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으로부터 공개적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정연주 KBS 사장 ‘8월 위기설’이 방송가 안팎을 휘감고 있다.
내달 4일 개막해 24일까지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과 여름휴가 기간 동안 정치적 현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떨어질 것을 이용해 KBS 이사회와 정부 권력기관들이 ‘정 사장 사퇴’라는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한 제반 조건을 마련할 것이란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 “검찰, 정연주 사장 체포영장 발부해야”
첫 번째 움직임은 검찰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전직 KBS 직원에 의해 제기된 정 사장 배임혐의를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인데, 불구속 기소를 할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구인에 나설지 두 장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찰은 금주 중 한 개의 카드를 선택할 예정인데, 불구속 기소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검찰’이란 비판을 여기저기서 듣고 있는 상황인 만큼 정 사장을 강제로 체포할 경우 야당과 언론·시민단체는 물론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 밖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단 한나라당의 압박이 거세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KBS 사장 같은 경우 (검찰이) 소환장을 두세 번 발부했으면 그 다음 절차는 체포영장이다. 조사를 위한 체포영장 발부는 법에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권력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여론과 방송, 언론사의 눈치를 보면서 무슨 공권력의 집행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반 국민들은 왜 조사받으러 가나. 검찰이 뭐하는 집단인지 모르겠다”며 검찰이 눈치보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 여당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검찰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검찰이 여당 원내대표 말 한 마디에 태도를 바꾸겠냐”면서도 “아침 회의 모두 발언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겨냥한 것인 만큼 검찰은 몰라도 여론 환기용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기소·경영손실 앞세워 해임건의안 의결 가능성
검찰이 정 사장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하든 체포영장을 발부해 강제구인에 나서든 간에 KBS 이사회가 이를 빌미로 정 사장 해임건의안을 결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제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유재천 KBS 이사장은 지난 25일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 소속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에서 “그런 것(검찰 수사와 정 사장 해임건의안 결의를 연계시키는 방안)을 가정해서 어떤 논의를 한 적도 없고, 그럴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진 것도 없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검찰 수사와 함께 KBS 적자 문제를 앞세워 정 사장 해임을 압박할 분위기도 감지된다. KBS 이사회는 내달 13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정 사장에게 상반기 적자 207억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임시이사회가 같은 달 7일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안에서도 KBS 적자 문제로 정 사장 해임의 정당성을 마련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실례로 진성호 의원은 지난 24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방송법 51조 1항을 보면 KBS 사장은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정 사장은 KBS 역대 사장 중 가장 큰 누적적자를 발생시킨 만큼, 스스로 퇴진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KBS 노동조합(위원장 박승규)는 지난 28일 성명을 발표하고 “정연주 사장은 2004년, 2008년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방송 3사 중 유일하게 207억원의 손실을 낸 ‘적자의 귀재’로 공영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있다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KBS 공정방송노조도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사회가 정관에 규정된 대로 정 사장에게 ‘경영책임’을 묻는 과단성을 보여 달라”면서 정 사장 퇴진을 압박했다.
그밖에도 최근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최근 정연주 사장 출석을 요구했다.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사장에 대한 감사원의 출석 요구는 매우 이례적인 일인 만큼 타당한 것인지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도 “KBS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정당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가 감사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 정연주 KBS 사장 | ||
정부 여당, 올림픽·휴가 이용해 정 사장 잘라내기?
KBS의 한 PD는 “검찰이 이번 주중 배임혐의로 (정 사장을) 기소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전체 11명 중 7명이 친한나라당 성향의 이사로 이뤄진 이사회가 내달 13일로 예정된 임시이사회를 앞당기면서까지 정 사장에게 207억원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기소만 결정되면 현재의 이사회는 ‘적자 문제와 더불어 사장 자격에 큰 하자가 생겼다’고 주장하며 즉각 해임건의안을 의결, 8월이 지나기 전 이명박 정권과 함께 정 사장을 해임하고 YTN처럼 이 대통령의 측근을 사장으로 심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면서 “8월 위기설을 허투루 생각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권을 말하면서 ‘해임이 과도하면 무효소송을 제기해 법원판단을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정 사장이) 해임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다 해도 법원 역시 휴가기간이기 때문에 빠른 처리를 기대하기 힘들고, 결국 신태섭 전 KBS 이사의 경우처럼 방통위와 청와대, 이사회가 결탁해 속전속결로 후임을 결정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李정부와 조·중·동, 정 사장 민주세력 상징으로 만들어”
그러나 정부 여당이 이 같은 시도를 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사태에 비견될 만큼 강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검찰이 배임혐의로 정 사장을 기소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직무정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방통위가 정 사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국가공무원법을 근거로 할 수밖에 없는데, 현행 방송법은 K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도 “KBS 사장은 국가공무원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신태섭 전 KBS 이사는 지난 25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KBS가 공공서비스의 양을 많이 늘려왔는데, 이런 부분들은 돈이 꽤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 노력으로 KBS가 공정성이나 신뢰도, 영향력 1위를 차지하게 된 게 아니냐. 또 매년 적자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29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 사장 스스로 개인적 거취를 결정하기엔 이미 정부와 조·중·동이 그를 민주세력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다. 민주 세력들은 정 사장이 임기를 채울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줘야 하고 이를 건드리는 각종 기도에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정 사장 해임 압박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임기 보장직에 대해 특별한 해임 사유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요구하는 게 타당한지 청문회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언론계 인사 문제와 관련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주장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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