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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31 강준만 칼럼 "‘생활사 다큐’는 안될까?"
- 2008/12/23 강준만 칼럼 "억울하면 출세하라’"
- 2008/12/16 강준만 "냉소에 대한 부정과 긍정, 어느 것이 아름다울까"
- 2008/12/09 강준만 "서울과 지방은 이중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 2008/12/02 강준만 교수 "지방방송 끄라는 사람들에게 드리는 글" (3)
[강준만 칼럼]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은 모든 사람이 그가 속한 사회그룹의 시각에서 보이는대로 사회를 파악하며 모든 관점은 편파적이라고 했다. 강자의 관점도 편파적이고 약자의 관점도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성의 질적 분석을 해보자면 약자의 관점이 진실에 더 가깝다. 생존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강자는 약자의 관점을 이해하지 않고 살아도 불편할 게 없지만, 약자는 살아남기 위해 강자의 관점까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약자의 관점이 더 포괄적이다.
각 분야에 걸쳐 세계적으로 뛰어난 감수성과 통찰력을 보인 이들이 대부분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 출신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식계에서 유대인들이 보인 놀라운 업적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 쪽에서 삐딱한 천재 문인들의 대부분은 잉글랜드의 모진 탄압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이다. 조나단 스위프트, 에드먼드 버크,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 국제적 차원에서 보자면 마셜 맥루한, 해롤드 인니스, 글렌 굴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등의 ‘삐딱한 천재성’도 그들이 애매한 국가 정체성을 갖고 있는 캐나다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다.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 출신의 통찰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모욕을 주는 데에 능하다. 출발선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면, 또 주류에 속했다 하더라도 주류 의식과 행태에 충실하지 않으면,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노무현이라는 아웃사이더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한국에서 그게 말이 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그는 인사이더가 되고 싶어 안달했던 아웃사이더였다. 한미 FTA로 대변되는 그의 ‘과잉순응’이 그걸 잘 말해주지 않았던가.
한국 사회는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 출신을 어떻게 모독하는가? 그들의 주장을 질시, 콤플렉스, 열등의식, 보복심리, 패자부활 심리 등으로 폄하한다. 이게 사람들에게 아주 잘 먹혀 들어간다. 약자, 소수자, 아웃사이더 그룹에 속한 사람들까지 홀딱 넘어간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변방 의식이 발작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즉 국제적으론 변방이니 국내적으론 정반대로 살자는 한풀이 심리가 문화로 정착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충분한 근거가 있는 추론이다. 나는 최근 한국의 입시전쟁 역사를 다루는 책을 쓰면서 우골탑(牛骨塔) 신화 대목에서 그걸 절감했다.
촌에서 부모가 농사 밑천인 소를 팔아가면서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낸다. 이 자식은 서울에서 ‘촌놈’이라고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해 출세를 한다. 이렇게 출세를 한 촌놈들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현 한국 지배계급의 절대 다수다.
그런데 묘한 게 이 촌놈들의 의식과 행태다. 이들은 자신의 출세를 가능케 한 촌에 보답하는 게 아니라 촌을 배신하고 촌에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촌놈 뿌리를 어떻게 해서건 감추면서 지우려고 발버둥 친다. 이런 촌놈들이 얼마나 될까? 현 지배계급 절대 다수의 절대 다수다.
촌은 두 번 죽었다. 우골탑 세우려고 촌 돈을 서울로 보내느라 한번 죽었고, 그렇게 해서 출세한 촌놈들이 배신을 때려 두 번 죽었다. 지금 그런 촌놈들을 욕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뜻이다.
우리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봐”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그건 기대하기 어려운 주문이다. 한국처럼 서열주의가 전 국민의 유전자화가 된 나라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는 건 항명이요 하극상이기 때문이다. 강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문방송학)
이명박 정권의 알파와 오메가는 서열 이데올로기다. 권력집단으로선 민주화 이후 농도가 가장 짙다. 이 정권 사람들은 입장 바꿔 생각하면 죽는 줄 안다. 자신들의 촌놈 과거가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같고, 몸에 밴 자기부정과 자학근성 때문에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놈들과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 신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명박 정권에 열심히 돌을 던지더라도 동시에 자기 성찰의 자세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평소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서열 체제를 당연하다고 여겨온 심성으로 던지는 돌이 얼마나 많이 날 수 있을까? 촌놈이 떠들면 “지방방송 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으로 던지는 돌이 목표물을 정확히 맞힐 수는 있을까? 이명박 정권은 기존 서열 이데올로기를 박살내는 총체적 개혁에 임하자는 뜻으로 자신을 제물 삼은 자기희생에 나선 건가?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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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학자는 단지 학자들이 모여 전문 영역에 국한된 의사소통을 할 때만 학자일 뿐, 그렇지 않을 땐 대중으로 흡수된다. (중략) 학자로 성장한 나는 두가지 병을 동시에 앓고 있다. 나는 학자로 성장해 자폐증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거실에서 시청자가 되어서는 실어증 중세를 보인다.”
