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3 10:11

[방송 따져보기]경제지상주의시대의 만가(輓歌), ‘달콤한 인생’

“힘내자, 힘, 힘! 그래. 다 원상복귀 시켜 놔야지. 다애도, 회사도, 와이프도. 다 제자릴 찾아서 앉혀놓은 다음에 하나씩 다시 버려야지. 내 손으로, 내가 원할 때. 그렇게 다 버리고 나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래, 그럼 되는 걸 가지고….”

MBC 주말특별기획 〈달콤한 인생〉 제 15회에서 증권가 톱클래스의 펀드매니저인 하동원(정보석)은 심야에 차를 몰다 이렇게 뇌까린다. 최근 들어 그의 사정은 썩 좋지 않았다.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아내 혜진(오연수)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이야기한 후 집을 나갔다. 다애(박시연)와의 외도 사실 또한 아내에게 발각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애 역시 이준수(이동욱)라는 놈에게 빠져서 제대로 만나주지 않는다. 게다가 알고 보니 아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남자의 정체 또한 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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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인생 ⓒMBC
망신스럽게도 이 사실은 증권가 인터넷에 이미 파다하게 떠돌아 본인의 주가 또한 추락 직전에 놓였다. 바닥에서 출발하여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 하동원에게, 인생의 모든 문제는 능히 통제할 수 있다 자신하던 이 하동원에게, 어찌하여 이런 일들이 연이어 터진단 말인가. 운전을 하며 마음을 다잡던 동원은 실소를 흘리다 말고 비명처럼 외치기 시작한다. “왜?!”라고.

왜? 라는 질문. 우리는 이것을 거꾸로 동원에게 돌려줄 수 있다. 왜 다시 제자리를 찾아서 앉혀 놓아야 하고, 왜 다시 버려야 하는가? 좀 더 근본적인 물음. 왜 인생을 만반의 상태로 통제해야만 하는가?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는 동원의 자신감에는 ‘무엇을 위하여’라는 목적의식이 누락되어 있다. 무엇을 위하여 돈을 버는가가 아니라 돈 버는 것 자체가 지향이 되어 버린 상황. 말하자면 하동원은 성장지상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극 중에서는 동원과 같은 선상에 죽은 강성구(정겨운)가 위치하고 있다. 재벌 2세로서 ‘모든 여자들은 돈으로 점령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재력으로 친구 준수를 착취하던 그는 기이하고 변태적으로 뻗어나간 자본의 말초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하동원과 죽은 성구가 물질적 토대의 영역을 점하고 있는 〈달콤한 인생〉의 세계에서 나머지 모든 인물들은 그 종속의 끈을 쉽사리 끊을 수 없다. 준수는 성구의 죽음 이후 그의 망령에 시달리면서도 성구가 남긴 집과 차, 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준수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다애 역시 한참동안 동원과의 관계를 쉬이 정리하지 못한다. 혜진은 동원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하지만 집에 남겨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노심초사하고 직장까지 뻗쳐 온 동원의 방해공작으로 위기에 처한다.

<달콤한 인생〉은 ‘경제’를 화두로 ‘성장’을 부르짖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대한 우화다.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고 말하기란 쉽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는 일은 개개인의 의지에 달렸다, 라고 말하기 또한 쉽다. 무수히 많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서사들이 그 같은 테마들을 담아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달콤한 인생〉은 이 지당한 명제 앞에서 준엄하게 고개를 젓는다. 드라마 속 준수와 혜진은 그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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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민준 월간〈판타스틱〉편집장/드라마비평가

과연 준수는 성구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혜진은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이 싸움의 끝을 알고 있다. 〈달콤한 인생〉의 서두를 통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싸늘하게 피범벅이 된 준수의 모습을 이미 보았으니까. 메시지는 간명하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의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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