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5 16:22

청개구리 신문, 능구렁이 방송

[시론]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승리의 여신은 결국 오바마를 향해 미소를 던졌다. 미국 유력 언론매체들의 정세 전망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오바마의 승리는 더욱 안정권으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을 불과 며칠을 앞둔 시점에도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사설이나 논평을 통해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분명하게 표명했고, 한 대학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방송 뉴스 역시 오바마의 캠페인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언론들은 대통령선거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이처럼 확신을 갖고 자유롭게 보도하고 있고 이를 대하는 독자나 시청자 유권자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적 결단과는 크게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아마 우리나라 같았더라면 지지나 반대 표명을 하는 언론에 대해 즉각 공정성의 문제를 삼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을 것이다. 우리 언론은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해 공개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를 국민정서상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보도에 있어서 엄격한 기계적 공정성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의 후보시절 미주리주 연설 장면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2장 심의기준에서도 적시하듯 방송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이를 위해 공정성과 형평성 그리고 객관성 등을 준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우리의 방송은 엄격한 공정성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정치성이 농후한 메시지를 전했던 능구렁이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방송과는 달리 신문의 경우는 선거와 같은 민감한 부분에서 언론보도의 자유가 좀 더 보장돼있음을 알 수 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9조 평론의 원칙에서도 명시하고 있듯이 사설이나 평론에 있어서 특정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신문은 방송보다 훨씬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우리나라의 신문들은 이렇듯 정치적 평론의 자유를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이를 적당히 사장시키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그토록 주장하고 싶은 정치적 소신을 겉으로는 살짝 덮어두고 실제에 있어서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노골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대부분의 윤리강령들은 그토록 어기면서도, 해도 좋다는 조항은 왜 또 그렇게 손사래를 치는지 모르겠다. 청개구리 같은 심보일까 아니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일까.   

선거 때만 불거져 나오는 공정성 논란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미국은 훨씬 그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물론 민주정치의 역사가 아직 일천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미국의 그것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정치권력에 의한 방송장악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민주정치·민주방송을 논한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권리에 해당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우리 언론의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정치 캠페인에 관한 사회적 소통 현상은 언론과 정치권력만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독자나 시청자 유권자의 반응 없이는 현대사회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함에 있어 언론과 정치 그리고 공중이라는 삼각구도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선에 관한 미국의 주요 방송 뉴스 분석에서 오바마에 대한 긍정적 코멘트를 담은 뉴스 아이템들이 매케인의 그것에 비해 두 배를 넘을 만큼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두고 공화당을 비롯한 그 정치적 지지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러한 뉴스 보도 현상이 공정성 문제로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됐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지난 해 말 대선을 치른, 그리고 앞으로 5년 후 또다시 같은 일을 겪어야 할 우리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자유롭고 책임 있는 보도를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언론이 그 어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두 가지의 전제가 비교적 잘 보장됐다고 믿는 미국의 독자나 시청자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에 특정 신문사나 방송사로 몰려가 시위하는 일이 적은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청개구리같은 신문이나 능구렁이같은 방송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은 아닐까.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2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