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지금의 한국이라는 나라를 특징지을 수 있는 단어 한 마디를 얘기하면 무엇일까? 한국을 하나의 연극 무대처럼 생각해보자. 주인공들이 올라가서 재밌든 재미없든, 연극을 하고 국민들은 관객이 되어서 가끔 박수를 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일어나서 커다란 환호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꾸벅꾸벅 졸면서 이 지겨운 연극이 언제나 끝나나,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자.
김대중, 노무현 시기에 ‘여당 같은 야당’으로 선진화 담론으로 권토중래를 꿈꾸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무대에서 맹활약할 시기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중들은 지금 그들이 지지하는 배우들의 터무니없는 ‘슬랩스틱’에 다소 당황해하며, 이제나 저제나 불을 뿜는 연기, 그리고 세계의 위기에도 끄떡없는 박정희식 차력술을 선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의 신화는 ‘속도’이다. 아, 그러나 이미 김연아의 스펙터클에 익숙해져 버린 선진화 국민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차력술은 아직 그다지 감동이 없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김대중, 노무현 시기에 반대로 “이제 기다리면 한나라당도 사라지고, 모든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로 갈 것이다”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지금의 연극 공간은 악몽의 연속이다. 원맨쇼와도 같았던 5년 동안 주연 겸 구단주였던 사람이 관객의 입장료를 떼어먹고, 자기 사저를 지었다는 소식에 연극을 보면서도 영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한 때 과도한 이미지의 투사로 자신들과 동일시했던 주연배우의 몰락은 현재의 연극도 지독하게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었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연극마저 “거짓말이었다!”라는 거대한 부조리극처럼 되어버린 상황 아닌가. 이것은 꿈일뿐이야라고 생각하지만, 연일,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라고 현실이 노도와 같이 밀어닥치고 있는 셈이다.
이회창도 지지한 적 없고, 이명박도 지지한 적 없지만, 노무현도 지지한 적 없는, 한 번도 자신들이 지지했던 정치세력이 제대로 국회 원내교섭단체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가 만들어내는 연극은 영 따분하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서 푼짜리 오페라’일 것 같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혹은 ‘자본주의가 원래 그렇다는 걸 이제야 알았나?’ 이렇게 시큰둥하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그들 역시 뜨거운 정치 관객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한 줌뿐인 좌파 정당이지만, 비록 그들만의 리그이지만, 뜨겁기는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 소막극이 펼쳐진다.
▲ 5월1일 노동절 ⓒ민주노총
그리고 이들 사이로 무대의 관객 중 아무도 지지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관객석에 앉아서 하품하면서 지루하게 연극을 보고 있어야 하는 20대와 50대로 주로 구성된 룸펜들, 그리고 ‘질 나쁜 고용’에 묶여있는 대다수의 비정규직들이 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어요, 그리고 돈도 없어요! 일반적으로 이 사람들은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 옳겠지만, 본인들은 관객석 내에서 ‘민중’이라는 리본을 달고 있기를 끝끝내 거부한다. 우리는 이름 없는 비정규직이거나, 미취업자 혹은 취업포기자일지는 몰라도, 민중은 아닙니다!
이런 관객들과 함께 한국에서는 매년 5월 1일, 메이데이부터 5월을 가득 매우는 민중행사들 그리고 6월의 6.10 항쟁에 이르기까지, 임시 무대가 펼쳐진다. 뜨겁고도 빠르게 진행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모든 것들이 집중되어 있는 듯한 메이데이로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무대, 이 무대가 올해도 펼쳐진다. 이 순간만큼은 평소에 관객석에 앉아있던 시큰둥하고, 별 반응도 없던 과객들이 온통 무대로 쏟아져 나와서 그야말로 민중의 제전, 민주의 대축제, 그리고 보수의 대반격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 두 달 동안만큼은 정치인들이 조연이자 관객이 되고, 조용하던 관객들이 거리를 매우며 주연이 되고, 그에 맞서는 악당의 역할은 경찰들에게 주어진다. 실제로 한국의 전의경은 메이데이로부터 시작되는 단 두 달을 위해서 일 년 내내 그들의 방패를 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한 축은 “저 좌빨들 모두 잡아넣어라”라고 인터넷을 달구는 보수주의자들도, 마치 이 순간을 위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지가 있었던 듯, 그 모든 것을 녹여내는 듯한 용광로가 시청 앞을 축으로 전국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뜨거운 메이데이, 올해도 시작된다, 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스펙터클이 그리웠던 사람들, 아니면 좌빨들 잡아먹지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아스팔트 우파들', 무대는 넉넉하고, 모두에게 역할이 주어져 있다. 어떤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도 2009년까지, 해마다 사회 대스펙터클처럼 펼쳐지는 이 거대한 연극 무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무슨 상관이랴! 일년에 이 두 달만이, 국민이 국민 대접받는 순간인데 말이다. 올해는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이 축제의 메인 메뉴가 될 듯 싶고, 인터넷 실명제, 방송장악, 이런 주제가 오를 것 같다. 여기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는 성찰의 오체투지 행렬까지, 올해 축제의 메뉴는 그 어느 해보다 다채롭다. 축제가 끝날 때쯤이면, 어쨌든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발 더 나아가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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