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1/04 [고재열] 상식의 궤도
  2. 2009/04/28 고재열 칼럼 : 기자와 PD의 가족들이 겪는 일 (1)
  3. 2008/12/30 취재기자가 본 언론노조 총파업
  4. 2008/11/26 YTN은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2009/11/04 11:45

[고재열] 상식의 궤도

   
▲ 고재열 시사IN 기자
어느 사회가 상식적인가 비상식적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는 바로 사람들의 행위다. 사람들이 예측 가능한 상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으면 상식적인 사회인 것이고 그렇지 않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 비상식적인 사회인 것이다. 나는 이 싱거운 진리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깨우쳤다.

2007년 여름이었다. 세상은 그해 겨울 있을 대통령 선거로 시끄러웠다. 한참 대통령 후보 경선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정치부 기자였다. 정치부 기자인 내게 대목장이 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큰 장에 팔 것이 없어 서성거리는 장돌뱅이 신세였다. 사장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던 나와 〈시사저널〉 기자들은 집단 사표를 내고 신매체 창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치부 기자가 가장 바빠야 할 그 시기에 나는 그림을 팔았다. 창간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후원 전시회를 맡아 기증 받은 그림을 경매로 팔았다. 더운 여름이었다. 인사동 골목길에 불법주차를 무시로 하면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그림을 날랐다. 그리고 사람들을 꼬드겨 그 그림들을 사게 만들었다. 취재해야 할 정치인들은 손님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대형 정치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그 앞에 좌판을 깔고 〈시사IN〉 창간독자를 유치했다. 매체를 잃은 기자들을 비웃는 몇몇의 정치인이 있었지만 그것이 부끄럽거나 창피하지는 않았다. 명분만으로 매체가 스스로 만들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날을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속으로 되뇌이면서 홍보 브로셔를 돌렸다(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날이 이렇게 왔다).

2009년 여름이었다. 언론노조가 미디어악법 원천무효를 알리는 방송 광고 제작비를 마련한다며 바자회를 열었다. 경매에 올릴만한 기증품을 달라고 했다. 그 여름의 경매 때 떠안았던 그림을 기증했다. 뭔가 데자뷰가 느껴져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때 ‘우리만’ 겪었던 일을 지금은 ‘모두가’ 겪고 있었다.

‘시사저널 사태’를 열심히 알려주었던 MBC <PD수첩> PD들은 줄소송을 당한 채 피고석에 앉아있었다. ‘올해의 PD상’을 받았던 이춘근 김보슬 PD는 시상식장에서나 입고 갔을만한 정장 차림으로 피고석에 앉아 있었다. ‘시사저널 후원 일일호프’ 때 술을 팔아주었던 YTN 기자들은 줄징계를 당한 채 후원 일일호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판받는 PD, 술파는 기자 …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우리만’ 겪는 일을 ‘모두가’ 겼으면서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69위까지 떨어졌다. 참여정부 때보다 30위 정도 하락한 순위였다. 그런데 참여정부 시절 우리의 언론자유지수가 10위 정도 하락한 것을 가지고 난리굿을 부렸던 조중동은 순위가 30위 가까이 하락했는데, 침묵했다. 그때 그들이 난리를 친 것은 순위가 너무 조금 떨어져서였던 것일까?

   
▲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최 위원장은 지난 달 22일부터 미디어법 무효 판결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만배를 진행했다. ⓒPD저널
돌아보니, 주변의 모습은 온통 비상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주일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미디어법 무효 판결을 기원하며 1만배를 올렸던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한 '죽은 자들(용산참사)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4대강)을 위한 위령미사'에 참석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개종한 것일까? 아마 최 위원장은 ‘언론자유를 위한 기도회’가 열린다면 열일 제치고 갔을 것이다.

상식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위령미사’ 때 사제단의 총무인 김인국 신부는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마치 <미션>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김 신부는 사자머리를 휘날리며 전경들 사이를 파고들고 나서야 미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은 평화롭지 않아보였다. 아주 많이.

최상재 위원장이 사이비신자가 되는 동안 천정배 의원은 사이비법조인이 되어버렸다. ‘과정은 불법이지만 결과는 합법이다’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법무부장관을 지낸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제가 법무부 장관 출신이지만 이런 판결은 처음 봅니다.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은 맞는데 아들은 아니다, 라는 것인지 …” 뿐이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해설을 듣기 위해 헌법학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가지 질문을 받아준 헌법학자는 나에게 질문을 유도하고 있었다(내가 답변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에게 헌법재판소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묘안은 이것이라며, 자문자답했다.

