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9 15:53

달콤하고 쌉싸래한 그녀들의 이야기

SBS 프리미엄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 공감(共感)하다

30대 여성의 싱글 라이프를 그린 SBS 〈달콤한 나의 도시〉(이하 달콤시)가 잔잔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6일 첫 방송에서 같은 시간대의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시청률로 앞서 더욱 화제를 모았던 〈달콤시〉는 이후 평균 시청률 9.9%(TNS미디어코리아 집계, 수도권 기준)로 다소 약세를 보였지만, 20~30대에서만 무려 4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서른한 살의 평범한 여성 오은수가 연하의 꽃미남과 30대 중반의 ‘훈남’으로부터 한꺼번에 구애를 받는 내용은 〈내 이름은 김삼순〉을 잇는 KBS 〈달자의 봄〉등의 작품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달콤시〉는  〈연애시대〉의 감수성과 더욱 닮아 있다. 또 영화 〈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을 필두로 최영택 촬영감독, 송혜진 작가에 제작사인 CJ엔터테인먼트까지 ‘영화판 인물’들이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점도 비슷하다.
가히 ‘충무로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라고 할만한 〈달콤시〉는 빼어난 영상과 디테일한 묘사 등에서 빛을 발한다. SBS가 〈달콤시〉를 ‘금요드라마’라 하지 않고, ‘프리미엄 드라마’란 이름표를 붙인 것도 그런 자신감의 방증일 터. 이제 막 중반을 넘어선 서른한 살 주인공의 사랑과 우정, 직장생활에 관한 공감 가는 이야기를 모았다.



아름답지만, 언젠간 멈춰야 할 사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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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한 살의 은수(오른쪽, 최강희)와 스물넷의 태오(지현우)는 알콩달콩하면서도 위태로운 연애를 한다. ⓒSBS
서른한 살의 편집 대행사 대리 은수(최강희)와 스물넷의 영화감독 지망생 태오(지현우)의 만남은 ‘원 나잇 스탠드’로 시작됐다. 두 사람의 연애는 보는 이들이 두근거릴 정도로 예뻤다. 은수가 안경을 쓴 것만으로 “예쁘다”며 감격하던 태오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 무섭게 “보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이들의 모습은 예쁘고 달콤했다.

그러나 연애가 어디 달콤하기만 할까. 이들에게도 균열이 생겼다. 그것은 비단 은수가 햄버거 데이트에 지쳤기 때문만도, 커피숍에서 “저희 나갈 거예요”라며 번번이 주문을 물리치던 태오의 행동에 짜증이 났기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서른한 살의 은수와 ‘연봉 500’짜리 스물넷의 태오 사이에는 시작부터 건너기 힘든 강이 있었다. 태오는 그 한계를 “귀여운 어린애가 아니라, 남자로 사랑받고 싶다”는 애원으로 다가가려 했고, 은수는 태오에게 인생계획을 재촉하며 한발 내밀고자 했다.

서로 닿지 못하는 지점을 확인한 순간, 느닷없는 태오의 이별 통보. “언젠간 멈춰야 할 사랑”임을 은수 역시 알면서도 집에 돌아와 울음을 토한다. 은수를 향한 슬픔과 연민 뒤로, 부인하고 싶은 물음 하나가 떠오른다. ‘서른한 살, 사랑이 또 올 수 있을까?’

무슨 사랑이 꽃은 없고 가시만 남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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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나의 도시'의 세 친구. 왼쪽부터 재인(진재영), 은수, 유희(문정희) ⓒSBS
태오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날, 은수는 맞선남 영수(이선균)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친환경 유기농 업체 CEO인 영수는 이름처럼 재미없고 평범하면서도 의외로 따뜻하고 재미있는 남자였다. “나, 은수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는 영수의 고백에 은수는 태오의 존재를 털어놓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고맙다”는 영수. 그렇게 은수는 영수까지 잃었다.

사랑이 은수에게만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은수의 15년 지기 유희(문정희)와 재인(진재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똑 부러지고, 성격 확실한 유희는 자신을 바닥까지 내몰았던 ‘니코틴’ 찬석(윤희석)이 이혼남이 되어 돌아오자, 뿌리치지 못한다. 인생의 8할이 연애였던 재인은 맞선을 본지 20일 만에 결혼을 감행한다. 비뇨기과 의사라는 남편은 자신이 먹던 케이크에 재인의 포크가 닿자 그 부분을 도려내 버리고, CD의 비닐 커버를 버렸다는 이유로 재인을 심하게 나무라는 자다.

이처럼 사랑에 상처받고 외로운 그녀들이지만, 우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선 언제나 안전하다. 때로 바닥까지 드러내며 서로의 가슴을 할퀴어도 그녀들의 우정은 견고하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웃고 싶다. 우린 모두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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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영수(이선균), 유희, 은수, 재인, 태오 ⓒSBS
회사에 문제가 터지자 부장은 은수에게 책임을 떠맡기고, 이미 예정된 제주도 출장에도 눈치를 준다. 급기야 ‘감봉 2개월’ 처분을 받은 은수는 ‘전쟁’이라며 사직서를 쓰지만, 대안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유희는 어릴적 꿈이었던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대기업 대리라는 자리를 버렸다. 부모가 모르게 출근하는 척 정장을 입고 나와선 PC방으로 향한다. 은수와 유희는 웃고 싶다. 그래서 은수는 배를 잡고 일부러라도 웃는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거운 거니까.

10대 때는 막연히 20대가 부러웠고, 20대엔 30대의 안정된 삶을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30대가 되면 20대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자유가 덜하고, 책임이 커졌을 뿐, 여전히 돈은 없고, 사랑도 어렵다. 우리처럼 헤매고, 외로운 은수는 그래서 공감이 간다. 은수의 사랑과 우정, 일을 응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24K’가 아니어도, ‘구리도금’이어도 괜찮다고. 서른한 살, 충분히 사랑하고 이별할 나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은수 이야기

은수는 ‘키 보통, 몸무게 보통, 얼굴 보통, 옷 입는 센스 보통’이라고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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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만의 말씀. 은수 역의 최강희가 어찌 ‘몸무게 보통, 얼굴 보통’이란 말인가.‘최강 동안’이라는 얼굴, 매일 다른 옷을 매치해 입는 패션 센스. 한 마디로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는 최면을 건다. ‘최강희는 은수다. 은수는 평범한 여자다….’ 최면의 결과, 우리는 은수에게 100%에 가까운 공감과 지지를 나타낸다.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은수는 그 평범한 이름 때문에 더욱 평범하게 느껴진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달자의 봄〉의 달자(채림) 등 비슷한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은수란 이름은 흔한 편이어서 드라마 속 고유명사라기보다 ‘30대 평범한 여성’을 나타내는 보통명사처럼 여겨진다.

또 은수는 삼순이처럼 자기 일에 확실하고 능력이 있지도 않으며, 달자처럼 좋은 회사에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 그렇게 순진한 편도 아니다. 직원 10여명 남짓한 작은 회사에 다니고, 연애 경험도 보통이어서 ‘원 나잇 스탠드’를 큰 고민 없이 하면서도 “나 이상한 여자 같지 않았어?”라며 확인하고 싶은 소심한 면도 있다.

게다가 말도 잘 못하는 편이어서 ‘말빨’ 좋은 친구 유희나 거침없이 말하는 직장 후배에게 늘 뒤처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평범한 은수를 ‘꽃미남’인 연하남과 CEO ‘훈남’이 동시에 좋아한다는 것은 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드라마란 어쩔 수 없이 판타지가 필요한 법. 대리만족으로 족해야 할 듯싶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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