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9/12/15 아프간, 당신들 자식부터 보내라 (1)
  2. 2009/05/12 당신의 '선생님'은 누구입니까
  3. 2009/04/02 어느 리얼리티 TV 쇼 스타의 죽음 (11)
  4. 2009/03/01 학업성취도 평가? 영국을 보라!
  5. 2008/06/19 영국 최초 이종배아 실험 성공에 언론 차분
  6. 2008/05/14 광우병 전쟁 20년, 영국에서 배운다 (5)
  7. 2008/05/06 유럽 광우병도 방송 고발로 잡았다 (2)
  8. 2008/04/24 [글로벌] 英 지상파 뭉쳐 ‘캥거루 프로젝트’ 시행
  9. 2008/04/17 프리랜서 언론인 차별없는 영국
2009/12/15 11:54

아프간, 당신들 자식부터 보내라

[경계에서] 지원준 독립PD

나의 큰아버지는 남자의 악몽이라는 ‘군대 두 번 갔다 온 사람’이다. 두번째 갔다 온 군대는 한국군이니 별 것이 없는데, 첫번째 갔다 온 군대가 사뭇 낯설다. 큰아버지는 옛날말로 ‘왜정 때’ 만주군이셨다. 만주 독립군도 아닌, 만주군? 이게 무슨 일인가?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영토였다. 서울에 그대로 살고 있으면, 자연히 일본군 징집 대상이다. 그 당시 일본군이 갈 곳은 오직 한 군데, 옛날말로 ‘남양군도’ 뿐이었다. 아무리 친일 작가들이 나발을 불었어도, 사람들의 소문은 막을 길이 없는 법이다. 사망률 100%로 악명 높은 남양군도로 누가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 마침, 중국과 대결을 해야 하는 만주국에서는 일본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주군 내의 통신, 의무, 기술 등의 분야에 일본어 능력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이 남한지역 조선인들에게는 유일한 살 길이 된 것이다. 경쟁률은 하늘을 찔렀고, ‘떨어지면 죽는’ 살벌한 시험이다 보니, 큰아버지께서는 며칠 동안 주무시지도 못하고 잡숫지도 못하실 정도로 긴장하셨다고 한다.

어쨌건, 합격 통보가 날아오자, 할머니께서는 ‘최고의 효도’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 경향신문 12월9일자 3면
나의 외삼촌 중에는 해병대 장교가 한 분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꼬마였던 내게 ‘말썽 안 피우면 전투기 태워 주겠다’는 공약을 남발하셨던 분이다. 그래도 그때는 외삼촌 옆에만 서면, 너무도 믿음직스러웠고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전투기를 타고 귀신을 사냥하는 ‘능력자’ 아닌가! 하지만, 세상엔 실망스러운 진실도 있는 법. 멋있기만 했던 외삼촌을 베트남전에 끌려가지 않게 하려고, 외할머니는 실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셨다고 한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소대장은 장교가 아니라 총알받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니, 돈을 아끼실 처지가 못됐던 모양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제대 후의 외삼촌댁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오르막길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멋있게 죽은 아들보다는 가난하게 살아 있는 아들을 원하는 것이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텐데.

‘왜정 때’나 ‘유신 때’ 있었던 일들이 21세기에 다시 벌어지려 하고 있다. 도적떼나 상대하면 되던 소말리아나,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다음 주둔하면 되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살벌하기로는 베트남전에 가깝고, 이라크는 석유 사업권이라도 얻을 가능성이 있다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그야말로 바위밖에 없는 곳이다.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파병론자들이 하는 말이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과의 의리란다. 이래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나보다.

‘레이건 때’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은 그야말로 미국을 보스로 둔 똘마니였다. 잘해야 중간보스 정도였을 아르헨티나 군정은, 영국파 보스 영국에게, 자신의 앞마당에 있는 포클랜드 섬을 내 놓으라고 싸움을 건다. 대서양을 건너 지구를 종단해야 하는 영국 해군이 과연 이름값을 할 수 있을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기를 걸었지만, 너무나 싱겁게 영국이 이기고 만다. 이 전쟁이 끝난 후 얼마 못가서 아르헨티나 군정도 막을 내린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은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 군사위성으로 얻은 모든 정보를 영국에게 건네 주었다. 자신의 똘마니가 다른 조직 보스와 싸우는데, 다른 조직 보스를 돕는다? 조폭들의 ‘나와바리’ 다툼과 외교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누구와 친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전략적으로 중요한 상대인가를 따지는 것이 외교다. 외교에서 의리만 믿고 있다간 한 순간에 쪽박 찬다.