최근 출간된 노명우의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프로네시스)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전북대 동료 교수들을 떠올렸다. 텔레비전 중심으로 말하자면, 교수엔 두 종류가 있다. 텔레비전을 즐기는 교수와 즐기지 않는(또는 못하는) 교수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교수들이 모여 지난밤 시청한 프로그램을 화제로 올리는 일은 드물지만, 신문방송학과 교수들은 전공 핑계를 대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 특권을 방패 삼아 신방과 교수들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도 시청자로서 즐긴 프로그램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한다. 텔레비전을 즐기지 못하는 교수들은 그걸 비웃지만, 텔레비전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오히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 KBS <다큐멘터리 3일> ⓒKBS
나는 2008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KBS2 〈송년기획 다큐멘터리 3일〉을 시청하면서 보냈다. 그것도 눈물을 질질 짜면서. 이젠 성인이 된 해외 입양아들의 고국 방문을 다룬 프로그램이었기에 슬프기도 했지만 단지 슬프다는 이유만으로 울었겠는가. 이 다큐엔 묘한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나는 다큐 애호가다. 모든 장르의 다큐를 다 좋아한다. 아마도 내가 평생 작업으로 ‘한국 생활사’를 꿈꾸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간 나는 어설프게나마 생활사를 40편 정도 썼는데, 내가 다룬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강남(아파트)/커피/축구/레드 콤플렉스/처세술/공직자/대학입시 전쟁/어머니/개인주의/자동차/전화/바캉스/백화점/화장실/도박/관광/크리스마스/선물/결혼/장례/신용카드/미용?성형/보험/머리카락/춤바람/미신/목욕/간판/자동판매기/자전거/과외공부/어린이날/어버이날/가족계획/도시락/마약/브로커/경품/사채(私債)/연탄.
나의 이런 취향 때문이겠지만, 나는 우리 다큐에 가장 결여된 게 과감한 실험정신이라고 불평을 하곤 한다. 달리 말하자면, 다큐 제작자들이 너무 그림 위주로만 생각하는 바람에 소재의 제약을 스스로 자초하는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아니 소재의 제약 이상으로 문제가 되는 건 예산이다. 좋은 그림에 욕심을 내다보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재정이 열악한 지방방송 처지에선 그런 다큐는 꿈도 꾸지 못한다.
지방방송의 현실에 맞는 다큐는 안될까? 물론 지방 다큐는 그간 성공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쌓아왔다. 그런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 자주 만들진 못한다. 비교적 돈과 시간이 적게 들면서 소재가 무궁무진한 장르의 다큐는 없을까? 물론 휴먼 다큐가 있기는 하지만,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매번 인물은 달라도 판에 박힌 듯한 ‘공식’이 느껴진다는 불평을 듣기 십상이다.
나는 ‘생활사 다큐’를 제안하고 싶다. 대중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역사적으로 다루는 다큐를 만들자는 것이다. 당장 “그림이 없다”는 반론이 나올 것 같다. 맞다. 그림이 문제다. 그러나 그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건 아니다. 보통사람들의 ‘증언’을 활용하면 휴먼 다큐의 장점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수년전부터 수십억원대 규모의 정부예산이 투입된 구술사 정리 작업이 여러 대학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학술적으론 소중한 작업이지만, 대중을 위한 건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확대시켜 보자. ‘영상 구술사’를 포함시켜 지방방송 정규 프로그램의 하나로 활용해보자. 한국방송협회를 비롯한 방송단체들이 나서서 관계기관들과 접촉해 지원 예산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면 좋겠다. 이 시도가 여의치 않더라도 지방방송사 자체 예산으로 못해볼 것도 없다.
