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방송계가 요동을 치고 있다. 미 쇠고기 안전성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 파문과 정연주 전 KBS사장 ‘퇴출’에 이은 인사보복 논란 그리고 최근 구본홍 사장 반대투쟁을 벌인 기자들에 대해 해고 결정을 내린 YTN사태까지 방송계는 그야말로 논란과 파문의 연속이다. 〈PD저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방송장악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KBS·MBC·YTN 기자와 PD 등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2008 한국 언론’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마지막 세 번째 순서로 KBS를 찾았다. 〈편집자주〉
이야기 하나. 기계적 중립? 매카시도 울고 갈 ‘KBS 5공의 잔재’다.
한 달 전 스포츠중계제작팀으로 발령 받은 최경영 전 탐사보도팀 기자(2005년 4월~2008년 9월)는 한 달간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산으로 들로 강으로 여행을 다니며 분을 삭이려 했지만,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KBS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꼭 남의 회사 같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YTN처럼 투쟁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 ▲ 최경영 KBS 기자 ⓒKBS | ||
기계적 중립? 최 기자는 “기계적 중립은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들이 그렇게 좋아해 마지않는 미국을 예로 한 번 들어보자”며 매카시 광풍과 이를 비판했던 미국 CBS 간판 앵커 에드워드 R.머로우를 소개했다.
“존 매카시 상원의원의 ‘매카시즘’이 미국 전역을 뒤덮어 언론들이 질식당한 상태였습니다. 그 때 에드워드 R.머로우가 매카시가 주장하는 ‘빨갱이’가 얼마나 사실(facts)에서 어긋나 있는지, CBS 30분짜리 프로그램에서 맹렬하게 비판했어요. 다음 날 아침신문에 ‘TV는 입장을 취할 수 있는가?’(Should TV take a stance?)라고 나왔죠. 하지만 60년이 지난 지금 애드워드 머로우를 미국 자유언론의 상징으로 추앙해도, 그 신문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요. ‘기계적 중립’은 20세기 이전 미국에서 이미 끝난 논쟁입니다.”
하지만 현재 KBS 보도본부에는 ‘기계적 중립’의 망령이 알게 모르게 전염되고 있고 일부 기자들은 이 같은 분위기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 기자는 “자기 생애 화려한 면을 장식했던 5공 시절, 당시 경제특집을 만들었던 이병순 사장이나 동정보도를 했던 간부들이 지금의 KBS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들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이 같은 논리를 들고 나오는 것”이라며 “역사성 자체가 송두리째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최 기자는 “언론철학에 있지도 않은 ‘기계적 중립’을 21세기 공영방송의 철학으로 KBS 사장이 생각한다고 국제학회에 나가 보고하면 세계적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 둘. 〈시사투나잇〉이 ‘편파’라는 이유, ‘냉큼’ 대 보시오.
| ▲ 김명숙 KBS PD ⓒPD저널 | ||
김 PD는 “YTN이 얼마나 힘들게 꾸렸는지 아는 입장에서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많이 안타깝다”면서 “적이 달라졌기 때문에 마음으로 밖에 함께 할 수 없어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이전까지는 언론의 공공성에 대해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았는데 요즘 정권에 의해 모든 부분들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며 “정권은 5년 후면 바뀔 수 있지만 언론은 5년마다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시사투나잇〉 폐지논란에 대해 김 PD는 “딱히 정당한 근거를 들이대지 않는 것에서 부당함을 느낀다”며 “바로 YTN의 싸움을 이어 받아 KBS가 해야 할 부분이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2년차 기자 출신인 안상미 PD는 신입으로 입사해 KBS에서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 바로 〈시사투나잇〉이었다. 보수와 진보의 두 매체의 상징성 때문에 안 PD는 “경력 때문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지만 기자로서 훈련받는 과정에서 다른 진로를 찾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안 PD는 〈시사투나잇〉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그동안 〈시사투나잇〉이 기륭전자 노동자, KTX 여승무원,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소수자 등에 관해 굉장히 많은 리포트들을 해온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시사투나잇〉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진전은 없고 반복되는, 그래서 뉴스 가치는 떨어질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보도하는 게 중요한 가치라는 게 안 PD의 생각이다.
| ▲ 강희중 KBS PD ⓒKBS | ||
현재 〈시사투나잇〉 MC 이면서 데스크를 보는 반장이기도 한 강희중 PD는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자들과 달리 출입처가 없는 PD들이 매일 터지는 사안들을 심층성을 갖추면서 좇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시사투나잇〉을 둘러싸고 “불편하다. 편향됐다”는 지적에 대해 강 PD는 “시청자는 말도 안 되는 기계적 중립보다는 중요한 쟁점에서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진실’을 보기 원한다”며 “기준도 원칙도 없이 지난 10년간 KBS가 쌓아온 다양성과 자율성의 노력들을 제발 되돌리려고 하지 마라”고 사측을 비판했다.
이야기 셋. 유능한 사람들 다 내쫓고 어쩌려는 걸까.
KBS 〈환경스페셜〉과 〈KBS 스페셜〉을 통해 한미FTA, 유전자 조작식품,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등을 지적한 이강택 PD는 요즘 뉴욕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지난해부터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펀드까지 다 빼라고 할 만큼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는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아, 지금 뉴욕 월가를 간다면 〈KBS 스페셜〉을 만들 수 있을 텐데…”라고 되뇐다.
하지만 꿈같은 얘기다. KBS 사원행동에 가담한 혐의로 그는 KBS 수원센터로 인사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신 경기도 일산이 집인 그는 최근 월세로 수원근처에 방을 하나 얻었다. 출퇴근하기 너무 힘들어서다. 이제는 주어진 일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
| ▲ 김경래 KBS 기자 ⓒKBS | ||
김 기자는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을 안정화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한 사람을 이렇게 좌천시키는 꼴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도 “투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갑갑했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김 기자는 “내 뜻과 맞지 않는 사람들이 간부들이라고 해서 편한 곳, 민감하지 않은 곳에서 쉬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때가 되면 데스크와 충돌하는 게 싫다보니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누구나 들겠지만, 이는 변명 밖에 안 된다”면서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드는 프로그램이니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된다. 안 그러면 KBS 망할 수도 있다. 어렵게 쌓아온 신뢰도를 이렇게 잃어서 되겠냐”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원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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