우리 언론이 상식의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의 화룡점정은 잡지의 날에 〈시사저널〉 심상기 회장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받은 일이었다. 기자들을 탄압하는 언론이라고, 기사를 광고와 바꿔먹는 매체라고 시민사회단체에서 취재거부선언을 하고 기자협회에서 제명한 매체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상을 줘야 할 매체가 된 것이다. 이것이 2009년 대한민국 언론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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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8 13:59

고재열 칼럼 : 기자와 PD의 가족들이 겪는 일

[e야기] 고재열 시사IN 기자  
 
  

 
지난 3월22일, 파업을 하루 앞두고 YTN 기자들이 경찰에 잡혀갔을 때,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블로그에 글 올릴 때 아들 얼굴을 한번만 떠올리라는 내용이었다. 사흘 후 <PD수첩> 이춘근 PD가 잡혀가자, 아내는 동료 기자들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갑자기 내가 잡혀갔을 때 연락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PD수첩> 김보슬 PD가 신혼집 앞에서 약혼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연행되는 모습을 본 아내는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다. 화면에 약혼자의 음성이 여리게 흘러 나왔다. “걱정하지 말라니요. 지금 걱정 안 되게 생겼습니까?” 며칠 후 치러진 김보슬 PD의 결혼식에 아내와 함께 갔다. 다행히 결혼식이 무사히 치러져 아내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기자와 PD들이 자꾸 잡혀가니까, 걱정이 된다. 집에 등기 우편물이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아직은 아니다. 사실 이런 일에 낚이지 않으려고 나름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시사저널 파업’을 끝내고 <시사IN>을 창간한 후, ‘앞으로는 정의의 저 편에서 서서 묵묵히 지켜보겠노라’고 맹세했는데, MB 덕분에 말짱 헛맹세가 되었다.

주변에서 놀린다. ‘파업기자’ ‘퀴즈기자’ ‘파워블로거 기자’로 계속 새로운 콘셉트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다음 콘셉트는 ‘구속기자’가 어떻겠냐고. 절대로 싫다. 누구에게든 양보하고 싶은 영광이다.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보겠지만, 이를 소화하기 위한 구상도 따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화두는 ‘겁테크’다. ‘두려움을 정복하라’는 알렉산더의 말을 거듭 되뇌이며 내 안의 겁을 다스리고 있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잡혀가는 모습을 올해 처음 본 언론인 가족은 YTN 조승호 기자의 아내였다. 함께 아침운동을 나가다 기다리던 형사들에게 남편이 잡혀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조승호 기자는 “험한 꼴 당하고 끌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확인할 수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라고 수긍하기 힘든 논리를 내세우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신망 두터운 기자였던 남편이 해직된 것도 모자라 체포까지 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조승호 기자의 아내는 얼른 냉정을 찾고 남편의 체포 소식을 즉각 다른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은 덕분에 노종면 현덕수 임장혁 기자는 집 밖에서 연행될 수 있었다. 임장혁 기자는 집 앞에서, 현덕수 기자는 골목 어귀에서, 노종면 기자는 택시를 타는 순간 체포되었다.

노숙자와 함께 유치장에 갇혀 있던 노종면 기자는 큰 딸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YTN 기자들은 경찰에 자진출두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였다. 긴급 체포될 이유가 없었다. 원래대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면 노종면 기자는 수술하는 딸 곁을 지킬 수 있었다.

가족의 체포와 관련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된 사람은 이춘근 PD의 아내였다. 검찰 수사관들은 차량 추격전 끝에 남편을 잡아갔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남편이 유치장에 있을 때 그녀는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집에 들이닥친 수사관들을 홀로 맞아야 했다. 수사관들은 의심스럽다며 이승환 라이브CD를 틀어놓고 그녀의 신혼집을 수색했다.

  

  
▲ ‘광우병’을 제작했던 조능희 전 CP, 송일준 MC, 김보슬 PD(왼쪽부터) ⓒPD저널

오늘(28일) 새벽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검찰수사에 항의해 사내에서 농성하다 제작현장 복귀를 선언한 <PD수첩> 조능희 책임PD와 송일준 사회자, 김은희 이연희 작가를 검찰이 긴급 체포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검찰은 자정 무렵, 한 가족을 충분히 놀래킬 수 있는 ‘예의 없는 시간’을 골라서 이들을 연행해갔다.

기자의 아내로서 PD의 아내로서, 혹은 남편으로서 이제 이런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과 함께 했던 김용진 탐사팀장은 부산총국에 발령을 받았다가 다시 울산국으로 재배치되는 ‘쓰리쿠션 인사숙청’을 당했다. 그의 아내는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다시 꾸려야 했다. 역시 사원행동 소속이었던 김경래 기자는 청원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갈비뼈에 금이 갔다. 김기자는 3월부터 휴직을 신청했다. 그의 아내는 어떤 기분일까?

