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0/20 차라리 적개심에 불타오르는 투사가 되라
  2. 2008/09/29 비정규직 아이콘, 기륭전자 노조를 아십니까 (1)
2008/10/20 12:07

차라리 적개심에 불타오르는 투사가 되라

[경계에서] 이성규 독립 PD

 
▲ 이성규 PD
“그분들은 이미 노동자가 아니라 적개심에 불타는 투사입니다.” 지난 17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기륭전자의 배명훈 대표이사가 한 말이다.

2005년 당시 기륭전자엔 500명의 사원 중 생산직 사원이 300여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 정규직 사원이 10명, 계약직 사원이 30∼40명, 나머지 250여명의 노동자가 파견직이었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불과 10원이 많은 64만1850원을 받았고 한 달에 70∼100시간의 잔업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투사가 됐다. 그것도 적개심에 불타는 투사.

기륭전자 대표이사 입장에서 본다면, 3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가 얼마나 황당할까. 최저시급으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대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3년 동안이나 싸우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다. 돈이나 몇 푼 받고 떨어지면 좋을 것을 끈덕지게 노조원 중 복직 희망자 전원에 대한 정규직화(그래봐야 30여명이다)를 요구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 불능이다. 적개심에 불타는 투사로 몰아붙이는 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최대 한계인지도 모른다.

적개심에 불타는 투사와 맞서는 상주용역 30명의 일당이 하루 25만원에서 35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생산 노동자로 일하는 것보다 노동자와 맞서는 용역으로서의 직업이 훨씬 더 돈이 된다. 시급으로 치면 7~8배 차이다. 이렇게 본다면, 기륭전자는 돈이 많은 회사다. 하루에 거의 1000만원씩이나 되는 거금을 상주용역에 지불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륭전자 배명훈 대표이사는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을까? 개별기업의 이득보다 비정규직이 필요하다는 전체 자본가의 대의를 생각하며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것일까?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투사가 되었다면, 기륭전자 경영진을 이념형 투사로 지칭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지난 7일 “최저임금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가파르게 올라갔다”며 최저임금제도를 손질할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가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1988년부터 시행됐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3770원이고, 내년 최저임금은 4000원이다.

 
 
▲ 〈PD수첩〉 ‘기륭투쟁 1127, 그 끝은 어디인가’ 방송장면 ⓒMBC
여기서 수학의 사칙연산을 해보자. 요즘 일주일에 5일 일하니까, 한 달이면 약 22일 가량이 실제 노동일수다. 하루 8시간 노동한다고 치면, 8*3770원=30160원. 즉 이게 하루 일당이다. 이걸 한 달로 계산하면 30160*22=663,520원이다. 이렇다면 우석훈 박사가 쓴 ‘88만원 세대’는 고액의 월급을 받는 세대가 된다. 기륭전자의 경영진을 대표선수로 내세우고 있는 이념형 투사인 한국의 자본가들이 원하는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여의도 방송가에서 3년차 독립PD의 주당 노동시간은 거의 80시간에 이른다. 이들의 월급은 120만원을 결코 넘지 못한다. 시급으로 치면 3400원도 안 된다. 정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 술한잔 나누며 허튼 불만을 쏟아놓을 뿐, 노동자 처우에 대한 그 어떤 조직도 없고 저항 조차 하지 못하는 노예 신분에 다름없는 노동자가 바로 독립PD다. ‘적개심에 불타는 투사’의 호칭을 듣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오히려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경박한 환타지일까? 여의도의 독립PD는 결코 정규직을 꿈꾸지 않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커녕, 그 절반의 임금이라도 받는 세상을 꿈꿀 뿐이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청와대와 국정원과 경총을 동원한 것에서 보이듯, 이미 기륭투쟁을 한 사업장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재조정하는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부르주아들은 단합했는데 프롤레타리아트는 분열한다. 우리는 기륭 투쟁의 정치성을 깨닫고 한 사회의 지배계급 그 자체의 최소한의 양보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투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동지애적 지지를 보낸다. -죽어도 비정규직 방송 연출자일 수밖에 없는 여의도의 한 독립PD가-

* 코너 ‘경계에서’는 독립PD들의 칼럼란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8/09/29 18:13

비정규직 아이콘, 기륭전자 노조를 아십니까


[방송제작기] 〈PD수첩〉 ‘기륭투쟁 1127, 그 끝은 어디인가’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가 생겨난 지 만 3년이 넘었고 4년째 답보 상태다. 그러는 사이 기륭의 노조원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아이콘이 되었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최전선에 서있게 되었다.

