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도 잠자리도 모두 ‘야생’이다. 복불복 게임에서 지면 소금식혜나 까나리 액젓을 한 번에 들이켜야 된다. 보기 만해도 침이 고이는 신 레몬이나 혓바닥이 화끈거리는 매운 어묵을 멈추지 않고 우적우적 씹어서 삼켜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눈물을 흘리거나 맵고 짜고 신 티를 내선 안 된다. 야생의 ‘달인’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뼈마디를 쑤시도록 찬김이 올라오는 바닥에서 침낭에 들어가 자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제작진이 이젠 집도 알아서 지으라며 공구와 재료들을 던져주지만, 잠깐 투덜대고 어느새 돌아보면 경쟁하듯 더 열심히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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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해피선데이-1박 2일> ⓒKBS | ||
‘의식주’ ‘골병’ ‘야생 버라이어티’ KBS 〈해피선데이-1박 2일〉. 수학여행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며 떠나는 여행 속에 카리스마 넘치던 힙합전사 은지원은 철없는 ‘은초딩’으로 거듭났고, 누나들의 로망 이승기는 겉만 멀쩡한 ‘허당’으로 변신했다.
‘K’가 새겨진 한국 야구대표팀 모자를 쓰고 6명의 이들을 부리는 파란모자의 PD. 강호동을 능가하는 괴물 같은 식욕으로 “저 PD 사람도 아니야”(강호동)라는 찬사 아닌 찬사를 받은 이명한 PD를 지난 21일 KBS에서 만났다.
- 우리나라를 여행한다는 기획을 어떻게 하게 됐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객관화된 장치나 게임이 더 이상 효용이 없다는 생각에서 역발상으로 나오게 된 프로그램이다. 기성복 느낌이 나지 않게 연출할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여행’이 떠올랐다. 그동안 〈스타골든벨〉 같은 ‘게임쇼’ 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견고하게 짜인 장치들을 벗고 주관적인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10년 가깝게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 타성을 한 번 버려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백지에 그려보자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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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한 PD ⓒPD저널 | ||
- 초반에는 멤버도 계속 바뀌고,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힘들었다. 정말로. (웃음). 지상렬, 노홍철, 김종민 순으로 나갔는데 그 때는 대타를 찾는다는 것에 대해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대체 인력을 찾는다고 했을 때 흔히 말하는 ‘땜빵’을 받아들여야하는데 80%밖에 못 채울 것이란 생각도 들었고 지상렬, 노홍철 같은 연예인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대체재격인 연예인을 섭외하지 않고 역발상으로 다가갔다. ‘지상렬’이라는 굉장히 오락적인 사람의 대체를 ‘김C’라는 진지함이 있는 전혀 다른 인물을 집어넣었다. 노홍철과 이승기도 마찬가지다. 아예 새 카드로 승부하자는 것이 생각보다 더 큰 대박을 친 경우였다.”
- 매회 여행을 하면서 다른 주제를 보여주는게 쉽지 만은 않을 것 같은데.
“맞는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새로운 것을 보여주느냐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제 매번 어디로 떠나느냐는 더 이상의 화두가 아니다. 기대치 이상을 보여줘야 시청자들에게 계속 사랑을 받을텐데…. 사실은 근근이 버티고 있다. (웃음) 여행이라는 프로그램 기획이 갖는 장점은 누구나 주관적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PD가 3명, 작가 4~5명인데 본인들이 느꼈던 추억거리나 경험을 포인트로 잡아서 극대화 시켰던 경우가 많다. 또한 제작진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팁을 많이 준다. ‘내가 여행했을 때는…’식으로 말이다. 계속 변화를 줄 생각이다.”
- 최근 방영된 ‘전남 여서도’ 편에선 ‘문명과의 단절’을 내세웠다. 이유는.
“애초에 ‘1박 2일’이 표방한 슬로건이 ‘야생 버라이어티’라고 각인 돼 있는데 겨울이 지나가면서 극한의 느낌이 없어졌다. 그런 부분들을 상쇄할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나왔다. 사실 추운 날씨에 연예인들이 야생에서 잔다는 것에 ‘저런 것도 이겨내는 구나. 이런 데서 자는구나’하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유행에 민감하고 첨단으로 사는 연예인들을 문명으로 단절시키는 것이 떠올랐다. 추운 날씨와 따뜻한 방의 대비된 느낌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할까.”
- ‘1박2일’하면 ‘복불복’ 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먹고 자는 것을 비롯해 벌칙까지 모든 이야기를 풀어가는 매개가 되는데.
“사실 딜레마다. 복불복은 하나의 장치다. 여행이라고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풀어내는데 장치보다는 한 치 앞도 모르는 긴박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오히려 이런 장치가 이야기 흐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1박 2일’이라는 스토리텔링을 하는데 있어 ‘복불복’이라는 게임이 프로그램에 가장 잘 녹아들고 있다. 세부적인 장치는 변화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복불복’이 주는 리얼리티적 효과가 아직까지 크다고 본다.”
- 게임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즉흥적인 것도 있다. 기본적으로 준비해서 나가는 것들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먹는 것, 달리는 것 등 회의에서 연출진들이 판을 만들어 주고 출연진들에게 ‘자! 한 번 놀아봐라’하고 풀어 놓는다. 참 잘 논다. 아무래도 책상 위에서 회의 한 우리보다는 그들이 나을 때가 많다. 강호동처럼 베테랑은 말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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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한 PD는 강호동과 매운 어묵, 레몬 먹기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후 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가 됐고, 검색어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KBS | ||
- 화면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6mm 카메라로 화면을 잡을 때도 뒷모습을 넣어서 연기자들을 응시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유가 있나.
“방송에 처음 노출이 된 것은 김종민이 우동 먹다가 뒤쳐진 ‘강원도 정선’ 편이었다. 그전에 출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지난 ‘여의도’ 편은 강호동이랑 먹기 대결하다 출연진들이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을 나영석 PD가 대결을 붙여서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연예인도 아닌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겠나. 순서상 녹아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나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분들이 지적을 해서 자제하려고 한다.”
-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을 내 나이 39살이 돼서 이제야 알았다. 프로그램의 기본적 포맷이 오락이다 보니 웃음을 제공해야 된다는 기본적인 부담감 때문에 여행의 묘미와 풍경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디테일하게 여행 다큐처럼 커버할 수 있는 감흥이나 느낌들 ‘정말 좋구나’ 하는 것들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화면에 더 녹일 수 있으면 만족스러울 것 같다.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십분 못 녹이는게 조금 아쉽다.”
- 앞으로 계획은.
“최대한 웃음도 주면서 자연이나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더 녹이려고 생각 중이다. 지금까지는 멤버 6명의 캐릭터와 복불복이 주된 흐름으로 갔다. 스스로 고립시키고 우리끼리 느끼는 식으로 진행했다. 이제 조금씩 확장을 할 것이다. 화면에 현지에 계시는 아버님과 어머님들에 대한 터치를 할 생각이다. 현지에 가보면 그렇게 순박하시고 정이 많으시다. 요즘 우리사회가 살인도 많고 너무 살벌한데 아직은 살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허당’ 이승기나 ‘초딩’ 은지원이 인기가 있는 것도 인간미가 느껴져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휴머니티 외에 현지인이 줄 수 있는 것들을 더하면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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