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4 18:03

다음 ‘아고라’와 KBS, 그리고 KBS노조

[기자수첩] “내일은 치워드리겠다”는 박승규 위원장은 왜 말을 바꿨나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가 착수된 지난 11일, KBS 본관 앞에 쓰러진 ‘정연주 사장 퇴진’ 만장을 놓고 때 아닌 설전이 벌어졌다. 감사원의 특별감사에 반대하는 누리꾼이 KBS 노조가 본관 앞에 세워놓은 ‘정연주 사장 퇴진’이라고 써진 수십여 개의 만장을 모두 다 쓰러뜨려 버린 것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온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은 아고라 누리꾼들을 향해 “노조가 하는 활동에 대해서 건드리지는 마세요. (이것은) 촛불시위 정신에 어긋납니다”라며 만장을 쓰러뜨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누리꾼이 박 위원장의 말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자 당황한 박 위원장은 말을 바꿨다.

“여러분 시위하는데 필요해서 치워달라고 하면 치워드리겠습니다.” “치워주세요! 그럼.” “오늘은 그렇게 했으니까 내일은 치워드리겠습니다.”



▲ 지난 11일 KBS 본관 앞에서 벌어진 다음 아고라 회원들과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의 '정연주 퇴진 만장'을 둘러싼 논쟁 모습. (출처=YouTube)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정연주 만장’은 치워지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진 기자는 박승규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11일에 온 참가자들은 ‘정연주 사장 퇴진반대’라는 얘길 하지 않았다. ‘방송장악 반대’ 등의 구호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12일에 온 참가자들은 ‘정연주 퇴진 반대’라는 구호를 들고 왔다. 제가 치우겠다고 한 것은 KBS를 지키겠다는 것에 동의해서 치우겠다고 한 것이다. 말로 조건을 달았든 안 달았든 ‘정연주’를 지키겠다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한 것은 아니다. 이는 노조의 생각과 다른 것이다. 그래서 치울 수 없었다.”

하지만 기자가 “정연주 사장 퇴진 반대라는 피켓도 있었다”고 말하자 박 위원장은 “그건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박 위원장은 사람들의 구호가 달라졌기 때문에 만장을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만장을 쓰러뜨린 것일까.

의류업에 종사하는 김명민(29)씨는 “우리가 ‘만장’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으면 꼭 정연주 사장 퇴진을 바라고 촛불 집회를 하는 것 같아 만장을 다 뽑아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뉴라이트가 주최하는 시청 앞 집회에 걸려있던 ‘정사장은 퇴진하라’는 말이 KBS 앞에, 그것도 KBS 노조가 걸어 놓은 것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같았다. 이들은 KBS 노조와 뉴라이트의 의견이 같다는 것에 대해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내일 치우겠다”에서 “못 치우겠다”고 말을 바꾼 박 위원장. “오늘도 내일도 촛불을 들고 나오겠다”는 다음 ‘아고라’인들과 박승규 위원장의 불편한 관계는 만장이 치워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 같다. 부디 KBS를 지키겠다며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선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원성윤 기자 socool@pdjournal.com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