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저녁, MBC 〈PD수첩〉 제작진이 한 자리에 모였다. 1년 여 만에 〈PD수첩〉을 떠나는 손정은 아나운서를 위해 조촐한 식사자리가 마련됐다. 한 마디 하라는 제작진의 요청에 손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지난 1년 동안 〈PD수첩〉을 하면서….” 손 아나운서는 한 마디도 채 잇지 못했다.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끝내 눈물이 흘렀다. “정말 울지 몰랐다”던 손 아나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작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내 밝은 웃음을 찾았지만, 〈PD수첩〉을 향한 그녀의 애정이 마음으로 전해졌다.
| ▲ 손정은 MBC 아나운서 | ||
2007년 10월 30일. 〈PD수첩〉은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1990년 5월 8일 첫 방송부터 고수해온 사전녹화 방식을 벗고, 생방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PD들만의 세계에 처음으로 여자 아나운서를 투입했다. 입사 8개월밖에 안 된 신입 아나운서, 손정은이었다.
“생방송 전환과 여자 아나운서 투입, 지금 생각해도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죠.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우려도 있었어요. 여자 아나운서가 자칫 프로그램의 ‘꽃’으로 전락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 송일준 CP와 PD들은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요. 저의 역할을 확실하게 줬죠. 제작진의 배려는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시청률은 올랐고, 평가도 받았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시청자들도 차츰 〈PD수첩〉의 진행 방식에 익숙해졌다. 제작진과 함께 손 아나운서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손 아나운서는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방송 전 내용을 반드시 숙지했고 해당 아이템에 대한 자료가 얼마큼이던 모두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방송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시사교양국이 있는 10층을 아나운서국 만큼이나 자주 드나들었다.
방송 도중 오는 시청자들 문자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그날 방송과 가장 적합한 의견을 찾아 소개했다. 작가 2명, 조연출 1명이 도와줬지만, 결국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주인의식’이 있었다. 방송 다음날 프로그램 평가회의에도 꼭 참석했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역할은 커졌다. 방송 시작과 끝, 시청자 의견을 전달해주는 데서 방송 도중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새벽 1시가 넘어 끝나도 열심히 준비해서 방송을 한 만큼 뿌듯함은 컸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고, 〈PD수첩〉을 더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생방송이니까 투입된 아나운서, 단순히 그런 존재였으면 제가 이렇게 〈PD수첩〉을 통해 부각되진 못했을 거예요.”
| ▲ 지난 11일 손정은 아나운서가 MBC 〈PD수첩〉 마지막 녹화를 끝낸 후 김환균 〈PD수첩〉 CP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 ||
손정은 아나운서는 “지난 1년 동안 〈PD수첩〉과 함께 울고 웃었다”. 지난 1년 동안 〈PD수첩〉은 늘 이슈의 중심에 서있었다. 〈PD수첩〉은 비판해야 할 때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삼성 비자금 파문, BBK 사건, 광우병 방송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제작진은 물론 손 아나운서 역시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올해 4월. 광우병 방송이 나간 이후 〈PD수첩〉은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PD수첩〉을 향한 끊임없는 논란 속에서 제작진이 고통을 겪을 때, 손 아나운서 역시 같은 고통을 겪었다. 손 아나운서는 “마치 가족에게 일어난 일처럼 제작진과 똑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손 아나운서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지난 7월 MBC 여의도 본사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일부 언론에서 여성 앵커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금도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고 있는 손 아나운서는 당시 논란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PD수첩〉 광우병 보도 이후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주말 〈뉴스데스크〉를 하면서 늘 화면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어요. 제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런 의견과 상관없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있는데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수치심 같은 것을 느꼈죠. 앵커가 전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회 현상에 참여하고, 현장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MBC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고, MBC 노동조합이 참여했다. 노조의 일원인 손 아나운서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 논란이 생길까 싶어 아나운서국에 미리 허락을 받았다. 손 아나운서는 “항간에 오해가 있는데,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며 “스스로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앵커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잘못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손 아나운서는 “촛불을 들었다고 정부에 무조건 반대한다거나 한 쪽으로 편향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어떤 사안이든 비판할 일이 있으면 하고, 칭찬할 일은 칭찬한다. 한 가지 모습만 보고 좌, 우로 나눠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 ▲ 〈PD수첩〉 제작진과 손정은 아나운서 | ||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렇게 손 아나운서는 〈PD수첩〉과 함께 성장했다. 〈PD수첩〉을 통해 사회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비판의식도 생겼다.
“1년 동안 정말 〈PD수첩〉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어요. 스스로 주체가 되려고 많이 노력했고, 실제 〈PD수첩〉 제작진의 느낌이었어요. 지난 1년은 저의 방송 역사에서 정말 잊지 못할 시간입니다. 〈PD수첩〉을 통해 성장통을 겪은 것 같아요.”
〈PD수첩〉을 떠나는 손 아나운서는 이제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손 아나운서는 다음 달 출산휴가를 떠나는 최윤영 아나운서를 대신해 〈W〉 진행을 맡는다. 처음 하는 단독 진행이다. 손 아나운서는 “아직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진행자가 됐으면 좋겠다.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다”고 밝혔다.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미디어&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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