‘생활사 다큐’의 생명은 탄탄한 구성이다. 그간 해왔던 것처럼 전통문화 중심으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당장 대중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소재들을 많이 다룸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이 중요하다. 바로 이걸 돌파해내야 한다. 내가 꼭 쓰고자 하는 <한국방송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길 수 있기를 새해 소망으로 꿈꿔본다.
“2009년은 지방방송에 파격적인 소재의 다큐가 붐을 이룬 해였다. 그간 자연 음식 전통문화에 치중해온 다큐가 지역민의 일상적 삶의 문제를 ‘영상 구술사’ 중심으로 다루면서 ‘PD저널리즘’의 지평이 크게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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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세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그런데 어느 한 시점에서 국민이 한 선택을 근거로 4,5년 동안 어느 일방의 가치와 이익을 전국민에게 강요하는 현 정치구조와 선거제도는 반드시 바뀔 때가 되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가치와 이익을 서로 나누어 가지자. 서로 나누지 않는 한 우리에게 참 평화는 없겠다. 이 세밑에 좌고 우고 진보고 보수고 서산에 해 넘어가는 걸 보거든 ‘나 진다!’고 통 크게 한번 읊조리면 어떠리.”
김형태 변호사가 <한겨레> 12월 16일자에 기고한 ‘좌우가 더불어 살 수는 있는 걸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신문칼럼에서 무슨 감동을 찾느냐고 비웃는 분들이 있겠지만, ‘신문칼럼에서 감동찾기’는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인 걸 어이하랴. 위 칼럼의 내용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성찰을 위해 ‘생산적인 딴지’를 걸어보련다. 김 변호사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마지 않는다.
▲ 한겨레 12월16일자 26면
김 변호사는 이런 칼럼을 노무현 정권 시절에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절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왜? 이념적․심정적으로 김 변호사는 노 정권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김 변호사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들어 <한겨레>에 이른바 ‘승자 독식주의’를 비판하고 개탄하는 글들이 많이 실리지만, 노 정권 시절 <한겨레>엔 그런 글이 거의 없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승자 독식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함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승자 독식주의’를 비판하고 개탄하는 분들이 왜 노 정권 시절엔 그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노 정권 시절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했던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2004년 12월 노 정권의 ‘코드 인사’가 비판을 받을 때, 정 수석은 “220V에다 110V 코드를 꽂으면 타버린다는 점에서 코드와 철학은 맞아야 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철학이 안 맞으면 같이 못 간다”며 “코드 인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럴듯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승자 독식주의’를 정당화하는 비유의 함정이 있다. 정치를 하는 세력중 한쪽은 220V요 다른 한쪽은 110V라고 보는 발상을 고수하는 한 가치와 이익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독식은 ‘정의(正義)’ 또는 ‘국익(國益)’의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미화된다. 지금 정 수석은 이명박 정권의 ‘코드 인사’에 대해선 무어라고 말할까? 모든 공직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옳은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을 무조건 따르는 게 옳다고 주장할까?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즐겨 하지만, 그건 우리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할 때가 많다. 지방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서울에 사는 언론인․지식인들이 지방을 한번 돌아보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게다. 이들이 지방을 위한 발언을 해주면 안되는 걸까? 반대로 지방에 사는 언론인․지식인들은 지방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는 데에 전념하면 안되는 걸까?
지금 당장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긴 그렇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런 식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다. 이미 1964년에 이 메시지를 던진 <회전의자>(신봉승 작사, 하기송 작곡, 김용만 노래)야말로 한국의 영원한 국민가요가 아닐까?
지방을 위한 발언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만 나온다. 서울 사람들은 점잖은 자리에선 맞장구를 쳐주지만 속으론 “뭘 그렇게 핏대 올리니? 억울하면 서울로 이사오렴. 그게 다 능력 차이 아니겠니?”라고 생각하는 게 공식화되었다. 지금 이명박 정권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다.
“억울하니? 억울하면 정권 잡으려무나. 220V에다 110V 코드를 꽂으면 타버린다는데 코드와 철학은 맞아야 하지 않겠니? 방송쟁이들이 말을 잘 안 들어서 큰 일이지만, 조금만 더 있어 봐. 다 말 듣게 돼 있어. 서산에 해 넘어가려면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지들이 무슨 수로 버티겠니?”
