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관한 한미합의가 전국적인 저항과 항의를 불러오고 있다. 부랴부랴 여권이 제시한 해결책 곧 "광우병발병시 수입중단" 역시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을 진화하기에 역부족이다. 80%에 달하는 국민 여론의 절대다수가 재협상을 요구하고 쇠고기 합의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 정도라면 국민 전부가 재협상을 바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해서 다시 한번 재협상론의 근거들을 확인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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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
첫째, 정부측이 제시한 '광우병발병시 수입금지조치'라는 해법 자체가 갖는 문제이다. 정부측은 국민건강을 위해 통상마찰마저도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밝힌다. 그러나 그 자체 이 방법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만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말로는 수출로 먹고살고 통상으로 이만큼 성장했다고 하면서, 스스로 통상마찰을 자초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통상정책을 고비용, 고위험속으로, 불확실성으로 몰고 가는 일종의 자해공갈과 진배없다.
정부는 광우병 발병시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0조 일반적 예외 조항의 "(b)인간, 동물 또는 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원용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에서 광우병발병시에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등급하향 조정이 없는 한 수입중단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광우병발병이 한국의 인간 또는 동물의 생명 또는 건강에 영향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과연 한국의 조치가 분쟁발생시 국제재판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지는 심히 의문이다.
나아가 한미FTA가 발효된 상황에서 수입중단이 이루어질 경우, 국내진출한 미축산기업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차별을 이유로 '투자자-정부 소송제'에 따라 소송을 제기할 것은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수입중단조치가 WTO/GATT에 합치하더라도, 이들은 자신들의 기대이익이 무효화 내지 침해받았음을 이유로 '비위반 제소'조항을 발동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패소할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배상금을 미국 축산기업에 그것도 세금을 털어 물어주는 일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15일 최종 고시를 앞두고 13일까지는 '행정절차법'에 따른 입안예고기간이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이 기간은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으로서, 경우에 따라 입법예고된 법안을 수정 변경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부는 15일 최종 고시를 예고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한미 쇠고기 합의는 효력을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 한미 쇠고기 합의는 엄격히 말해 조약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조약이라면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등한 지위가 보장되지만, 이 번 합의는 그보다 하위 규정이며 국제적으로는 일종의 양해각서(MOU)로 해석된다. 광우병이 2종 가축전염병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번 합의는 그 모법인 <가축전염예방법>에 그 설치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상위법의 규정을 당연히 받게 되며, 고시 내용 역시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아가 행정절차법상의 입안예고기간의 의견수렴이라는 국내법적 절차를 근거로 다시 말해 압도적인 반대의견과 우려를 근거로 미국에 대해 얼마든지 고시내용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체약국 일방은 '기만', '착오'등을 이유로 조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 특히 미 연방관보의 강화된 사료금지조치에 대한 우리측의 고시내용이 '오역' 곧 착오에 의한 것이 입증된다면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다. 강화된 사료금지 조치 곧 도축 불합격된, 문제가 있는 소일지라도 30개월 미만이면 뇌, 척수등을 동물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미 연방관보내용을 우리측 고시 내용처럼 해석을 잘못해서 빚어진 일이라면 이는 '착오'에 해당될 것이다.
특히 합의문 부칙에 명시된 것처럼 '강화사료금지조치의 공포'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월령제한 철폐의 본질적 전제조건이었다면 우리는 비엔나조약법 48조 착오조항을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48조 1항에 따르면 "조약상의 착오는 그 조약이 체결된 당시에 존재한 것으로 국가가 추정한 사실 또는 사태로서, 그 조약에 대한 국가의 기속적 동의의 본질적 기초를 구성한 것에 관한 경우" 그 조약은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 2항은 "문제의 국가가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착오를 유발하였거나 또는 그 국가가 있을 수 있는 착오를 감지할 수 있는 등의 사정하에 있는 경우"에 위 1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즉 그 오역의 원인이 우리측에 있는 경우 적용이 쉽지 않다. 다음 49조 기만이 있다. 즉 미국측의 '기만적 행위'에 의해 조약체결이 유인된 경우 그 조약이 무효인데 이는 그 입증에 고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넷째, 검역주권문제이다. 정부측이 소위 '과학과 국제기준'의 유일원천으로 숭배하는 국제수역사무국의 상급기관이라할 WTO의 위생검역협정을 보자.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 또는 권고를 기초로 회원국간의 조화를 도모하되, 회원국에 대해 자국민 건강과 생명의 적정보호수준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이 그리고 정부측이 이번 합의문의 근거로 내세우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WTO회원국으로서 우리 정부는 적정한 검역기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이러한 확립된 검역주권을 주장하지 않음으로 해서 이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재협상은 그러므로 '국제기준'에 따라 이러한 검역주권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결국 재협상은 국내법과 국제법에 확보된 이러한 원칙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은 엄연히 미무역대표부와 이명박정부가 말하는 '과학과 국제기준'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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