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KBS 노조의 국민여론조사 결과 은폐 논란
| ▲KBS 전경 ⓒKBS |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위원장 박승규, 이하 KBS 노조)가 지난 5월에 실시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한겨레21>이 첫 보도해 알려진 대국민설문조사는 KBS노조가 ‘노조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14일부터 20일까지 국민 1000명과 전문가 13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모두 9개 문항으로 이뤄진 설문조사에는 ‘정연주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하나’ ‘KBS 사장 선임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사장 선임에 국민이 참여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질문이 포함돼 최근 정연주 사장의 사퇴 논란과 차기 사장 선임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정연주 사장 퇴진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KBS 노조는 설문조사 결과가 당초 예상과 다르게 나타나자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설문결과 응답자의 66%가 정연주 사장의 남은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고 '사퇴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당초 노조는 설문결과를 지난달 22일에 열린 ‘KBS 조합원 대토론회’에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박승규 위원장을 비롯한 소수의 노조 집행부 내에서만 결과가 공유되고, 노조 중앙위원들이나 시도지부장들에게조차 이를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연주 사장 퇴진 투쟁을 전면에서 벌인 KBS 노조는 "설문결과가 의도와 다르게 나오자 투쟁에 오히려 걸림돌로 보고 의도적으로 은폐한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 ▲ KBS노조는 지난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KBS 조합원을 상대로 '정연주 사장 퇴진 및 낙하산 사장 반대'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PD저널 | ||
KBS노조, 여론조사 수치 왜곡 의혹
KBS노조는 이미 지난 2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표하는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인바 있다. KBS노조는 지난 2월 정 사장 퇴진을 결의하는 내용의 특보를 발행하며 “지난 2월 조합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80% 이상이 ‘정 사장에게 KBS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KBS 노조는 설문문항을 공개하지 않아 설문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공표할 때 설문조사 시행기관의 의도적인 해석을 차단하고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설문 문항 전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KBS 노조는 노보를 통해 “응답자중 80% 이상이 ‘정사장에게 KBS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응답했다”고 모호하게 밝혔을 뿐 그 밖에 그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비대위원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68.5%가 ‘정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 고 답한 것으로 드러나 노조가 밝힌 80% 수치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가운데 사퇴 시기를 묻는 질문에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답한 조합원은 30%에 불과했다. 따라서 전체 조합원 중 ‘정 사장이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답한 조합원은 20%를 약간 웃도는 수치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가 나왔음에도 KBS노조는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 사장 사퇴를 촉구해왔다. 박승규 위원장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KBS 조합원 80%가 정사장을 반대한다"며 정 사장 사퇴 투쟁의 근거로 제시해왔다.
결국 KBS 노조는 정연주 사퇴 투쟁에 유리한 내용만을 공개하고 일부 내용은 은폐했다.
“전례 없는 여론조사 결과 비공개,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
KBS 노조의 설문조사 은폐의혹에 대해 KBS 내에서는 노조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KBS 노조는 지난달 22일 열린 ‘KBS 조합원 대토론회’와 지난 11일 시민단체 공개간담회인 ‘KBS노조에게 듣는다’에서 이 같은 결과를 숨긴 채, 조합원 대상 설문결과만 놓고 노조의 입장을 고수한 것은 노조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KBS 한 관계자는 “그동안 KBS 노조가 사내 문제나 방송계 안팎의 문제를 여론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현 KBS 노조의 이런 전례 없는 행동은 노조의 도덕성에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 은폐의혹에 대해 KBS 노조가 진행해 온 설문조사가 지나치게 정 사장 퇴진에 초점을 맞추다 나온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정 사장 퇴진 서명의 경우에도 정사장 퇴진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한 문장에 집어넣어서 진행했고, 그것조차도 참여율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서명기간을 늘리기까지 했다”며 “심지어 실적이 좋은 구역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까지 동원한 결과가 70%이다. 이렇게 근본적인 하자가 있는 질문들을 넣어 여론을 호도하다 보니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노조로서는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 KBS 노조가 마련해 놓은 '정연주 사장 퇴진' 만장은 최근 KBS 촛불시위에 나온 시민들에 의해 뽑혀졌다. ⓒPD저널 | ||
“KBS 노조, 이제라도 투쟁노선 수정해야”
이 때문에 정연주 사장 사퇴 투쟁을 과감히 포기하고 현 정부의 언론장악을 막아내기 위해 언론시민단체의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KBS 내에서 힘을 받고 있다.
KBS 한 PD는 “조합원 대토론회나 시민단체 토론회는 정권의 KBS 압박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KBS 노조가 바뀐 상황에서 투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기획이 됐던 것”이라며 “노조가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노선을 고집하면서 고립을 자초했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기초로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은 “KBS가 직원의 뜻뿐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여야 하는 게 목적”이라며 “국민들이 단순히 ‘정연주’가 좋아서 잘하기 때문에 임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이 정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내려 보내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새겨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은 23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해서 모두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지난 5월 조사는 예상보다 결과가 달랐지만 외부에서 KBS 문제를 많이 알 수도 없고, 사장 문제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테니 참고용으로만 활용했다”고 말했다. 또한 설문조사 공개 방침을 밝혔던 사실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원성윤 기자
socool@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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