‘승자 독식주의’는 조선조 이래 한국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각개약진(各個躍進) 체제의 산물이다. ‘승자 독식주의’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더 심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한국의 ‘1극 소용돌이’ 구조를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최근의 드라마 파동에서 불거진 스타 독식 현상도 바로 그런 구조의 산물이다. 이게 정녕 우리가 참고 견뎌야만 할 우리의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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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04년 말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전국의 회원 방송사 PD 3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노동당 32.5%, 열린우리당 23.2%, 한나라당 6.7%로 나온 것이다.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야, 한국 PD들 매우 진보적이네!’ 그렇게 보아야 할까? 그렇게 볼 점도 있겠지만, PD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더 냉소적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게 옳으리라. 이 경우의 냉소주의는 현실, 특히 사회 각계 엘리트집단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전문가로서 현실의 어두운 면에 대해 갖기 마련인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선 진보주의와 냉소주의의 경계가 명확치 않아 냉소주의자가 진보주의자로 오인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내가 최근에 쓴 <왜 언론은 냉소주의에 빠져드는가?>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기자와 PD의 ‘아비투스(습속)’를 비교 평가하는 건 무모할 수 있지만, 술좌석 담론 수준에서 자유롭게 말해보자면 PD가 기자보다 더 냉소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가?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politics+journalist)라는 말은 있어도 ‘폴리피디’라는 말은 없다는 게 주요 근거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은 늘 전체 국회의원의 10%를 넘는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선 44명(16.1%), 2004년 제17대 총선에선 42명(14%), 2008년 제18대 총선에선 36명(12%)이었다. 18대 의원 36명을 언론사별로 보면 KBS 6명, MBC 5명, 동아일보 4명, 중앙일보 4명, 조선일보 3명, 한국일보 3명, SBS 3명, 한겨레 2명, YTN 경향 서울 헤럴드미디어 한국경제 경인일보 출신은 각 1명씩이다.
▲ 서울신문 2월12일자 24면.
국회의원이 되려고 시도를 한 언론인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제18대 총선의 경우 언론인 출신 공천자의 수는 64명이었는데, 공천 탈락자와 그 비슷한 수준에서 포기한 수까지 합하면 100여명은 되지 않을까? 늘 꿈은 꾸고 있지만 여건상 시도하지 못한 잠재적 폴리널리스트의 수는 수백명에 이른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폴리널리스트는 전체 기자 수에 비해 극소수인데, 그게 기자의 아비투스를 말해줄 수 있는 걸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폴리널리스트로 전직한 이들은 기자 시절에 무능력했던 이들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매우 유능했던 이들이다. 언론과 정치의 공통된 속성이 ‘권력지향성’이라고 한다면, 폴리널리스트는 전직을 했다기보다는 출입처를 바꾼 건지도 모른다. 권력지향성은 기자 아비투스의 핵심이며, 폴리널리스트는 이걸 입증해주는 드라마틱한 사례라는 게 내 생각이다.
PD라고 해서 권력지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자의 수준엔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권력지향성이 강한 기자가 더 냉소적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느냐는 반문이 제기될 법 하다. 여기서 나는 권력지향성을 꼭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건 아니라는 말로 답을 대신하련다. 아무리 썩은 정치일망정 정치엔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이 개인적인 출세 욕망이더라도 거기엔 냉소로 환원할 수 없는 적극성이 있다.
기자는 조직의 졸(卒)일망정 대외적으론 1인 사업자다. 반면 PD는 대내적이건 대외적이건 늘 자신이 이끄는 팀과 조직의 운용 역량에 의해 평가받는다. 그 일은 세속적 문법에 충실할 걸 요구한다. 세속적 문법의 어두움을 고발하는 일을 할 때에도 그래야만 한다. 명확하거나 충분한 권력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1인 사업자의 순발력으로 뚫을 수 없는, 종합격투기다. 이건 냉소로 굳게 무장하지 않고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냉소주의를 비교적 옹호하는 편이다. ‘비교적 옹호’라 함은 냉소주의가 좋다거나 바람직하다고 보진 않지만 개인의 ‘자기보호 메커니즘’으로서 불가피한 점이 있다고 본다는 뜻이다. 한국엔 PD에 근접하는 냉소집단이 있으니 그건 바로 대중이다. 종합격투기를 해야 하는 삶의 환경이 비슷하다. 개혁․진보 정치가 늘 실패하거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건 대중의 냉소를 오판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냉소를 보이고 있음에도 자기 마음에 들면 ‘진보성’,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수성’으로 오인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냉소주의의 무진장 보고(寶庫)는 지방이다. 냉소는 나의 힘, 나의 경쟁력이다. 냉소의 벽에 도전했다가 쓰러진 시체들이 즐비하다. 그 시체들의 유언집을 모아 책으로 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잘 하는 일인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는다. 냉소에 대한 부정이 아름다운 것인지 냉소에 대한 긍정이 아름다운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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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스탠더드’와 ‘로컬 스탠더드’
[강준만 칼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수도권 규제 문제도 좀 더 큰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의 자치성(省) 하나보다 작아요. 이 좁은 나라안에서조차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나누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겠고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 박재완의 말이다. 어찌 박재완 뿐이랴. 우리 국민 대부분이 “우리는 작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오랜 세월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살아온 역사 때문이리라. 나는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이 한국에 비해 별로 크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남북통일을 전제로 해서 말하자면, 한국의 국토 크기는 영국과 비슷하다. 독일은 한국의 1.5배 프랑스는 2.5배다. 인구는 한국이 영국 프랑스보다 2천만명 이상 많고 독일과는 비슷하다.