‘시사저널 파업’을 벌이며, 선후배들과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냈다. 우리가 어떤 기자들이었고, 우리가 왜 이런 파업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투쟁기금도 벌어보자는 취지였다. 기대했던 만큼 대박이 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우리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 힘으로 ‘개와 늑대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이 도를 더해가는 지금, 이제 <기자의 아내로 산다는 것> <PD의 남편으로 산다는 것>, 이런 책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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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4:45

취재기자가 본 언론노조 총파업

[e야기] 고재열 시사IN 기자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내가 요즘 그렇다.” 얼마 전 한 출판기념회장에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했던 말이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해임당한 정 전 사장은 공판 준비로 여념이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빠 눈이 빨갛다고 하네요.” 해직당한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낙하산 사장 퇴진투쟁’을 진두지휘하는 그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집에 들어가는 날도 피곤에 절어 ‘토끼눈’을 하고 들어가곤 했다.

꼭 2년 전, 우리는 ‘시사저널 파업’을 준비하느라 여념 없었다. 우리는 파업을 몰랐다. 파업 준비만 열심히 하면 끝나는 줄 알았다. 파업은 말 그대로 ‘업을 파하는 것’이니 기사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한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파업하니 더 바빠졌다. 출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피켓 시위를 벌이고, 1인 시위를 벌이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삼성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거리의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응원하러 온 독자를 만나고…. 새벽이면 일어나서 라디오 방송 원고를 준비하고, 그렇게 생활비를 벌고 ….

    


▲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에는 3000여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PD저널

오죽했으면 ‘파업을 파한다(명분은 노조 집행부의 온건노선에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실상 힘들어서 그랬다)’고 선언하고 잠적까지 했을까. 파업은 힘들었다. 가장 힘든 것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고통의 터널의 초입에 서 있는지, 중간인지, 끝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2년 뒤, 언론노조가 총파업을 시작했다. 파업하는 것보다 파업 취재는 쉬울 줄 알았다. 역시 아니었다. 12월26일, 언론노조가 총파업을 시작한 날은 2008년 한 해 동안 가장 바쁜 날이었다. 새벽에 기사를 쓰고 MBC 노조 출정식에 가서 취재하고, 그 출정식을 취재하겠다는 다른 블로거들을 안내하고, 회사에 들어와 파업 기사를 쓰고, 언론노조 출정식 현장에서 블로거들이 보내오는 현장소식을 블로그에 올리고, 미디어 악법이 개정되었을 때의 심각한 상황을 알리는 외고를 쓰기로 했다가 나자빠진 필자를 어르고 달래서 쓰게 만들고, 원고 수정을 마치고 YTN 노조 촛불문화제 뒷풀이에 가고, 해외연수 가는 후배와 한 잔 더하고 …. 

언론사 파업을 취재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이미 ‘YTN 사태’와 ‘KBS 사태’ 때 예감했다. 용역사원 용역경비들과의 치열한 몸싸움은 땀 냄새를 남겼고, 그것뿐이었다. YTN은 끝까지 버텼고 KBS는 끝내 쓰러졌다. 버티는 YTN 노조원들을 보는 것도 괴로웠고 쓰러진 KBS 사원행동 회원들을 보는 것도 괴로웠다.

주말엔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언론노조 총파업 블로거 특별취재팀’을 조직해야 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블로거들을 모아 ‘취재 대오’를 만들었다. ‘현장취재팀’ ‘모니터링1팀’ ‘모니터링2팀’ ‘퍼블리싱팀’ 4팀을 짜서 파업관련 소식을 취재하고, 전파하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했다.

월요일엔 성명서가 밀려 왔다. 주로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간절한 생각을 전해달라며 보내왔다. MBC 구성작가들, KBS 기자들. 꾹꾹 눌러쓴 그 성명서의 내용을 보며 가슴이 아렸다. 특히 노조에 ‘파업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KBS 젊은 기자들의 성명이 안타까웠다.

화요일, 이제 진짜 시작이다. 오늘(30일)은 생중계다. ‘언론노조 총력 결의대회’ ‘MBC 노조의 블로거 간담회’ ‘언론악법 개정 저지 촛불문화제’를 생중계해야 한다. 빨리 이 글을 마치고 여의도로 넘어가야 한다. 일복이 터졌다. 혼자 조용히 탄식한다. ‘이게 다 MB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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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3:28

YTN은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e-야기] 고재열 시사IN 기자  
 
11월24일, 언론노조 20주년 기념식장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다 해직된 YTN 조승호 기자와 현덕수 기자와 마주쳤다. 그들은 언론노조에서 수여하는 ‘민주언론상 본상’을 수상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둘의 얼굴이 어두웠다. 조승호 기자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그러나 그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에게 일어날 일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낙하산 사장의 수족이 된 편집국 간부들에게 항의하다 회사 직원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고 들려나오던 그는 “내 발로 걸어나가겠다”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그 길로 잠적했다.

