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5 16:05

민생은 뒷전 정치권력의 ‘입’이 된 그들

국회로 간 언론인들, 무엇을 했나

브라운관 또는 아침마다 현관 앞으로 배달되는 신문지상에서 여의도 정가를 비판하던 언론인들이 4년 마다 치러지는 총선 직후, 그토록 경계했던 정치권력의 품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00년 4․13 총선에선 전국구를 포함한 273명의 국회의원 중 45명(16%)의 언론계 출신 인사가 금배지를 달았으며, 2004년 4․15 총선으로 구성된 17대 국회에선 298명(12일 현재) 중 40명(13%)의 언론계 출신 인사가 정치에 발을 담갔다.

‘언론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정치권에 진입, 보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무너트렸다는 문제제기를 감수하며 국회에 입성한 언론계 출신 17대 국회의원들은 무슨 활동을 했고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언론계 출신 국회의원이 사는 법; 머리

언론계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동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전면에서 언론을 상대하는 대변인으로서 정당의 ‘입’이 되거나, 기자 시절 자신의 전문분야를 확대해 전략․기획통으로서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현 대통합민주신당) 입당 하루 전까지 문화일보 정치부장으로 일했던 민병두 의원(비례)은 당시 폴리널리스트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다년간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통해 쌓은 감각을 발휘, 여당의 대표적인 ‘전략․기획통’으로 부상하며 지난 4년간 치러진 당내 경선, 지방선거, 대선 등 크고 작은 선거에서 역량을 발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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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엔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 캠프의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아 ‘개성동영’, ‘행복동영’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 화제를 낳기도 했다. 17대 국회 상반기엔 문화관광위원으로 활동하며 방송법 개정안 등 27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부산 수영구)과 MBC 앵커 출신인 박영선 통합신당 의원(비례)은 자당(自黨)의 입이면서 정책 전문가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 케이스다.

박형준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 대변인을 맡아 BBK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한 통합신당과 언론의 공세에 차분히 대응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회를 출입하는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박형준 의원이 맞불식의 격한 대응을 했다면 BBK 논란은 증폭돼 결과적으로 이 당선자에 대한 의혹을 더 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17대 국회 상반기 소장파 의원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 설립을 주도한 박형준 의원은 이명박 당선자의 ‘중도보수’, ‘실용주의’ 이미지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당선자가 지난 5일 제시한 ‘2008 신발전체제’도 박형준 의원의 작품이란 후문이다.

박형준 의원은 17대 국회 상반기 문광위원으로 활동하며 16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중 지난 2004년 11월 대표 발의한 국가기간방송법은 KBS 예산에 대한 국회의 직접적인 간섭은 물론 MBC 민영화를 사실상 전제로 하고 있는데, 차기 정부 미디어 정책의 밑그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업 언론인과 언론단체들은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선대위 대변인으로 주목을 받았던 박영선 의원은 17대 국회가 개원한 후에도 원내 대변인으로서 활약했다. 박 의원과 마찬가지로 총선 때부터 한나라당의 마이크 역할을 해온 전여옥 의원이 날카롭고 딱 부러지는 논평으로 눈길을 끈 반면, 박영선 의원은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운 발언과 유연한 스킨십으로 기자들의 호감을 샀다.

MBC 기자 시절 ‘경제매거진’을 진행했을 만큼 경제 문제와 관련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박영선 의원은 같은 당의 김현미 의원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삼성의 저격수 역할을 자처, 금산분리법 제정에 앞장섰다. 박영선 의원은 17대 국회 동안 23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영선 의원은 또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정동영 캠프 대변인을 맡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의혹을 집중 파헤치는 저격수 역할을 했다. BBK 관련설을 부인하던 이명박 후보가 2000년 11월 당시 MBC 경제부 기자였던 박영선 의원을 BBK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한 모습이 담긴 이른바 ‘박영선 동영상’이 대선을 일주일 전에 공개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언론계 출신 국회의원이 사는 법; 입

박 의원과 함께 17대 국회 상반기 여성대변인 시대를 이끌었던 KBS 도쿄 특파원 출신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비례)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한나라당 입당 전 박근혜 전 대표를 ‘유신공주’라고 비판했던 그는 이후 “만나보니 훌륭했다”고 입장을 바꾸며 지난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박근혜의 복심’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대선 기간 동안 박 전 대표의 세가 불리해지자 이명박 후보에게로 등을 돌려 ‘철새’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 의원은 핵심만을 명쾌하게 짚는 깔끔한 논평으로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로부터 “최고의 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대졸 출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2005년 6월)면서 고졸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 의원은 17대 국회 상하반기에 통일외교통상위와 문광위 활동을 하면서 4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KBS 앵커 출신인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비례) 역시 당 안팎의 스피커로서 입지를 굳혔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를 한 만큼 친근하면서도 차분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박 의원은 17대 총선 당시 선대위 홍보위원장을 시작으로 당 내부는 물론 대외 행사에서 사회를 도맡아 하고 있다.

박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문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언론인 출신 의원 중 가장 많은 72개의 법안을 대표발의 했다. 그러나 정작 언론정책과 관련해선 한나라당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신문․방송 겸영 금지 등을 강제하고 있는 현행 신문법의 완전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어 언론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MBC 기자 출신 노웅래 통합신당 의원(서울 마포갑)과 MBC 아나운서 출신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KBS 아나운서 출신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 KBS 앵커 출신 류근찬 국민중심당 의원 등도 대변인으로 당의 ‘입’ 노릇을 했다. 또 조선일보 기자 출신 최구식 의원은 국회 문광위 간사로 언론관계법을 포함해 24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며, 현재도 KBS 수신료 인상안 등의 키를 쥐고 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 김재홍 의원도 17대 국회 상반기 문광위원으로 방송법 등 10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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