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5 15:20

방송·인터넷 재갈물리는 ‘공안정국 2.0’

검찰·교육부 등 앞장…야당·시민단체“정권 머슴들이 주도하는 마녀재판” 비판

“소나기가 올 때는 피하면 된다.” 미국산 쇠고기 논란이 정점이던 이달 초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와의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자신의 말마따나 ‘소나기만 피한’ 행보를 거침없이 보이고 있다.

닷새 전 “국민과 함께 소통하며 가겠다”며 고개를 숙였던 이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찰 등 권력기관들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과 누리꾼들을 옥죄며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권력기관의 철퇴가 먼저 내려진 곳은 촛불 정국을 주도한 여론들이 모인 인터넷으로 검찰은 지난 20일 조·중·동 광고주들에게 광고 중단을 요구한 누리꾼에 대한 수사 방침을 밝혔다. 광고 중단 요구의 정도를 살펴 업무방해죄·협박죄 등을 적용하고 심할 경우 구속 수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없음에도 나온 조치다.

법학자들과 야당은 광고 중단 요구가 범법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매 행위는 소비자가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중요 수단으로, 제품 선택을 통해 기업의 경영 가치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며 “공권력이 소비자의 의사 표현을 인위적으로 규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원혜영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23일 아침 회의에서 “조·중·동에 광고하는 회사들에 전화를 걸고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것은 위계나 위력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견해”라며 “무리한 수사는 검찰의 본의를 스스로 훼손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도 검찰의 강경대응 방침이 나오자마자 검찰청과 법무부 홈페이지에 “나를 잡아가라”며 자수행렬을 벌이고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도 “민족정론지 ○○일보를 사랑합니다” 식의 ‘칭찬 전화하기’ 방식으로 전개, 반어법을 활용한 항의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24일 ‘인터넷 신뢰저해 사범 전담수사팀’을 구성, “인터넷을 통해 자행되는 명예훼손과 협박 등을 뿌리 뽑겠다. 필요시 검찰이 직접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은 해당 신문사들의 요청에 따라 ‘조·중·동 광고주 압박’ 글에 대해 ‘임시삭제’(열람제한) 조치를 취한 상태로, 민간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는 25일 전체회의를 통해 해당 글의 삭제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방송에 대한 압박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4월29일자 방송에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성을 지적한 MBC <PD수첩>의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20일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PD수첩>이 불분명한 가설과 일방적 주장에 의거해 편파 보도에 나서는 바람에 정부 신뢰도가 치명적 손상을 입었으며 농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협상 대표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또 지난 5월부터 학교 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왔던 신태섭 KBS 이사(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에 대해 동의대는 지난 23일 해임 통보를 했다. 학교 측은 신 이사가 총장의 허락 없이 KBS 이사로 활동하며 학교 수업을 소홀히 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하지만, 언론계 안팎에선 교육과학기술부가 동의대에게 신 이사에 대한 사퇴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연주 KBS 사장의 조기 퇴진을 위해 정권 차원에서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고 이사회 구조 역시 이에 맞춰 친정부적 인사들로 재편하려는 상황에서 정 사장에게 우호적인 신 이사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학교에서부터 신 이사를 몰아내는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KBS 이사회는 25일 정기이사회에서 이 내용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도 검찰은 정연주 KBS 사장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이명박 정부 산하 권력기관들의 이 같은 행태와 관련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장악을 위해 이명박 정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함을 보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도 “이명박 정권의 머슴들이 마녀사냥으로 국민과 언론에 전방위적 협박과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잘하는 일이 물불가리지 않고 언론장악에 골몰하는 것뿐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냐”고 비판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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