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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시계를 확인한다.
아침 6시 일단 알람부터 해제시킨다.
알람은 핸드폰에 메모리된 세 개를 포함, 5분 간격으로 총 6개를 해제시킨다.
이렇게 여유롭게 알람을 해제시키는 것이 벌써 4일째... 알람을 지우면 그만인데
아직까지 그러질 못하고 있다. 6시 즈음에 일어나 알람부터 해제시키고 있다.
그리고는 아침 시간을 멍하니 보내길 나흘째 신문을 읽지만 아침에 신문보는 것도
익숙치 않고, 그리고 인쇄물을 읽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그냥 뒤적이기만 한다.
많은 일들이 터지고, 해결되고, 모르는 새에 지나가고 유가는 100불을 훌쩍 넘기고,
미국 모기지론이 어쩌구 저쩌구, 티벳 사태가 어쩌구 저쩌구...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세상 속으로 빠져 들려면 적응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나만이 아닌 ‘쾌도 홍길동’에 참여했던 모든 스탭들이 똑같이 겪는 공황상태일 것이다.
작년 10월 8일부터 시작해서 3월 21일 촬영 종료시까지 실 촬영일만 145일을 쉼없이 달려왔다. 전국에 펼쳐져 있었던 촬영장소를 버스좌석에 쭈그리고 누워 자던 일을 이제 끝내고, 방안의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을 덥고 자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칼바람 부는곳에서 언 도시락을 먹으며 모두 내 얼굴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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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2TV <쾌도 홍길동> | ||
다시 곱씹어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 액션사극을 겨울에 촬영한다는 것은 정말로 무모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아팠고, 촬영이 거듭될수록 바뀌는 스탭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아침부터 산에 올라가 점심, 저녁을 얼어붙은 도시락으로 때우다 보면 탈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다. 어떤 날은 7명이던 조명팀이 3명만 남았다. 응급실에 실려가고, 숙소에서 안정을 취하고 등등. 연출부 막내가 손에 동상이 걸려 이탈하고, 스크립터는 얼굴에 동상자국인 빨간 반점을 달고 살았다.
근데 난 연출이란 이유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를 할 수가 없다. 정말 사선을 넘는 듯한 순간순간들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순간들에 버텨야만 했다. 많은 스탭들이 내 얼굴만 본다. 칼바람이 불고, 언 도시락을 먹으며 내 얼굴만 본다. 내 입에서 한마디만 떨어지면 된다. 철수!!!! 혹은 오미트(Omit)!!! 어느덧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만이 겪는 일도 아닐테고, 그 많은 일들을 겪어냈던 수많은 선배들에게 종종 경의가 표해지곤 했다. 지난 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를 정면 돌파하며,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산속에서 버텼던 스탭들에게 쫑파티에서 진심을 다해 한마디했다. 이제는 가족에게 돌아가시라고 그들의 드라마에 대한 열정에 감사를 표할 따름이다.
<이산><왕과나>랑 붙는다고? 미쳐야 산다!
‘쾌도 홍길동’이 방송을 시작하는 시점으로 인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이미 타방송사에서는 ‘왕과 나’, ‘정조 이산’이 방송되고 있을 것이고, 주말에는 ‘대왕 세종’이 우리와 같은 시점에 방송을 타게 될 것이고, 퓨전사극의 정점을 찍은 ‘태왕사신기’가 끝난지 불과 한달 남짓. 어설픈 퓨전 혹은 어설픈 정통은 시청자들에게 어설퍼 보이기만 할 것이란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른 사극들 미술비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적은 미술비로 그냥 맨몸뚱아리로 버텨야 하는 상황 속에서 ‘쾌도 홍길동’이 우리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뿐이었다. ‘쟤네들 미친 거 아냐” 소리를 듣는 것. 1회 프롤로그 “관아의 마당에서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다”의 지문을 위해 고민 끝에 6인조 북팀, 전문 댄서 6명, 비보이 4명을 별관 지하연습실에 모았다. 그리고 며칠간의 안무연습, 그리고 드라마의 주무대가 되는 기루 중앙에 홀을 만들고 기생들의 이색공연을 테크노 음악에 맞춰 선보이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 동안 스탭들과 나는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너무 간 거 아냐’, ‘놀래지 않겠어’ 등등.역시나 방송이 나가고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기생들의 테크노 댄스, 괜찮을까?
‘사극이냐 만화냐’, ‘우리의 영웅 홍길동을 어찌 그리 표현할 수 있냐’, 하지만 긍정적인 평도 있었다.‘코스튬 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만들었다는 둥, 퓨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둥’. 우린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갔다. 의상에서부터 소품, 분장, 미용 등 미술분야만이 아니라 조명과 촬영앵글에 이르기까지 저항들도 많았지만 그러한 시도들에 즐거워하는 시청자들도 분명 늘어갔다. ‘홍길동’을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옷을 입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들을 이어갔다. 분명 그 많은 새로운 시도들이 시청자들에게 낯섬을 유발시키는 역효과도 있었지만,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었던 순간들이 소중히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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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섭 PD | ||
* 이 기사는 KBS PD협회보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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