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와 가상이 빚어낸 '짝짓기 신드롬'
‘연애의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이 되면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유독 인기를 끌고, 로맨스 소설과 멜로드라마도 어느 때보다 강한 흡인력을 가진다. 극장가엔 벌써부터 연말의 들뜨는 분위기를 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동명의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한 〈순정만화〉의 카피는 얄밉게도 ‘올 겨울도 혼자 보낼 건가요?’다. KBS 월화 미니시리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송혜교와 현빈마저 연애 욕구를 한껏 부추긴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도, 모두 커플들뿐이다. 실제 커플 혹은 가상의 커플, 아니면 커플이 될 예정인 사람들이 나온다. 겨울이 다가오며 이 같은 현상은 뚜렷해졌다. 여전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강세 속에서도 ‘연애’하는 프로그램들은 다른 변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과거와의 차이라면 조금 더 독해졌다는 것. 가상의 부부가 되어 아이를 맡아 돌보고, 맞선을 보기 위해 치열한 전쟁 같은 게임을 통과해야 한다. 과감한 스킨십도 눈에 띈다. 이제 포옹과 뽀뽀 정도는 기본이고, 여자가 남자 무릎 위에 앉는 모습은 물론, 프로그램 안에서 남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더 독해지고, 더 리얼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짝짓기’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한때 최고의 화제와 시청률을 자랑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는 이제 시청률 10%선을 사수해야 할 지경이고, KBS 〈해피선데이〉 ‘꼬꼬관광 싱글싱글’은 방송 2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한 프로그램이 지면, 다른 프로그램이 살아나면서 ‘짝짓기’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짝짓기’ 프로그램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한계, 그리고 TV의 ‘커플 맺기’를 통해 뜬 스타들을 알아본다.
리얼리티와 가상이 빚어낸 '짝짓기' 신드롬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는 여전히 ‘리얼 버라이어티’다.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 ‘1박2일’,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좋다’ 등 3강 체제는 아직 건재하다. 하지만 양적으로 보면 ‘짝짓기’ 프로그램이 거의 압도적인 수준이다. 계절 탓인지,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연애에 몰두하고 있다. 소개팅(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이나 맞선(골드미스가 간다)을 통해 이성을 만나고 데이트를 즐기다(연애시대)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뒤(내 딸의 남자) 결혼에 골인(우리 결혼했어요)하는 식이다.
‘짝짓기’의 홍수…그런데 어디서 봤더라?
최근의 ‘짝짓기’ 프로그램 흥행을 주도한 것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연출 임정아·전성호, 이하 우결)였다. 지난 3월부터 방송된 ‘우결’은 당시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였던 ‘집단 리얼 버라이어티’에 대한 대안 차원에서 나온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이나 ‘1박 2일’류의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물론 달랐고, 사랑의 작대기를 연결시키는데 그쳤던 기존의 ‘짝짓기’ 프로그램과도 차이가 있었다. 스타들의 가상 결혼이라는 ‘설정’과 ‘리얼리티’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던 ‘우결’은 숱한 가십성 기사를 쏟아내며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서 상당한 성적을 거뒀다.
| ▲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출연자들 환희, 화요비, 손담비, 마르고 ⓒMBC | ||
또 지난달에는 골드미스들의 맞선을 주선하는 SBS 〈일요일이 좋다〉 ‘골드미스가 간다’(이하 골미다)가 신설되고, 관찰 카메라와 실험을 이용한 ‘연애 버라이어티 쇼’ 〈연애시대〉(연출 안범진, 이영준)가 이달 6일부터 방송 중이며, 오는 28일부터는 장모를 중심으로 예비 사위들의 서바이벌 경쟁을 그릴 MBC 〈내 딸의 남자〉(연출 김재환)가 첫 방송된다. 최근에는 외국인 여성들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토크를 펼쳤던 KBS 〈미녀들의 수다〉(연출 이기원·김필준)도 ‘미녀의 남자친구를 소개합니다’(미친소)란 코너를 신설해 ‘짝짓기’ 행렬에 동참했다.
