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김아무개씨는 신문을 끊으려고 지국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지국에선 “아직 약정기간 1년을 채우지 못했다”며 “처음 구독 때 받은 상품권 5만원과 무료구독료 6개월 치를 위약금으로 돌려주지 않으면 신문을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례 둘. 나아무개씨도 신문을 끊으려고 지국에 전화를 했다. “무료구독료 서비스를 받고 이제 와서 신문을 끊으려는 건 양심 없는 짓”이라던 지국 관계자는 “집에 여자 혼자 있으니 오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찾아와 “돈을 줄 때까지 여기서 꼼짝 않겠다”며 협박했다.
사례 셋. 박아무개씨는 신문을 끊기 위해 본사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본사에선 “신문 절독은 독자와 지국 간에 알아서 할 일이며, 본사와는 관계가 없다”면서 지국의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지국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본사에선 “우리는 상관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신문,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끊으려는 독자들이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신문 불법경품 공동신고센터’에 상담을 요청한 사례들이다. 최근 이 같은 상담 요청과 제보들이 언론노조와 민언련에 쇄도하고 있다. 쇠고기 파동과 촛불 정국을 지나면서 조·중·동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신문 끊기가 마약 끊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중·동 신문들을 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5만 원짜리 상품권, 6개월 치의 무료구독, 1년간의 약정 기간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 ▲ 신문 불법경품 공동신고센터 주최로 ‘독자의 신문 끊을 권리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지난 10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레이첼칼슨룸에서 열렸다. | ||
최근처럼 조·중·동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 절독에 관한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 차원의 문제로 인식된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10일 신문 불법경품 공동신고센터 주최로 ‘독자의 신문 끊을 권리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독자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품·무료구독료 내놔라… 집에 찾아와 협박도
이날 발제를 맡은 서정민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독자들의 신문 끊을 권리 침해 유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 살펴봤다. △불법 경품과 무료구독료 반환 요구하기 △집에 찾아와 협박하기 △경품과 무료구독으로 꼬드겨 약정기간 연장하기 △본사와 지국 간 떠넘기기 △막무가내로 신문 배달하기 등이 그것이다.
| ▲ 서정민 언론노조 정책국장이 어렵게 입수했다는 조선일보 구독계약서를 보이고 있다. | ||
그러나 현행법상 1년 치 구독료의 20%를 넘는 경품(무료구독 포함)은 불법이다. 한 달 구독료가 1만 5000원일 경우 3개월 무료구독만 하더라도 불법이 된다. 실제 지국들이 독자에게 반환을 요구하는 경품과 무료구독료는 대부분 불법으로 지국에선 불법행위의 증거가 될 것을 우려해 계약서도 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문을 끊을 때 경품과 무료구독료는 돌려줘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토론 참석자들의 생각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서정민 국장은 ‘불법인 도박 빚은 갚을 의무가 없다’는 판례를 참조해 “불법 경품은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데 힘을 실었다.
서 국장은 또 “신문을 끊는 문제와 여기에서 파생된 위약금 문제는 엄연히 별개의 건이라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라며 “위약금에 해당하는 상품권과 무료구독료 반환 문제는 지국이 따라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경품이 유가지의 반대급부가 아니라면 돌려줄 필요 없다”
그러나 언론인권센터 이사로 있는 김종천 변호사는 보다 신중한 견해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구독기간을 약정하지 않았다면 어느 때나 해지할 수 있고, 구독기간을 정한 경우라도 독자가 이사를 가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해지할 수 있지만, 그런 사정이 없는 경우 계약기간을 약정한 상황에서 임의로 해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첨예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불법경품을 유가지 구독의 반대급부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유가지 구독의 반대급부는 구독료다. 이렇게 생각하면 경품 수령을 유가지의 반대급부로 보기 어려우며, 호의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경품이 불법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유가지의 반대급부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반환의 근거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 언론인권센터 이사로 활동 중인 김종천 변호사 | ||
현실적인 제안도 나왔다. 조영수 민언련 대외협력부장은 “1년 약정했는데 상품권을 받고, 6개월 무료구독한 뒤, 5개월간 유료구독하고 해지할 경우, 지국에선 다 내놓으라고 하는데, 5개월 유료구독한 것을 감안해 퍼센티지에 따라 반환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임은경 한국YMCA전국연맹 소비자팀장도 “상담을 요청하는 독자들에게 잔여 유료구독 기간에 대해 10%의 위약금을 물도록 처리하고 있다”며 거들었다.
“공정위 표준약관 제정해야…본사 직권조사도”
실제로 조선·중앙·동아일보 발행인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한국신문협회는 신문구독약관을 마련해 중도해약 시 구독료 납부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나, 신문협회 약관은 어디까지나 자율규제란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강제성이 전혀 없는 신문협회의 약관 말고 법적 강제성을 갖는 표준약관 마련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정민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상황이 되어선 안 된다”며 “공정위가 본사에 대해서도 직권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은경 YMCA 소비자팀장은 “지국의 불법 행태를 공정위에 제소해 과징금을 물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김종천 변호사도 “공정위가 신문 구독을 해지할 때 반환해야 하는 경품의 범위 등을 명시한 표준약관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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