투쟁 초반 약 200여명이었던 조합원의 수는 3년이 지난 지금 10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복되는 단식투쟁과 고공투쟁 등으로 이들의 몸은 더 야위었고,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주름은 얼굴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다.

 
 
▲ 유성은 PD
하지만 오히려 그 3년이라는 시간 때문에 기륭의 문제는 이슈화가 되었던 시간만큼 또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제 기륭은 케케묵은 이슈이며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난제에 불과하다. 그래서 오상광 PD와 나는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싶었다.

기륭의 노조원들에게 3년이란 시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생계를 위해 뛰어들었던 비정규직 노동이었다면 왜 이들은 3년 동안의 생계문제를 포기하고 길바닥에서 투쟁하고 있는가. 인간이 90여일이 넘게 단식을 하면서까지 관철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그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들에 대한 답은 오래 전에 나와 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직접 그들을 만나서 듣고 싶었다.

지금도 처음 이들을 만나러 가던 이른 아침이 기억난다. 오전 7시 20분부터 시작되는 출근 투쟁을 카메라로 찍고 이들과 인사도 나누기 위해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 회사를 나섰다. 당연히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되었다. 컨테이너 앞에 간이 버너를 설치하고 직접 밥을 해먹는 모습, 오래된 단식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복식을 위해(노조원들 중 3분의 1이 약 두 달 전의 단식 때문에 복식을 하고 있었다.) 죽을 쑤는 모습, 그리고 그 앞에서 받아놓은 물로 겨우 설거지를 하는 모습 등.

하지만 가장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모습은 90일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김소연 분회장 앞에서 온 노조원이 모여 계란 프라이니, 젓갈이니, 김이니, 멸치조림이니, 김치 등을 펼쳐놓고 아랑곳없이 아침을 먹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또랑또랑한 눈매로 놓치지 않고 ‘관찰’하던 김소연 분회장.

   
 
▲〈PD수첩〉 ‘기륭투쟁 1127, 그 끝은 어디인가’ 방송장면 ⓒMBC  

게다가 아침 식사 내내 노조원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농이 오갔다. 그 고난의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얼굴은 3년 전의 그 모습보다도 더 어둡고 더 고뇌에 차 있고, 더 빛을 잃었겠지….라는 나의 생각은 성급한 오판이었다. 그들의 생활에도 여느 사람들의 그것처럼 웃음이 있고, 생기가 있었다. 그들에게 이미 투쟁은 너무나 익숙한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반증하듯 투쟁기간 중 2명의 조합원이 짝을 만나 결혼했으며, 한 조합원은 이제 다가오는 10월 결혼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투쟁이지만 이들은 언제든 이 생활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10월 결혼을 앞둔 조합원은 제발 결혼 전 이 모든 문제의 끝을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다.

끝을 내기 위해서는 누구든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법도 이들 편은 아니다. 지금의 비정규직 보호법은 생산직의 경우 ‘위급한 경우’에 한하여 파견직의 3~6개월 근무를 허용한다. 그래서 파견직의 수명은 길어도 6개월이다. 이들에게 평생직장은 없다. 길어봤자 6개월의 근무를 끝으로 다른 직장으로 메뚜기 뛰듯 옮겨 다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파견직들은 본인이 노동을 제공하는 회사에 직접 고용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회사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권리가 전혀 없다. 지금 기륭노조가 봉착한 문제도 바로 그것이며 비정규직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이다. ‘문자해고’라는 부당한 대우와 비정규직으로서 받았던 차별적 대우의 책임을 물을 주체가 애매해진 것이다.

이들이 투쟁을 그래도 계속하는 것은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이들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회복이나, 복직보다도 이 시대 이 땅의 젊은이, 대학생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 비정규직이 아니면 직장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가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언제나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인생, 봉급이 오르거나 좀 더 낳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도 앗아가는 비정규직 인생은 결국 우리시대의 ‘88만원 세대’이며,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젊은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기륭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어깨가 무겁다고 느꼈다. 취재했던 도중 한 조합원이 던진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한 번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 아들, 지금 취업을 준비 중인 내 아들만은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유성은 MBC 시사교양국 PD webmaster@pdjournal.com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5 Commen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