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KBS 사장이 취임한지 6일째 됐다. KBS사원행동은 “정권의 방송장악 청부사장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며 연일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병순 사장은 청원경찰의 호위 속를 받으며 이들을 간단히 따돌리며, 공식적인 업무를 하나 둘씩 진행해 나가고 있다.
물리적인 투쟁방식만으로 한계를 절감한 KBS사원행동은 출근저지 투쟁에서 서서히 편성권 침해, 구조조정, 정부의 KBS 2TV 민영화 반대 등의 요구안 관철을 통한 투쟁으로 그 방식을 옮겨가고 있다.
당장 1일부터 새로운 임원진 진용이 꾸려지는 가운데 KBS에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1주일간 무슨 큰 변화가 있을까 싶지만 일선 취재·제작 현장에서 기자와 PD들이 느끼는 체감기류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크게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 ▲ 이병순 사장이 출근하던 지난 27일, KBS사원행동이 본관 주차장 앞에서 출근저지 투쟁 벌이고 있다. ⓒPD저널 | ||
“감시견(watch dog) 이 아닌 애완견 KBS될까 걱정된다”
이병순 사장에 대한 사내 여론은 차갑기 그지없다. 이 사장이 지난 27일 취임사에서 사전 게이트키핑, 프로그램 폐지 검토 등을 시사해 사내여론은 들끓고 있다.
“사전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게이트키핑이 이뤄지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이병순 사장의 발언에 대해 KBS의 한 중견기자는 “팀제를 국장제로 전환해서 부장, 국장 선에서 문제가 되는 아이템을 선별해 낼 것”이라며 현 팀제조직이 국장중심의 관료제 체제인 옛 KBS 조직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정연주 전 사장이 도입했던 팀제가 간부들을 평기자, 평PD로 만들어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고자 했다”며 “이전처럼 관료제 조직으로 돌아가면 KBS가 가지고 있던 장점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팀제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취재 자율성을 보장해줌으로써 제작욕구에 활기를 불어넣었어요. 현장 취재를 한 기자의 판단과 책임을 중요시 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이달의 기자상도 KBS가 4개나 탔습니다. 팀제에서 현장기자의 판단에 대해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아니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과입니다.”
| ▲ KBS 뉴스는 '공기업 사장, 보은인사 논란' '청와대 수석들의 불법농지매입'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여론조사 미국 유출의혹''수돗물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를 정면비판한 보도들이 많았다. ⓒKBS | ||
실제로 KBS는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7월)에서 총 수상작 6개 중에 4개를 타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취재보도 (워싱턴지국 「美, 독도 표기 변경 관련 연속보도」), 기획보도 2개 (탐사보도팀, 「MB 인사실태보고 연속보도」, 문화복지팀 「연속기획 ‘빛바랜 BK21’」, 지역취재(부산보도팀, 「장애아 거부하는 예술중학교」) 부분에서 수상한 것.
정연주 사장이 재임한 지난 2003년 5월부터 2008년 7월까지 KBS는 이달의 기자상을 54차례에 걸쳐 수상했다. 이런 결과들에 대해 탐사보도팀 한 기자는 “게이트 키핑이 안 돼서 나오는 결과라고 보수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얘기할 수 있냐”며 “권력의 비판적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해야 할 KBS를 이제 MB의 애완견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폐지프로그램 1순위로 꼽히고 있는 <미디어포커스>의 한 기자는 “이제 이번 주가 마지막 방송이라는 생각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한다”며 “하지만 팀 분위기 자체는 좋다.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폐지 프로그램으로 언급되고 있는 <시사투나잇>의 한 PD는 “회사방침에 따라 프로그램 존폐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새 사장이 직접 나서 프로그램의 존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편성규약에도 어긋날뿐더러 옳지 않은 자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단체와 보수신문에서 주장하는 <시사투나잇>에 대한 논란이 편성·방송 전문가와 함께 사실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며 “가을 개편 작업을 앞두고 정리 작업에 들어가겠지만 취임사에서 암시만 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완벽주의 업무스타일, 지금의 KBS에는 독이 될 것”
| ▲ 이병순 KBS 사장 ⓒKBS | ||
이 사장이 ‘마침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그는 “KBS미디어와 비즈니스 사장 재직시 결재문서에 마침표를 안 찍었거나 지정해준 글자크기를 12로 해야 되는데 11이거나 10이면 결재를 안했다”며 “심지어는 해외출장을 가야되는데 못 간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 PD는 “완벽주의 업무스타일이 창의성 발현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에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 사장이 취임한 다음날인 28일 KBS 현황에 대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부서의 팀장은 결재서류를 세 번이나 반려한 끝에 그날 보고를 결국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졌다.
한 PD는 “이병순 사장은 임기 1년 3개월 사장이기 때문에 재신임을 받기 위해 정부·여당이 KBS에 요구하는 구조조정이나 프로그램 폐지 등에 대해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렇게 추진할 경우 KBS 내부의 반발을 감당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90년 4월 KBS투쟁 등 방송민주화 운동을 본 사람이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 계속해서 놓이게 될 것”이라며 “곧 있을 임원진 인사조치와 프로그램 폐지여부, 구조조정 여부 등에서 투쟁의 시발점이 다시 생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노조의 행보, 방송민주화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 ”
KBS 내부 갈등 역시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KBS이사회가 이병순 사장을 임명제청하던 지난 2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박승규)는 “KBS 인들이 공사 출범 이후 35년 동안 그토록 갈망해 오던 첫 번째 KBS 출신 사장”이라며 뜻밖에도 환영의 성명을 냈다.
기자·PD를 중심으로 한 KBS사원행동은 이병순 사장에 대해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노골화 할 ‘청부사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박승규 KBS 노조 위원장은 “이병순 사장은 낙하산 사장이 아니다”며 입장차를 드러냈다.
한 기자는 “KBS노조가 자살행위를 함으로써 KBS 전체를 죽인 것과 다름없다”며 “노조집행부들은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힐 테지만 박승규 체제의 KBS 노조, 방송민주화 역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박승규란 이름은 어떻게 잊겠나. 그가 남긴 오점은 본인 스스로가 평생 안고 가야할 짐”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 ▲ 지난 20일 KBS 사장공모 접수를 막기위해 이사회 사무국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KBS노조. 박승규 위원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의 모습도 보인다. ⓒPD저널 | ||
원성윤 기자
socool@pdjournal.com'미디어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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