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달 2일 이래, 우리는 매우 낯설고도 들뜨는 경험을 했다. 한 달이 넘도록 거의 매일같이 서울 광화문 일대를 물들인 촛불은 화염병이 나뒹굴던 7,80년대의 시위 문화와 한참 달랐고,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건과 2004년 탄핵 반대 집회 때와도 사뭇 달랐다.
한손엔 촛불을, 다른 한손엔 디카(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을 들고 광장을 메운 이들의 모습은 낯선 충격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가족 단위로 집회에 참석한 이들,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나 예비군은 시위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은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연출한 새로운 시위문화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Agora(아고라)
인터넷 포털 다음(daum)의 토론 사이트 ‘아고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곳 중 하나다. 지난 4월 29일 MBC 〈PD수첩〉이 제기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논란은 즉시 다음 ‘아고라’와 ‘블로거뉴스’로 옮겨져 공론의 장을 형성했다.
| ▲ 인터넷 포털 다음(daum)의 토론 사이트 '아고라' | ||
다음 외에 각종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네티즌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뜻을 모으고, 오프라인에선 촛불을 들며, 신문에 의견 광고를 게재해 의사를 당당히 밝힌다. 패션 관련 커뮤니티인 ‘소울드레서’나 야구 커뮤니티 ‘엠엘비파크’ 등은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광고를 게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Digital(디지털)
이번 촛불집회는 디지털 기기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최신형 휴대폰부터 디카, 캠코더, 노트북과 무선인터넷 등 촬영과 전송이 가능한 디지털 기기들이 총동원됐다. 특히 경찰의 과잉진압이 있는 현장이면 시민들은 어김없이 휴대폰과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경찰의 폭력 진압을 증거로 남기고 동시에 폭력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이유에서다.
카메라를 든 시민들은 1인 미디어로 변했다. 시민들은 집회 현장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거나, 자신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과 공유한다. 그래서 ‘재택 촛불집회’도 가능해졌다.
시민들이 직접 카메라를 든 것은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 탓도 크다. 시민들이 조·중·동의 광우병 관련 보도를 보며 왜곡·편파보도의 실체를 실감했고, 이로 인해 방송 보도까지 불신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일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시민들이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언론이 이 같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향후 ‘웹2.0 시대’에서 주류 미디어가 1인 미디어로부터 위협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 ▲ 촛불집회가 열리는 밤이면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한 밴드의 연주에 시민들이 흥에 겨워 하고 있다. | ||
Festival(축제)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는 민중가요도, 시야를 가릴 정도로 깃발이 나부끼는 광경도 없었다. 민중가요라곤 ‘임을 위한 행진곡’뿐이었고, 행진할 때를 제외하곤 깃발도 드물게 눈에 띄었다. 대신 스피커에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연신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이에 장단을 맞추거나 춤을 추곤 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자정이 가까워지면 광화문 일대는 축제의 무대로 변한다. 도로 한복판에서 술판도 벌어지고, 새벽녘엔 코펠과 버너에 라면을 끓여먹는 이들도 있다. 또 이쪽에선 춤 연습이 한창이고, 저쪽에선 기타와 베이스, 드럼까지 갖춘 채 연주를 시작한다.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를 개사해 ‘너의 군홧발이 아파/ 너의 물대포가 아파’로 부르거나, ‘이명박이 말을 하지/ 너네 배후 누구냐고 난 또 내게 대답하지/ 내가 바로 배후라고’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들었다.
Nonviolence(비폭력)
촛불집회는 평화로웠다. 애초에 취지가 ‘비폭력 촛불문화제’였다. 경찰의 대응도 날카롭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거리시위가 시작된 이후, 경찰은 돌변했다.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쏴대고, 군홧발로 여대생의 머리를 짓이겼다. 이전까지 촛불시위를 옹호하던 언론들도 일부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돌아섰다. 거리시위=불법시위란 게 정부와 경찰, 언론이 공유한 공식이었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 계속되자, 일부 시위대는 행동을 달리했다. 지난 8일 새벽,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던 중엔, 다소 과격한 행동도 나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비폭력’을 연호했다. 온-오프라인 상에선 비폭력 평화집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래서 지난 8일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청와대 진출을 포기하며 경찰과의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 ▲ 독특하고 이색적인 피켓 문구들도 눈에 띈다. '2MB, 국민 마음에서 분실이야'란 문구를 적은 박스(왼쪽), 광화문 교보빌딩 앞 화단에 세워진 푯말. | ||
Variety(가지각색)
참으로 다양한 얼굴과 표정을 가진 촛불집회였다. 갓난아기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세대가 다양한 것은 물론이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와 ‘마초이즘’의 발로란 지적을 받기도 한 예비군 등 다양한 부류의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특히 10대들은 ‘디지털 시위’를 주도하며 새로운 저항의 세대의 출현을 증명했다.
시위 방식도 놀랄 만큼 다양해졌다. 각 가정에선 아파트와 담벼락에 ‘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란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고, 가두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경찰에 대항해 횡단보도를 오가며 구호를 외치는 시위 방식까지 등장했다.
젊은 세대들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개성도 뚜렷해졌다. 이명박 대통령을 쥐에 비유해 ‘인간 쥐덫’을 놓거나 ‘쥐를 잡자’는 게임을 하고, 광우병을 이용해 개사한 노래들도 인기다. 또 SBS 드라마 〈온에어〉의 명대사를 딴 ‘2MB, 국민 마음에서 분실이야’나 ‘이명박! 빠른 시일 내에 정비하겠습니다!’와 같은 이색 피켓 문구들도 눈에 띈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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