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1 15:17

'엄마가 뿔났다' 노인을 위한 판타지는 위태롭다

[방송 따져보기] 조민준 월간〈판타스틱〉편집장

나이가 찰 대로 찬 맏딸은 당최 결혼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나 뿐인 아들 녀석은 제 나이보다 다섯이나 많은 여자를 덜컥 임신시켜 집으로 들어앉히질 않나, 막내딸은 장래 걱정도 없이 여직 학교엘 다닌다는 사내와 사귄대서 골치를 썩이다, 둘이 먹고사는 문제는 그 집 사정을 보아 별 문제없을 것 같아 맘을 놓았더니 이젠 남자 집에서 쌍심지를 켜고 반대란다. 이래저래 엄마의 지끈거리는 머리를 뚫고 나온 뿔이란 좀체 들어갈 날이 없는 것이다.

KBS 2TV의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는 김수현 작가의 가족극 계보에서 〈목욕탕집 남자들〉(1995), 〈내 사랑 누굴까〉(2003)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드라마다. 이 세 작품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과하지 않은 코믹 터치에, 배우 이순재가 출연하며, 이순재가 연기하는 할아버지와 그의 3대 가족들이 극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극의 주요 갈등들은 그 3대째의 결혼 문제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방점은 ‘3대 가족’, 즉 대가족 설정에 있다.

대가족이라는,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설정에 유념하며 ‘뿔난’ 엄마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과년한 맏딸은 비록 시집을 못 갔을지언정 변호사라는 번듯한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엄마를 살갑게 대하려 노력한다. 아들 역시 사고는 쳤을지라도 세탁소 사장으로서 밥벌이 걱정은 없으며 품안의 자식으로 말도 잘 듣는 편이다.

   
▲ KBS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 ⓒKBS

막내딸도 강단 있는 성격이긴 하나 엄마의 뜻을 무턱대고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 대화 상대로서 훌륭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웃겨 봐라’는 요구에 넉살 좋게 아내 앞에서 각설이 쇼를 할 줄도 안다. 마음이 답답하면 시아버지와 데이트하며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 가족의 구성원들 중 어느 하나도 엄마와 반목하거나 소원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요컨대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한자 여사의 골칫거리들이란 기본적으로 튼튼하게 구축된 가족의 틀을 전제로 빚어진 고민들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고민의 경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고민이 구축될 수 있는 지점, 즉 대가족이라는 전제 자체가 비일상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엄마가 뿔났다〉는 앞서 언급한 김수현 작가의 두 드라마와 또 다른 공통점을 형성한다. 비록 갖가지 고민거리들을 짊어지고 와 속을 썩일지언정, 아들 딸 손자 손녀를 거느리고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를 세 드라마는 담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대가족 세대를 호시절로 추억하는 이들을 위해, 그 생활상을 21세기 현재 시제로 업그레이드한 판타지 드라마인 셈이다.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극을 쓰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고로 (말하자면) 김수현식 노인 판타지 3연작을 살펴봐도 세태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식 독재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시대. 하여, 싱글 맘과 결혼하겠다는 아들의 고집도 집안에 들어와 살겠다는 조건하에서 허락해야만 하고(〈내사랑 누굴까〉), 손주의 이름을 지을 권리도 며늘아기에게 양도해야 한다(〈엄마가 뿔났다〉).

〈엄마가 뿔났다〉에 이르러서는 이제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의 분가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 이렇게 안간힘을 쓰면서까지 ‘대가족’이라는 시대착오적 설정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만 할까? 핵가족, 3인 가족의 시대에 맞추어 가족극도 이제 새로운 틀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대가족이라는, 고리짝의 이상향을 여전히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있는 〈엄마가 뿔났다〉의 판타지는 그런 면에서 위태롭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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