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천 KBS이사장이 직접 경찰투입을 지시하며 KBS이사회가 지난 8일 의결한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시나리오에 맞춰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날 이사회가 직접 공권력 투입을 직접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권한남용에 따른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90년 5월 노태우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알려진 서기원 사장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인 이후 18년 만에 KBS 사내에 경찰이 투입된 이번 KBS사태는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인 7일 밤 친여 성향의 이사들이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20만원을 들여 합숙을 하며 경찰 투입을 논의한데 따른 결과다.
특히 이사회가 열리기 4시간 전인 오전 6시부터 전경차 200여대가 KBS 본관과 신관 둘러싸고 있었으며, 사복경찰 300명이 본관 로비에 대기해 유사시 투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또한 청원경찰은 취재차 출입한 기자들까지 출입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 ▲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사회장을 빠져 나가고 있는 유재천 KBS 이사장 ⓒ연합뉴스 | ||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에 따르면 KBS이사회가 열린 8일 오전 8시 정연주 사장이 황인덕 경영본부장에게 “사내 경찰을 즉시 내보내지 않으면 안전관리팀장을 직위해제하겠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지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날 유재천 이사장이 경찰 투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7시 30분부터 청원경찰과 대치하기 시작한 KBS 직원 15명은 청원경찰의 제지를 뚫고 이사회 회의장인 본관 3층 제1회의실 앞까지 진입했다. 그러나 오전 8시 10분경 친여 성향 이사 6명이 경찰 호위 속 회의실에 입장했고, 뒤이어 청원경찰 60여명이 회의실 주변 엘리베이터와 계단 봉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조정실을 통해 진입한 100여명의 직원들이 청경들의 저지선을 뚫고 제1회의실 앞까지 진입하자 다급해진 유재천 이사장은 회의장안에 배석한 영등포경찰서 제 모 정보과 형사에게 경찰 투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제 모 형사가 “KBS의 공식 요청이 없이는 힘들다”는 며 난색을 표하자, 영등포경찰서장과 안전관리팀장을 직접 불러 경찰투입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복경찰 30여명은 임원실이 있는 KBS본관 6층 복도까지 들어오기도 했다. 임원회의 중이던 이원군 KBS 부사장이 이 과정에서 경찰측에 항의를 하자 사복경찰은 “이게 네 건물인줄 아냐”, “공영방송이면 똑바로 하란 말이야”라는 등의 폭언을 퍼부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사복경찰 등 병력 투입으로 회의장이 있던 3층 복도는 아수라장이 됐지만 이사회는 10시 조금 넘은 시각. 회의에 돌입했다. 오전 11시 30분경, KBS이사회는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 의결하기 위해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고, 이 과정에서 정연주 사장 사퇴 입장을 견지해온 남윤인순, 이기욱, 이지영, 박동영 이사 모두 이사회장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오후 12시 38분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이 의결됐고, 오후 12시 45분경 사복경찰 호위 속 친여 성향 이사 6명은 경찰이 미리 대기시켜 놓은 미니버스를 타고 KBS를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 ▲ 1990년 4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서기원 사장은 경찰을 동원해 사장실 진입에 성공했다. | ||
KBS사원행동은 “지난 8일 벌어진 KBS 경찰난입 사건은 지난 90년 ‘4월 투쟁’ 당시 경찰 난입 사건과 비교해도 훨씬 악질적인 사건”이라며 “당시에는 파업이 30여일 진행된 마지막 순간에 본관 2층 민주광장까지만 경찰이 들어왔으나, 이번에는 3층 이사회장과 6층 임원실에까지 300여명의 사복경찰이 난입해 KBS의 심장부를 유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규탄했다.
1990년 KBS ‘4월 투쟁’ 당시 최병렬 공보처 장관은 “사내질서를 정상화시키지 않을 경우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하겠다”며 4월 30일 밤 11시 15분경 서울시경 산하 전경 19개 중대 3000여명을 방송공사 본관에 투입해 철야농성 중이던 조합원 333명을 연행했다. 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임명한 서기원 사장은 사장실 진입을 위해 백골단 1000여명이 동원해 진입해 이 과정에서 KBS사원 117명을 강제연행 한 바 있다.
KBS 내에서는 이날 사태에 대한 실무 책임자 문책은 물론 유재천 이사장의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KBS사원행동은 “조사 결과 지난 8일 경찰 난입의 1차 책임은 유재천 KBS 이사장의 불법 지시가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유 이사장을 직권남용으로 고발조치하고 KBS 내부에 관련된 인사를 경찰의 불법난입을 방조하거나 지원한 책임자인 경영본부장 및 KBS 안전관리팀 책임자 등을 처벌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성윤·이기수 기자
socool@pdjournal.com'미디어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KBS사원행동, 이사회장 복도에서 연좌농성 중 (0) | 2008/08/13 |
|---|---|
| KBS노조 “오늘 이사회 저지할 것” (0) | 2008/08/13 |
| MBC, PD수첩 ‘표적 심의’ 수용 일파만파 (0) | 2008/08/13 |
| 신문은 맹공, 방송은 만사태평 (0) | 2008/08/13 |
| 정연주 “이명박 대통령, 역사의 죄인이 될 것” (0) | 2008/08/13 |
| 군사작전 방불케 한 ‘정연주 해임 작전’ (1) | 2008/08/13 |
| KBS사원행동, 이사회 총력저지 태세 (0) | 2008/08/13 |
| 벌써부터 KBS 후임 사장 하마평 (0) | 2008/08/13 |
| 경찰로부터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KBS 계단 (0) | 2008/08/12 |
| 국제사회, 이명박 정권 언론장악 규탄 동참 (0) | 2008/08/11 |
| “또 다시 거리에서 돌팔매를 맞을 수 없다” (0) | 2008/08/11 |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