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3 10:04

언론인 정연주가 해야 할 일은?

[미디어클리핑] 李대통령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산 쇠고기 파문 등 국정 난맥에 대해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담화에서 쇠고기 파문과 관련해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과의 대상은 ‘여론수렴 부족’ 등에만 국한했다. 지난 20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는 해결됐다는 게 이 대통령의 주장이다.

또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면서 인적 쇄신과 정책 수정 등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23일자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이 “알맹이 없는 사과”라고 비판한 이유다.

반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대통령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는지에 관심을 보였다.

   
▲ 중앙일보 1면

<중앙>은 1면 “‘모두 제 탓’ 세 차례 숙였다”를 아예 제목으로 뽑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는 쇠고기 파문과 관련, “정부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문 낭독을 마친 뒤 머리를 두 차례 더 깊이 숙였다. 담화 시작 때의 인사를 제외해도 모두 세 차례 고개를 숙인 셈이다.

이 대통령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는지에 관심을 보이던 <중앙>은 곧이어 “사과의 수위는 예상보다 높았다”고 평가했다. 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사과, 유감 등 표현 수위를 놓고 고민했다. 국민의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송구’란 단어를 택했다”는 설명을 덧붙이더니, 한때 ‘참으로 송구스럽다’, ‘송구스럽기 그지없다’는 표현까지 검토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얼마만큼 ‘송구스러워’ 하는지 만을 설명했을 뿐이다. <중앙>은 1면 기사 안에서 이 대통령이 왜 국민에게 ‘송구스러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대통령 담화문 주요내용을 △촛불 집회 △쇠고기 협상 △국정 혼선 △한미 FTA 등으로 구분지어 간략히 전달했을 뿐이다. 국민 앞에 겸허한 이 대통령을 홍보하느라 바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동아>는 5면 “네번 숙인 대통령” 기사에서 이 대통령의 고개 숙인 횟수를 <중앙>보다 한 번 더 추가했다. <중앙>이 제외한 담화 시작 당시의 인사를 더한 듯 보인다.

<동아>는 취임 87일 만에 국민들에 대한 사과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고민에 집중했다.

<동아>는 “이 대통령은 이날 담화문 발표 후 임채정 국회의장을 찾아 한미 FTA 비중동의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청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정치적 제스처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취소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최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야·학계·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지지도 재고와 국정운영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사과, 경찰은 언론통제?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국민에게 사과를 했는데 경찰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농성단에 대한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을 막아섰다.

<한겨레>는 2면 “경찰 ‘쇠고기 농성장’ 의원·기자 출입통제” 기사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야당의원 농성장’에 가려다 경찰에게 제지당해 1시간 30분여 동안 승강이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21일 같은 장소에서 경찰이 일반 시민의 출입은 허용하면서 취재 기자들에게만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한겨레>는 조성봉 <통일뉴스> 기자의 말을 인용, “밤 8시께 야당 의원의 농성 현장을 취재하러 들어가는데 경찰이 막으면서 멀리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일반 시민은 자유롭게 왕래하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경찰은 <미디어 오늘> 등 여러 언론사 기자들의 출입을 저지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비판언론 전방위 압박

이명박 정부가 비판언론에 대해 정부기관을 총동원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겨레> 8면 “국가기간 총동원 ‘비판언론’ 압박”에서다.

<한겨레>는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감지되거나 터져나오면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라면서 “특히 KBS 감사 착수가 결정되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압박 수위가 최고치에 이른 느낌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3개월도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압박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꼬집었다.

   
▲ 한겨레 8면

<한겨레>는 정부의 이 같은 전방위 압박의 원인을 ‘5공식’ 상황 인식 때문이라고 봤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지 못해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방송통신위원회의 ‘다음’ 댓글 삭제 요청 △언론중재위의 MBC <PD수첩> 보도문 게재 요청 △교육과학기술부 외압에 따른 동의대의 신태섭 KBS 이사(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에 대한 이사직 사퇴 요청설 등을 언급하며 “언론의 정상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 이전 정권에선 볼 수 없던 방식의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 같은 대언론 압박은 ‘역풍’에 부닥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면서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말을 인용, “우리 국민들은 1980년대 한국방송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펼친 경험이 있다. 시민단체만의 운동이 아니라 범국민적인 공영방송 지키기 운동도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중 “오만한 KBS” 한목소리

KBS가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정이 부당하다며 23일 행정심판위원회에 ‘특별감사 실시 취소심판 및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오만하다는 것이다.

<조선>은 2면 “감사원 위에 KBS?”에서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 “적자 경영은 KBS가 계속 지적을 받아온 사안이며, 공공기관으로서 경영 부분의 감사조차 받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감사원 관계자의 “청구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었고 규정과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피감기관이 감사 결정 자체를 거부한 사례는 없었던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중앙>은 2면 “KBS는 고장 나도 못 고치는 자동차” 기사로 KBS 때리기에 나섰다. 한국이사협회 주최로 지난 21일 열린 ‘경영권 승계,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김일섭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이 “KBS 이사회 구성이 정치적인 고려로 이뤄지면서 KBS는 이미 망가졌다. KBS 이사는 한 번 선임되면 (사장을 뽑고 연임을 결정하는) 막대한 권리를 보장받지만, 꼭 필요한 이사 해임 조항은 이사회 규정에 없어 정작 이사 본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해임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또 “이처럼 제도적인 결함이 분명하지만 고칠 방법이 없는 KBS는 고장 나도 고칠 수 없는 차”라고 비유하며 조기 퇴진 압박을 듣지 않는 정연주 KBS 사장과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이사가 더 많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고 한다.

정연주, 중립지대 KBS 완성하라

정연주 사장에 대한 정권과 보수 진영의 사퇴 압박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종철 <한겨레> 논설위원은 언론인으로서 그의 마지막 할 일을 당부했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KBS가 중립지대에 남을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완성하라는 것이다.

김 논설위원은 <한겨레> 35면 “언론인 정연주가 할 일”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이명박 정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정 사장에게 있다고 말한 것을 지적하며 “현재의 KBS가 최소한 정치권력과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 35면
그는 “실제 최근 보도를 보면 (KBS가) 정부나 정치세력을 두둔하지 않는다. 쇠고기 개방 파문이나 공직자 검증 보도는 어느 매체보다 깊고 날카로웠다”면서 지난해와 올해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각각 14차례, 3차례 수상한 점을 언급, “정권의 나팔수라는 과거의 오명은 확실히 벗었다”고 평가했다.

김 논설위원은 “이런 성취가 정연주 사장 덕분이라고 한다면 기자나 프로듀서 등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해 온 KBS 사람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지만, 정권 전체가 정 사장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을 보면 오히려 국민에게는 그가 당분간 자리를 더 지키는 게 나을 듯 싶다. 정연주 이후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낸 김 모씨가 차기 KBS 사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설령 정권의 방송장악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사장을 하는 방송은 정권의 딸랑이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 사장에게 KBS를 정권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중립지대로 만들 것을 당부하며 “이 싸움에서 만신창이가 된다면 오히려 언론인으로서 영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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