▲ 한겨레 12월9일자 5면
지난 9월 25일, 영국 방송심의정책기관인 오프콤(Ofcom)이 향후 공공서비스방송 정책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를 발표하자마자 일부 언론매체들과 시민단체들의 우려가 빗발쳤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오프콤이 지역뉴스를 줄이는 상업방송 ITV의 새로운 개편정책을 편들었기 때문이다. 뉴스가 아닌 다른 장르의 지역 프로그램 의무 방영시간도 줄었고, 전체 프로그램의 50%를 런던 이외 지역에서 제작해야 한다는 의무도 35%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50%에서 35%로 줄었다고 아우성치다니! 한국은 공영방송 프로그램 90% 이상을 서울에서 만들어도 아무 말이 없는데. 영국에서도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의 자치성(省) 하나보다 작아요”라는 말이 나오나 싶어 아무리 여기저기 살펴봐도 그런 말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지방방송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이유가 뭘까? 위성방송이나 IPTV와 같은 신기술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위기를 초래하는 주범을 “한국은 작다” 콤플렉스로 보고 싶다. 대놓고 말은 않지만, 서울의 정책 결정자들이나 방송인들은 내심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의 자치성(省) 하나보다 작은데다, 이 세계화 디지털화 시대에 지방방송이 꼭 필요하나?”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많은 지방주민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에서 중계되는 프로그램을 로컬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면 불 같이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잦다. 나도 즐겨 보던 서울 프로그램이 사라져서 짜증을 낸 경험이 있기에 그 심정을 이해한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반대의 경우는 전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한국은 작다” 콤플렉스는 ‘서울 스탠더드’를 곧장 지방에 적용하면서도 그게 왜 문제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학생들에게 로컬 방송 프로그램 비평문을 써보게 하면, 대부분 서울 프로그램과 비교한 평가에 머무른다. 이른바 방송계의 ‘엄친아’ 현상이다. 서울 프로그램이라는 ‘엄마 친구 아들’ 때문에 로컬 프로그램은 늘 무시당하고 면박당하고 모욕당하기 일쑤다.
민언련이라는 언론운동 단체를 잘 아시리라. 나는 한동안 전북 민언련이 서울 민언련의 운동 방식과 의제를 그대로 가져와서 운동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 민언련이 언론사의 경영 사정까지 신경 써야 할 필요는 없지만, 지방 민언련은 그래선 안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서울 스탠더드’와 ‘로컬 스탠더드’라는 2중 기준이 필요하다는 내 지론은 방송 경영자를 보는 시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서울에서 욕 먹는 사람이 지방에선 환영받을 수 있고, 물론 그 반대도 성립된다. 아니 그렇게 인식되어야만 한다. 즉, 서울과는 다른 지방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지방민들의 지방방송 무시 때문에 지방 방송 경영자의 자세와 철학은 서울의 그것과는 달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연고주의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선 ‘연고주의 타파’를 외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방에서 그 말은 “니 유전자 바꿔라”와 똑같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연고주의에 공공적 성격을 가미하는 ‘공공적 연고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른바 IMF 환란 사태 이후 한동안 신주 단지처럼 여겨졌던 ‘글로벌 스탠더드’의 한계와 문제를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는 사람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럼에도 ‘서울 스탠더드’의 위력은 요지부동이다. 2중 기준이 늘 나쁜 건 아니다. 우리 모두 지방을 2중 기준으로 보자.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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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방송 꺼!”
