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4 10:01

촛불 ‘좌빨’이라던 조중동, ‘백색테러’엔 침묵

[보도비평] HID 불법·폭력시위 여러차례 보도해놓고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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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일자 경향신문 8면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이 지난 1일 밤 진보신당 당사에 난입해 당직자들을 폭행했다.

진보신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들의 난입·폭력을 ‘민주주의와 촛불에 대한 백색테러’로 규정하는 한편, 당사에 난입한 이들 중 오복섭 사무총장이 지난해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안보특위공동위원장 출신이라는 것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개혁 성향의 언론들도 이번 사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의견들을 전하고 있다. <한겨레>는 3일자 신문 31면 사설에서 “헌법과 법률로 정치활동을 보장받고 있는 정당의 사무실을 한밤중에 무단 침입해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명백한 정치테러”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3일자 신문 3면 “우익, 공공연한 폭력 과거 ‘백색테러’ 연상” 기사를 통해 “촛불정국에서 일부 우익단체들이 공공연하게 폭력성향을 드러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익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괴를 일삼는 과거 ‘백색테러’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피해 당사자인 진보신당을 비롯한 야권과 언론들이 왜 ‘백색테러’, ‘정치테러’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의 폭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조·중·동-정부 여당의 ‘국민 편가르기’, 백색테러 불러

우선 ‘백색테러’의 의미를 짚을 필요가 있다. ‘백색테러’는 이른바 권력자나 지배계급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살이나 파괴 등의 수단을 동원함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당시 ‘혁명파’가 왕정 복귀를 꾀하는 ‘왕당파’를 암살·고문한 것을 두고 ‘적색테러’ 용어가 생겼는데,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개혁을 반대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테러를 ‘백색테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쇠고기 사태로 촉발된 촛불정국을 놓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다짜고짜 ‘좌빨 배후론’부터 꺼내들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염려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를 보장해 달라 요구하며 나선 민심이 분노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스스로 한 번도 ‘좌빨’이라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으로부터 막무가내로 빨갛게 색칠당하다 보니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분노는 ‘조·중·동 폐간’, ‘이명박 정권 퇴진’의 구호로 이어지게 됐다. 촛불의 저항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커지자 조·중·동과 정부여당은 일보후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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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30일자 조선일보 27면

그러나 말 그대로 일보후퇴일 뿐이었다. 이들이 보기에 촛불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고 여겨진 지난달 중순 이후 ‘색깔론’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조·중·동이 작금의 촛불시위 참여자를 일반 시민과 이른바 ‘전문 시위꾼’으로 구별하고 나서자 한나라당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핵심은 골수 반미단체”, “앞으로 진보세력의 반대 촛불은 계속될 것”(7월2일, 홍준표 원내대표) 등의 주장을 들고 나와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기 했다.

이렇게 조·중·동과 정부여당이 작위적으로 국민을 편 가르기를 하는 과정에서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의 진보신당 난입·폭력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진보신당 등이 이번 사태를 ‘백색테러’로 정의한 이유도 주요 언론과 정부여당이 앞장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을 ‘적’(敵)으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되면서 보수단체들이 마음껏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촛불을 ‘좌빨’이라던 조·중·동, ‘백색테러’에는 침묵

촛불시위 참여자들을 일반 시민과 ‘전문 시위꾼’을 구별, 작금의 촛불에 ‘좌빨’의 딱지를 붙이며 연일 “전문 시위꾼들에게 언제까지 서울 도심 내줘야 하나”(6월30일, <조선일보> 27면) 등의 성토와 탄식을 이어가던 보수신문들은 공당의 당사에 난입한 특수임무수행자회의 폭력사태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난 2일자 신문(<조선> 10면, <동아일보> 12면)에서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이 진보신당 당사에 난입해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만을 짧게 전했을 뿐이다. 이들의 폭력에 대한 진보신당 등 야권의 반응과 시민사회의 비판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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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0월1일 조선일보 8면
더구나 진보신당에 난입했던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 중 오복성 사무총장이 수년 동안 갖가지 이유로 불법 극렬 시위를 벌여온 조·중·동 표현을 빌자면 ‘전문 시위꾼’이란 사실엔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오 사무총장은 지난 2004년 7월3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하자 이에 항의하며 의무사위 진입 시도를 벌였으며, 지난 2005년 4월15일에는 일본의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를 주장하며 엽총을 쏘려하고 사제 폭발물까지 동원해 반일시위를 벌여 집시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협의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또 같은 해 9월28일부터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의 사퇴를 주장하며 무려 열흘 동안 불법 고공시위를 진행했으며, 그해 12월6일 파주 보광사에 안장된 미송환 장기수 묘비를 파손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달 초에도 그는 한 달 이상 촛불시위가 계속됐던 시청 앞 광장에서 갑자기 북파공작원 위령제를 진행, 촛불집회 측과 충돌을 빚었다.

보수 언론들이 이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다. <조선>과 <동아>는 지난 2005년 4월 오 사무총장의 일본대사관 앞 폭력시위(2005년 4월15일자〈동아〉10면)와 그해 9월 이해찬 총리 퇴진 고공시위(2005년 10월1일 〈조선〉8면), 12월 미송환 장기수 묘비 파손(2005년 12월6일 〈조선〉8면) 등을 보도했다.

촛불집회 참여 단체의 반미시위 이력 등을 하나하나 짚어 거론하며 ‘전문 시위꾼’의 타이틀을 붙였던 것과는 달리, 보수단체의 불법 전문 시위에 대해선 자신들이 보도한 내용이 자료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한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노선은 다를 지라도 정치 동료인 진보신당에 대한 보수단체의 테러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야권은 여당의 이 같은 태도를 놓고 “백색테러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3일,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같은 노선을 걷고 있진 않더라도 정치를 하는 ‘동료’로서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문제제기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보수언론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를 긍정하는 이들의 이력을 파헤치며 국정 혼란의 세력이라 비판했다면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이들의 무분별한 폭력 사태도 마찬가지 잣대에 의해 비판하는 게 언론으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보수언론과 정부 여당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의 모든 행동을 비판하며 엄격한 법 적용을 주장하면서 보수단체가 정당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고 백주대낮에 가스통을 앞세워 방송사로 돌진하는 것엔 눈 감는다면, 야권의 주장처럼 보수단체의 이 같은 행동은 ‘백색테러’로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 ‘백색테러’의 배후는 보수언론과 정부 여당이 될 테고 말이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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