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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이 어둠을 밝힌 지 꼬박 두 달이 지났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에서 촉발된 촛불시위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 번졌다. 이에 보수언론은 ‘친북좌파’라는 해묵은 이념갈등 논쟁에 군불을 지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국가정체성 훼손”을 언급하며 강경진압이라는 초강수로 화답했다. 평화적으로 시작했던 촛불은 경찰의 군홧발과 물대포, 방패에 짓이겨져 피를 흘렸다. 그러나 촛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밟으면 밟을수록 다시 또 전진하고 있다. 축제에서 항쟁으로 바뀐 촛불 60일을 재구성해 봤다. <편집자 주> |
5월 2일. 다음 아고라에서 제안한 첫 번째 촛불집회가 서울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열렸다. 1만 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외쳤다. 6일에는 전국 1700여개 시민·사회·네티즌 단체로 구성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공식 출범했다. ‘촛불소녀’로 대표되는 10대 중·고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5월 17일. 촛불집회는 대규모 축제와 같은 열기를 더해가며 3만 500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2일 이후 최대 규모). 유모차, 하이힐, 촛불소녀, 386 등 세대와 연령을 초월해 촛불을 들기 시작했고, ‘광우병 수입반대’ 펼침막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날 집회에는 윤도현, 김장훈, 이승환 등 가수들이 참석해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750여 명의 교감·교사들을 집회현장에 투입해 학생들을 감시하기도 했다.
5월 31일. 시민들이 ‘재협상’을 외쳐도 정부는 묵묵부답. 청계광장·서울광장에 있던 촛불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0만 여명의 시민들은 ‘독재타도’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은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소화기를 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며 시민 228명을 연행했다. 이후 대학생과 민주노총, 전교조 등 사회·노동단체의 조직적인 가세도 가시화 됐다.
6월 10일.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인원인 50만 명(전국단위)이 광장에 움집 했다. 21년 전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와 박종철 열사의 추모행사도 열렸다. 경찰은 세종로 네거리에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불리는 컨테이너 박스를 아스팔트 바닥에 박아놓고 시민들의 행진을 원천봉쇄했다. 또한 보수단체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맞불집회’를 놓으며 보혁갈등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6월 13일. 촛불은 KBS로 옮겨 붙었다. 언론장악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은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가 시작된 11일부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민주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정부의 방송장악을 반대하며 “KBS 표적감사를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23일, KBS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여성은 보수단체 회원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월 27일. 정부는 쇠고기 장관고시를 강행했다. 이날 정부의 방침에 항의하는 2만 여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물대포를 맞고, 또 다시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경찰청 인권위원회 14명의 위원들은 경찰의 강경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전원 사퇴했다. 경찰은 촛불의 배후혐의로 12명의 시민사회단체 간부들을 긴급체포영장을 발부해 구속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를 긴급체포에 나선 것은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6월 28일. 사상최악의 폭력진압이 벌어졌다. 29일 새벽 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에서부터 유모차 엄마, 아이를 안은 아빠, 고립된 전경을 치료하는 의료지원단 의사, 인권침해 감시단, 기자 등에 이르기까지 무자비하게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고, 머리를 짓밟는 반인권적인 진압을 자행했다.
6월 30일. 정부는 전국 읍·면·동장을 서울로 불러 ‘촛불대응 설명회’를 개최했다. 광우병 대책회의에는 경찰의 압수수색이 들어갔다. 경찰은 29일 호송차로 서울광장의 접근을 차단시키고, 방송차량을 압수하는 등 집회 원천봉쇄에 나섰다. 이에 대해 민변은 ‘초헌법적인 폭거’라고 비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이후 6월 항쟁이후 처음으로 비상 시국미사에 나서며, “대통령의 교만과 무능이 민주주의를 짓밟는다”고 개탄했다.
원성윤 기자
socool@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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