이 가운데 ‘우결’이 ‘짝짓기’로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 대개의 프로그램은 기존의 ‘짝짓기’ 프로그램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꼬꼬관광’은 〈강호동의 천생연분〉,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 〈X맨〉과 같은 프로그램의 ‘해외 촬영 버전’으로 볼 수 있고, ‘골미다’의 남녀가 맞선을 본 뒤 만남을 지속할지를 결정하는 형식은 과거 SBS에서 방송됐던 박수홍 진행의 〈결혼할까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모가 딸 대신 사위를 ‘검증’하는 〈내 딸의 남자〉는 4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 그리고 여성의 어머니가 함께 출연해 선을 본 KBS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와 닮은 구석이 있다. 〈스친소〉 역시 스타의 친구들이 소개팅의 주체가 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사랑의 스튜디오〉로부터 이어진 ‘짝짓기’ 프로그램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 결국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걸 증명하듯, ‘짝짓기’ 프로그램도 돌고 돌며 반복 재생산되는 것이다.
과감하고 솔직…과도한 설정은 몰입 방해
물론 지난 10여 년간, ‘짝짓기’ 프로그램에도 변화는 있었다. 일반 남성들과 여성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미팅’류의 프로그램 비중이 줄고, 스타들의 출연 빈도가 높아졌다.
| ▲ 사이판 등 휴양지에서 스타들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담았던 KBS '꼬꼬관광'이 방영 2개월만인 지난 23일 잠정 폐지됐다. ⓒKBS | ||
미국식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과 같은 케이블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나와 단정함을 뽐내던 기존의 ‘맞선’ 프로그램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러운 (가상)연인의 모습을 보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대체된 것이다.
프로그램 속 스타 커플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가십성 기사로 생산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이는 ‘우결’이 방송 초반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알렉스-신애 커플의 알콩달콩 신혼 생활과 서인영-크라운J의 티격태격하는 모습 등은 연일 기사로 쏟아져 나왔다. ‘우결’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시청자가 ‘신상’이란 단어의 뜻을 알고, 정형돈과 사오리의 행동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다. 이처럼 스타들이 출연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은 인터넷 노출면에서 유리한 편이다.
| ▲ SBS '골드미스가 간다'의 진재영 ⓒSBS | ||
물론 이들 스타의 모습이 정말 ‘리얼’한가는 알 수 없다. ‘리얼리티’라는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도 스타들의 진심은 곧잘 의심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짝짓기’와 ‘연애’를 내세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계다. 특히 ‘리얼리티’란 프로그램 안에 연출이나 현실이 개입하면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타격을 입는다.
‘우결’의 알렉스-신애 커플이 알렉스의 음반 녹음 문제로 이별했다가 재회한 뒤,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는 과정은 ‘우결’에 있어 적지 않은 치명타가 됐다. 현실의 개입이 ‘리얼리티’로 포장된 프로그램 속 가상현실에 대한 몰입을 깨는 것이다.
최근 서인영-크라운J 커플과 정형돈이 한 집에서 지낸다는 설정이 작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의 과장된 언어와 표현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스친소〉에서 처음 만난 출연자들이 상대방의 선택을 받기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거나, ‘우결’의 마르코가 손담비에게 청혼 반지를 내미는 모습도 ‘설정’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과연 ‘짝짓기’는 진화할 것인가
‘우결’은 가상의 스타 커플을 통해 시청자들이 결혼의 실제를 체험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는 취지로 방송 초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일부 커플들이 하차하고, 최근 시트콤적인 요소가 늘어나면서 프로그램이 점차 힘을 잃었다는 평가다. 20%를 넘기던 시청률은 최근 10% 초반까지 하락했다. ‘우결’의 제작진은 “파격적인 커플을 투입하겠다”며 반등을 노리고 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꼬꼬관광’도 저조한 시청률과 환율의 급등 때문에 방송 2개월 만에 지난 23일 잠정적으로 막을 내렸다.
대개의 예능 프로그램이 그렇지만, ‘짝짓기’ 프로그램의 수명은 길지 않다. 기존의 ‘짝짓기’를 답습한 프로그램들은 특히 수명이 짧았다. 과거 SBS 〈선택남녀〉가 2개월 만에 폐지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문원 평론가는 “‘모의연애’, ‘모의결혼’이 하나의 흥행코드로 자리 잡긴 했지만, 한국의 트렌디한 대중문화 시장에서 꾸준히 먹히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애도 오래 되면 지치듯이, 유행이 빠르게 도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짝짓기’의 답습은 싫증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해결책은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에 대한 답이다. ‘우결’이 ‘집단 리얼 버라이어티’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듯이, 돌고 도는 ‘짝짓기’의 관행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향후 ‘연애 프로그램’의 생존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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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프로그램의 스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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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이민우 윤은혜♥김종국 |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미디어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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