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0 17:34

김환균 PD가 말하는 800회 맞은 'PD수첩'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포기해선 안 될 가치” 
[인터뷰] 800회 맞은 ‘PD수첩’ 김환균 CP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MBC 〈PD수첩〉이 20일 방송으로 800회를 맞는다. 1990년 5월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18년 7개월 만이다.

김환균 책임프로듀서(CP)는 800회를 맞은 소감을 묻자 대뜸 숫자 계산을 시켰다. 매주 한 편씩, 한 해 48번 방송한다고 가정하면 18년 7개월을 이어온 〈PD수첩〉은 이미 800회를 훌쩍 넘겼어야 한다는 것이 김 CP의 설명. 이제야 800회를 맞은 것에 대해 그는 “그만큼 초창기에 〈PD수첩〉을 방송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라며 “90년대 초기에는 결방 사태도 많았고 압력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 MBC 〈PD수첩〉 김환균 CP ⓒMBC

실제로 방송 첫해인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로 타격을 입게 될 농촌 문제를 다룬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편이 불방되면서 이에 항의하는 노동조합 집행부가 해고됐다. 이 파동은 노조 파업으로까지 이어졌다.

2005년 말 황우석 사태 당시엔 한동안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말 방송된 광우병 보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 CP는 “예전에 종교 문제를 다룰 때마다 엄청난 파장이 있었다”며 “〈PD수첩〉 방송 이후 한 기도원에서는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과 환자들이 찾아와 MBC를 에워싸버린 일도 있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러한 사건들은 〈PD수첩〉 제작진은 물론, MBC에도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일. 그러나 〈PD수첩〉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갔고, 특히 정치, 자본, 종교 권력 등 우리 사회의 ‘성역’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 문제를 제기했던 ‘SOFA, 미군 범죄의 면죄부인가’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03 한국의 권부 시리즈’, ‘친일파 시리즈’, 2005년 ‘고위층의 국적 포기, 그들은 누구인가’ 등을 통해 탐사고발 프로그램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삼성 비자금 파문이나 BBK 사건 등 권력의 핵심부를 비판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나 지난해 광우병 보도 등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던 〈PD수첩〉에는 그만큼 많은 논쟁도 따랐다.

이에 대해 김 CP는 “논쟁을 일으키기 위해 방송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목격한 그대로, 눈치 보지 않고, 성역 없이” 보도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PD수첩〉과 네 번째 인연을 맺고 있는 김 CP는 1995년 7월 200회 방송부터 사용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처음 제안했던 당사자다. 김 CP는 캐치프레이즈가 담고 있는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PD는 발로 뛰면서 현장을 기록하지만 기록자가 아닌 목격자라고 한 이유는 현장성이 더 강조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아닌 ‘우리 시대’라고 한 것은 보통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뜻이죠. 특히 ‘정직’이란 단어가 중요한데 이는 ‘사심없이, 권력의 눈치 보지 않고, 성역 없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좀 나아졌다면 거기에 〈PD수첩〉이 약간은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PD수첩〉 방송으로 바로 문제가 개선됐다는 차원이 아니라 〈PD수첩〉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를 준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PD수첩〉 MC 김환균 CP와 문지애 아나운서 등 제작진 ⓒMBC

대부분의 사람들은 〈PD수첩〉 하면 정치권력이나 기득권에 대해 비판한 것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김 CP는 “그런 것은 어떻게 보면 소수”라며 “문화나 인권, 소외 계층의 문제들도 굉장히 많이 다뤄왔다”고 설명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도 정치 문제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그렇게 됐지만 그것 자체는 아주 쉬운 데서 출발한 겁니다. 두 여중생이 미군 전차에 치여 죽었다. 그런데 죄가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에서죠. 광우병 보도도 비슷합니다. 과연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잘 했나, 우리 국민들의 건강은 어떻게 되나 하는 문제에서 출발했던 거죠.”

김 CP는 일부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편향을 갖고 그런 문제에 접근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노태우 정권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정부 입장에선 늘 〈PD수첩〉 방송을 곤혹스러워했다”며 “어느 당이 여당인가, 누가 대통령인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단적으로 그는 한미 FTA 문제나 황우석 사태 당시 〈PD수첩〉 방송으로 노무현 정부가 곤혹스러워했던 사실을 예로 들었다.

“만약 〈PD수첩〉이 정치적 편향을 갖고 있다면 단 하나. 정치 권력은 어떤 권력이든 감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편향이라기보다는 언론사로서의 당연한 의무죠.”

800회를 맞은 〈PD수첩〉은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을까. 김 CP는 주저 없이 ‘관심 영역의 확장’을 들었다. 그는 지역과 다문화 사회의 문제를 예로 들며 “전통적으로 잘 다루지 않던 새로운 관심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 전에 이 문제가 중요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제시하는 의제 설정 기능에 좀 더 충실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가지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혼자 가는 〈PD수첩〉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역할은 〈PD수첩〉이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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