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는 동안 시청자들이 행복했다면 만족한다”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조금은 지쳐 보였다. 지난 18일 만난 이재규 PD는 드라마가 끝났지만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고, 밀렸던 집안일을 처리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 떠나는 3개월간의 뉴질랜드 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 시원섭섭하다”는 이재규 PD에게 아직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들었다.
1악장. “처음엔 쉽게 생각했죠”
처음엔 쉽게 생각했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캐릭터만 잘 살리면 쉽게 찍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장소도 비교적 단조로웠다. (〈다모〉나 〈패션 70s〉에 비해) 이번엔 즐겁고, 편하게 일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국, 제일 힘들었던 작품이 되고 말았다.
▲ 이재규 PD ⓒMBC
2악장. “그러다 큰 코 다쳤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4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등장했다. 연기자들은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오보에 등 생소한 악기를 불과 몇 개월 만에 실제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익혀야 했다. 연주하는 장면 하나를 찍는데도 24시간 이상 걸렸다. 연기자들의 손동작과 음악을 일일이 맞추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이재규 PD는 “음악 촬영을 하게 되면 3분짜리 한 곡을 위해 사운드 25개, 비디오 25개 트랙이 나온다”며 “1~2초짜리 컷을 많이 쓰다 보니 그 데이터를 보고 편집을 한다는 것이 보통 초인적인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작업이 쉽지 않은 만큼 회가 거듭될수록 꾀가 늘거나 시간에 쫓겼을 법도 한데 〈베토벤 바이러스〉는 끝까지 대규모 공연 장면을 이어갔다. 그리고 ‘초반에 몇 번 공연하는 장면이 나오다 사랑 이야기로 빠지겠지’ 하던 일부의 우려를 씻어냈다.
3악장. “훌륭한 대본, 연기자, 스태프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회가 거듭될수록 〈베토벤 바이러스〉를 향한 시청자들의 지지는 커졌다. 여러 악기들이 모여 완벽한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출자를 포함한 스태프, 배우, 작가의 ‘협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PD는 “기본적으로 좋은 대본이 있었고, 여기에 배우들의 좋은 연기, 스태프들의 헌신적 노력이 모두 어우러져 잘 된 것 같다”며 “당초 비주류들이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아웃사이더가 되는 이야기를 하려던 의도도 거의 이뤄진 것 같다”고 평했다.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그려졌다. 주인공 두 세 명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 각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그렸다.
이 PD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뭉쳐져야 전체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까워진다”며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음악으로 인해 희망을 갖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MBC
4악장. “강마에는 기본적 전형에서 벗어난 인물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한 여러 인물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사람은 역시 지휘자 강마에(강건우)였다. 직설적이고 독선적이면서도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강마에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강마에의 독특한 말투 역시 화제가 됐다.
이 PD는 “강마에 캐릭터는 드라마 주인공이 가져야 된다는 기본적 전형에서 많이 벗어난 인물이었다”며 “만날 먹던 밥에 먹던 반찬 아니니 일단 호기심을 가졌고, 그래서 오히려 더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이나 행동에서 점점 조심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강마에는 하고 싶은 말, 해야 되는 말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가감 없이 얘기하죠. 그런 것을 보고 시청자들이 대리만족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생각해요.”
이 PD는 강마에를 연기한 탤런트 김명민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그는 “김명민 씨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며 “이전 드라마까진 개인 스태프랑 농담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계속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다. 생활 전부를 드라마에 쏟아 붓는 사람이고, 너무 충실한 연기자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 이 PD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드라마를 보고나서 자신의 삶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였다면 좋겠다”며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이 조금이나마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며 는 바람을 밝혔다.
▲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MBC
5악장.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음식 주고 싶어요”
〈베토벤 바이러스〉는 단편을 빼면 이 PD에게는 세 번째 작품이다. 퓨전 사극 〈다모〉를 시작으로 〈패션 70s〉를 거쳐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이 PD는 세 작품에서 모두 다른 색깔을 드러냈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를 묻자 이 PD는 “천성이 그런 것 같다”며 “시청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색다른 음식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가 연출한 단막극 세 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MBC 베스트극장 〈나비〉, 〈소림사에는 형님이 산다〉, 〈이영숙 사진관〉이다.
“세 작품이 각각 너무 달라서 아마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예요. 새로운 것을 해야지 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쌓이다 보면 저의 색깔이 보이지 않을까요?”
세 작품 내리 좋은 성적을 얻은 것에 대해 스스로 “억세게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 PD는 “그러나 이 행운이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점 불안하기도 하다”며 “한두 번쯤 실패하더라도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들이 그랬듯 용기를 갖고 다시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연출자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PD는 다음 작품 계획에 대해 묻자 “영화도 고려하고 있고, 여러 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단은 여행을 떠나 푹 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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