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6 10:18

[방송 따져보기]분열과 적대의 공론장

결국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KBS 앞에서 ‘공영방송을 지키자’라며 1인 시위를 하던 한 여성이 과격한 보수 단체 회원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했다. 그 보수단체의 차량에선 각목과 쇠파이프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KBS와 MBC 주변을 휘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 쪽은 편파 방송을 그만두라며 으르렁댔고, 다른 한쪽은 공영방송을 사수하자며 촛불을 높이 들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 두 진영의 물리적 충돌은 결코 피할 수 없던 것이었다.

이에 대한 가장 성급한 해법은 방송이 분열된 사회를 화해시키고 조정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문이다. 방송법 5조 2항은 “방송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지역간·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의 편에서 화합과 조화를 말하는가이다. 한 쪽의 일방적 입장이 관철되고 있는 상황 역시 그 이해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화합과 조화이다. 최근 새 정권 하에서 재편되고 있는 언론계의 판도가 이와 같다. 새 정권은 언론계에 자기 사람 심기를 위해 열중인데, 이 또한 국민의 화합과 조화를 위해서일테다. 물론 그것은 새 정부의 이해가 관철될 수 있는 화합과 조화이지만 말이다.

두 번째 해법은 첫 번째 해법과 정 반대 방향에서 나온다. 첫 번째 해법이 화합과 조화를 미리 전제했었다면, 두 번째 해법은 화합과 조화를 아예 부정한다. 모두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니 이에 충실해보자고 제안한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가 이 해법이 신봉하는 원칙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결정하듯, 사상의 자유시장 역시도 경쟁과 도태의 원칙에 입각해 어느 순간 균형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란 이름 하에 진행되는 언로의 민영화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와 같은 시장 논리가 어떻게 시장 실패를 야기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결국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도태된 모든 것은 무가치하다고 폄하된다. 그리고 그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는 우리 사회의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언로마저 상실할 것이다.

세 번째 해법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적대를 아예 제도화하는 방법이다. 물리적 충돌을 상징적 충돌로 전환시켜 순화된 방식으로 표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적대와 분열을 콘텐츠화하여 공론화함을 의미한다. 나는 공영방송의 의미가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은 모두의 공익을 위한 방송이라기 보단 분열과 갈등을 공론화하는 방송이다.

사실 모두가 조화롭고 통합된 사회만큼 끔찍한 사회도 없다. 모든 분열과 적대가 지워진 사회는 “우리는 행복해요”를 외치며 안으로 똘똘 뭉친 전체주의와 같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분열과 적대가 우리 사회를 추동하는 힘으로 생각해야 한다. 섣불리 승자의 손을 들거나, 섣불리 패자의 퇴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가 계속 부닥치게 하고 승부가 엎치락뒤치락 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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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여의도에 벌어진 물리적 폭력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결코 화합되고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물리적 폭력을 어떻게 세련된 방식으로 치환해야 하는가이다. 수많은 곳에서 공격받고 있지만 여전히 공영방송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제도일 수밖에 없는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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