‘YTN의 뚝심’으로 불리던 그를 동료들은 믿었다. 며칠 뒤 그는 자신을 믿는 동료들 곁으로  돌아왔다. 뭔가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차’, 말이 헛나왔다. 입이 방정이었다. 묻지 않아도 될 것을 물었는데 고지식한 조 선배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을 대답했다. “등산도 가고 … 도서관에도 가고….”

‘시사저널 파업’ 때가 떠올랐다. 파업 기자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편집권 독립 투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투쟁 없이 형식적인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될 무렵, 혼자 ‘IMF놀이’를 즐겼다. 산에도 가고 공원에도 가고, 술 사줄만한 선배에게 전화해서 신나게 찾아가고…. 그때 최대의 적은 봄햇살이었다. 화창한 봄햇살을 받으며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 ⓒPD저널

파업은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유인물을 나눠주다 거부하는 행인의 손짓에서 ‘됐거든, 알고 싶지 않거든’이라고 말하는 속마음이 읽히면 자존심은 한없이 무너진다. ‘시사저널 파업’ 때 잘한 일 중 하나는 ‘파업 조끼’를 입지 않은 것이었다. ‘파업 조끼’를 입으면 편집권 독립을 위한 우리의 싸움이 단순한 노사문제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파업 조끼’를 입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파업 조끼’를 입고 안입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의 파업에 무심했으니까.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라고 YTN 노조원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참 어중간한  말이고, 무책임한 말이다. 이 시기를 버틴다고 뚜렷이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말하게 된다. 끝이 보이면 오히려 쉽다. 끝까지 역산해서 버티면 된다. 문제는 끝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이 터널의 초입인지 중간인지 끝자락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시사저널 파업’ 때 우리가 거쳤던 파업 집단심리 곡선을 토대로 분석해보면 YTN 노조원들은 지금 ‘울화기’를 지나서 ‘잠적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징계를 당하고 인사 조치를 당하고 소송을 당해 집에 내용증명 우편물이 쌓이면 울화가 치민다. 그러면 회사 간부나 직원들과 뒤엉켜 드잡이를 하게 되고, 흉한 꼴을 당하게 된다. 멱살을 잡히고 ‘죽고 싶냐’는 말을 들어본 것이 다섯 번이었다. 다섯 번째 멱살을 잡은 용역직원에게 나지막이 ‘죽여라’라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멱살을 풀었다.

‘울화’를 다스리기 위해 하나 둘씩 잠적하기 시작한다. 혼자서 삭히는 것이다. 정신과를 찾아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산이나 공원에서 ‘IMF 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 존재의 무의미함을 참기 어려워, 없는 돈에 서점에서 상식책을 사들고 집에 갔다. 그리고 문제만 맞추면 2천만원을 준다는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보기 좋게 ‘퀴즈 영웅’이 되어 어렵게 우리의 파업을 알릴 수 있었다. 드물게 쳐 본 내 인생의 굿바이 홈런이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24일 오후 6시부터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언론노조가 언론민주화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민주언론상 본상은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노조가 수상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YTN을 응원하는 언론계 선배들은 그들이 ‘울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각종 상을 몰아주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정동익)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주었고 언론노조는 ‘민주언론상’을 주었다. 우리들도 받았던 동업자들의 ‘위로주’였다. 이변이 없다면 YTN 노조는 ‘한국기자상 특별상’도 받을 것이다. 상이 YTN 기자들의 배를 불려줄 수는 없겠지만 투쟁에 지친 몸을 녹일 뜨끈한 화톳불을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승호 선배를 위해서 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벌였다. ‘YTN 해직기자 조승호 후원회(문의 gosisain@gmail.com)’를 조직한 것이다. 물론 해직기자 중에 조승호 기자만 따로 돕는 것은 아니다. 조 기자를 돕기 위해 해직기자와 정직기자와 다른 징계 기자를 함께 돕는 것이다. 과 선배인 그를 위해 과 동문들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사발통문을 돌렸다. 과 출신 기자들이, PD들이, 언론학 교수들이 속속 참여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파업 한파’에 시달리게 될 조승호 선배의 겨울을 따뜻이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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