에 자리를 잡고 밤새 자신들을 지켜주는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다. 각 부문별로 10여 명씩 조를 짜서 사수대가 운영되니 오는 사람들도 매일 바뀐다. 이렇게 많은 노조원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새벽에는 술 한 잔 기울이며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주로 〈PD수첩〉 방송과 MBC 민영화 관련 얘기가 화제에 오른다. 이춘근 PD는 “매일 술을 마셔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힘이 되는 자리고, 노조원들에게 고맙다”며 “MBC 노조원이 2000명 정도 되니 내년 2~3월이 되면 모든 조합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PD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뼈있는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님 고맙습니다! MBC를 하나 되게 해주셔서.”

‘민주주의’ 시대에 언론자유 침해를 이야기하며, 자진해서 회사 내 감금 생활을 택한 이들을 일부에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춘근·김보슬 PD도 사실 2001년과 2003년 각각 입사해 언론자유는 당연히 지켜지는 권리로 알았고,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세대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이들은 힘들게 이뤄놓은 소중한 가치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김보슬 PD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들의 속성을 보면 민주주의가 이뤄낸 법, 가치를 악용해 거꾸로 이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PD수첩〉 사태를 겪으며 처음부터 다시 이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 이들이 언제까지 회사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이들은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사수대까지 꾸리며 자신들을 위해 고생하는 MBC 노조원들과 YTN, KBS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MBC의 외로운 싸움이 될 뻔 했잖아요. 그래도 YTN과 KBS에서 같이 연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한번 하고 이렇게 많은 소송에 시달리고,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참 힘들고 귀찮은 일이예요.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굴복하면 앞으로 더 이상 비판적인 프로그램은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춘근 PD는 “나중에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즌 2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3~4달 정도면 10~12편 정도는 나올 것 같다며 자신감도 드러낸다. “뒤끝 있는 A형이라 지금 상황들 다 기록해두고 있다”고. 옆에 있던 김보슬 PD는 아예 프로그램 제목을 정해준다. “‘뒤끝영상’ 어때요?”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보슬이의 일기
“다음 달 8일, 친구 결혼식에 갈 수 있을까?”

길어야 2주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제일 작은 샴푸 하나를 사들고 들어왔다. 계산 착오였다. 금방 동이 났다. 큰 맘 먹고 200ml 샴푸를 샀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러나 상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금방 또 동이 나버렸다. 어제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샴푸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엄마, 떡 하니 샴푸를 내놓는다. 이번에는 제일 큰 500ml다! 쉽게 끝나지 않을, 긴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엄마의 직감이었을까.

친한 작가 한 명은 팩을 사들고 찾아왔다. “도저히 얼굴을 못 봐주겠다”며. 내 얼굴이 그렇게 상했나. 하긴 벌써 44일째 이러고 있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숙직실에서 잔다지만 내 집이 아니니 피로는 자꾸 쌓인다. PD 인생에서 보면 한창 방송을 하고, 가장 성장할 수 있는 시기에 방송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러다 아예 손을 놓아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든다.

회사에서 생활한 이후 어느새 계절도 바뀌었다. 모기 때문에 잠 못 이루던 것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다음 달 8일에는 친구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다.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 과연 갈 수 있을까?

#춘근이의 일기
“우리 그냥 신혼 재미 즐기면 안 될까요?” 

오랜만에 이발을 했다. 회사 안에서 생활한 지 한 달 만에 처음이다. 회사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사내 이발소를 이용했다. 요즘은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40~50대 아저씨 스타일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됐지만, 생각보다 만족스럽다. 깔끔해진 내 모습에 안 씻어 냄새난다고 했던 사람들도 만족스러워하겠지. 후훗.

〈PD수첩〉 광우병 보도 이후 내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혼한 지 이제 7개월. 남들은 한창 신혼 재미에 빠져 있을 때지만, 반대로 나는 가출 아닌 가출을 해버렸다. 수감(?) 생활을 하게 된 남편 뒷바라지에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거의 매일 아내가 면회를 오지만, 회사 안에 애정행각을 벌일 곳도 마땅치 않다. 상암으로 사옥 이전을 하게 되면 ‘부부 면회실’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할까. 싸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술과 잠과 몸무게만 늘었다. 바깥 상황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오늘(2일) 아침 신문을 보니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이 YTN 사태와 관련해 재허가 불가 가능성을 언급했다. 밀어붙이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이런 식으로 계속 되면 언젠가 시민들은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 일어날 텐데…. 언론인들에게도 한 마디 해야겠다. 언론이 정권을 비판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횃불이 일었을 때 그 절반은 여의도로 올 거라고. 5년 임기의 정권에 충성하느라 무기한 임기를 가진 국민을 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길 바란다.

*위 기사는 김보슬 이춘근 PD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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