[강준만 칼럼] 강준만 전북대 교수
2008년 10월 8일 밤 내가 사랑하는 KBS 2TV 〈서울뚝배기〉를 시청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탤런트 이경진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아직도! 전에도 드라마에 나오는 “지방방송 꺼!”라는 대사를 문제삼은 글을 쓴 적은 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일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론 그 대사가 사라졌다 싶었는데, 다시 출몰하다니 이게 웬 일인가.
개그우먼 조혜련이 일본 텔레비전 생방송 중에 ‘거지’라는 말을 썼다가 혼이 났다는 말을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도 놀랐다. 아, 일본이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이란 말인가? 일본에선 ‘거지’라는 말조차 차별적 용어라 하여 금기시한다는데, 우리는 아무리 픽션의 세계라곤 하지만 “지방방송 꺼!”를 “잡소리 하지 마!”의 대용어로 쓰다니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발달한 게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좀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왜 그게 보수-진보 논쟁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진보파는 악플에 잘 견딜 수 있는 강심장들이고 보수파는 악플이라면 까무러치는 소심한 인간들이란 말인가? 진보파 중에서도 악플에 단호하게 대응할 걸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보수파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더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개인의 감수성에 대한 배려마저 이념․당파성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실종되는 사회에서 “지방방송 꺼!”라는 대사를 문제삼는 건 아무래도 부질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 작가나 PD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니 내가 사는 전주의 식당이나 술좌석에서도 전주시민이 동료들을 향해 그 말을 쓴 걸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지방방송 꺼!”라는 외침에서 지방방송 더 나아가 지방 전체의 현실을 읽고자 할 따름이다.
다만 온건한 제안은 하고 싶다. 이른바 ‘방송 리얼리즘’에 관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지방방송 꺼!”라는 말만큼 리얼한 말을 찾기는 어려우리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런 ‘리얼’의 목록엔 “여자가 감히”라거나 “말단 공무원 주제에” 따위의 표현도 들어갈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리라. 그래서 이런 표현은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누가 봐도 한심한 인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끔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방방송 꺼!”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이건 말하는 이의 인격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 매우 실용적인 주문으로 여겨진다.
“지방방송 꺼!”라는 대사를 쓸 수도 있다. 다만 ‘교정’의 배려는 해 주시라. 이른바 ‘교정적 리얼리즘(corrective realism)’을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 촌놈이 촌을 떠나 출세한 뒤에 촌을 멸시하는 작태를 비꼬고 조롱하는 건 어느 상황에서건 쉽게 묘사할 수 있다. 실제로 지방 출신 수도권 주민의 다수가 알게 모르게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거야말로 리얼리즘의 정수(精髓)라 할 만한 것이다.
그런 교정의 뜻만 있다면, 나는 방송에서 더욱 혹독한 ‘지방모독’을 하는 걸 환영한다. 나는 서울에서 지방대학을 비하해 ‘지잡대’라고 부른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는데, ‘지잡대’라는 말을 마구 쓰는 것도 환영한다. 지방대학들이 연대해 항의를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지방은 지역주의에 중독돼 있어 자기 지역만 안 건드리면 괜찮다고 본다는 속설을 믿기로 하자.
‘지잡대’를 비하하되, 서울 명문대들은 서울이라는 입지 조건 하나로 거저 먹고 들어가는 현실도 다뤄주시라. 이른바 주요 대학들이 수도 한 복판 중심가에 까마귀떼처럼 몰려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 말고 또 있는지, ‘세상에 이런 일이’의 프레임으로 처리해 주시라. 모두가 다 제 정신을 잃은 광기의 포로가 돼 있다는 걸 직설법으로 지적해 주셔도 좋으리라.
리얼리즘의 생명은 쌍방향성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리얼리즘의 무대에 올리는 건 리얼리즘이 아니라 폭력일 수 있다. 리얼리즘은 양파 껍질이다. 겉만 보지 말고 한 꺼풀씩 까보자. 가증스러운 위선과 탐욕은 어느 쪽의 몫인가도 살펴보자.
방송의 진화는 기술발전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김구라가 지상파에서 맹활약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듯이, 리얼리즘에도 새로운 시도와 고민이 필요하다. ‘교정’을 방패 삼아 ‘리얼리즘’의 지평을 넓혀보자. 1차원적 도덕주의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체제도 만들어 가보자. 방송의 자존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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