   
▲ 지원준 독립PD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무슬림국가다. 그런데,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 파키스탄은 미군에게 기지를 내 준다. 이건 배신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국제적으로 공인받는데 성공한다. 의리보다 이익이 중요한 것, 이것이 외교다.

파병론자를 위한 팁 하나. 당시 바람둥이로 명성(?)을 날리며, 여성 잡지의 단골손님이었던 영국의 앤드류 왕자는 헬기 조종사로 직접 포클랜드 전에 참전했다. 파병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 자식부터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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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3:39

당신의 '선생님'은 누구입니까

그 영화의 한 장면 
[이주연의 영화이야기]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영화를 보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서 짠해지는 순간이 있다. 영화의 만듦새와 상관없이 어떤 장면이 나오면 마음 속 특정 부위가 부풀어 오르면서 울컥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은 견고하게 닫혀있던 인물의 마음속 빗장이 열리고 연약한 속내가 드러날 때가 내게는 그런 순간인데 때로는 그런 장면 때문에 그저 그렇던 영화가 쑥 마음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고 또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내 인생의 영화로 남게 되기도 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는 영국의 탄광촌에 살고 있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광부인 아빠와 형은 파업중이며 치매인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은 어린 빌리 몫이다. 빌리는 완고한 아빠의 강요로 권투를 배우고 있지만 영 재능이 없는 반면 같은 체육관에서 수업하는 발레에는 저절로 눈길이 가게 되고 결국 선생님 윌킨슨 부인의 권유로 아빠 몰래 발레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수적인 아빠는 아들이 발레를 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탄광의 파업으로 정신이 없는 형도 빌리를 이해해주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파업으로 팍팍한 현실은 어린 빌리에게도 무거운 짐일 뿐인데 그때 단 한사람. 빌리의 재능을 알아주고 빌리의 꿈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바로 윌킨슨 선생님이다.

   

 
▲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

교습비도 받지 않고 ‘로열 발레단’에 입학시험을 볼 수 있게 개인교습을 시켜주기로 한 윌킨슨 선생님은 어느날 춤을 추는데 영감을 주기 위해 빌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가져오라고 한다. 빌리가 체육관에 가져간 것은 축구공, “I love to boogie”가 녹음된 테이프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의 편지. 엄마는 18살이 되면 읽어 보라고 했지만 벌써 편지를 뜯어본 빌리는 모든 구절을 외우고 있다.

네가 자라고 웃고 울고 소리치는 것을 보진 못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거라는, 너의 엄마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편지. 그리고 이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슴 아픈 장면. 선생님은 찬찬히 편지를 읽고 빌리는 한 구절씩 따라서 외운다. 햇살이 부서지는 조용한 체육관에서 편지를 읽으며 빌리의 마음까지 읽는 윌킨슨 선생님.

그 후 “I love to boogie”에 맞춰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윌킨슨 선생님과 빌리는 내가 본 그 어떤 사제지간보다 아름다운 관계였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연주(거문고를 타는 마음)를 알아주는 종자기가 죽자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해서 음을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의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지만 춤을 추고 싶은 마음,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빌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윌킨슨 부인이야말로 빌리의 진정한 친구이자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많은 선생님들이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양호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그리고 자주 연락드리고 있는 내 인생의 선생님까지 5월 이즈음이 되면 많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만이 선생님인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곳곳에서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접하게 된 깊이 있는 생각의 블로거, 책으로 가르침을 주는 존경스러운 인문학자, 그리고 가깝게는 현명하게 일하며 가정생활도 하고 자기계발에 열심인 직장의 선배들까지. 배울 점이 있는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배울 것이 새로 생기고 깨닫는 것이 늘어가는 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인가.

    

더군다나 의무교육 기관이 아닌 곳에서 내게 깨달음을 주는 그들은 나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두드리고 가슴을 열어주는 선생님들이다. 시험 보는데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사랑하는데 필요한 지혜를 나눠주고 나의 꿈과 고민과 인생을 알아주는 사람들. 하여 그들 모두에게 외치고 싶은 말,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제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선배 혹은 선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5월에 하는 마음 깊은 다짐.
 
사진 = MBC FM <이주연의 영화음악> 진행자, 이주연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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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2 09:23

어느 리얼리티 TV 쇼 스타의 죽음

[글로벌] 영국=채석진 통신원 
 
영국=채석진 통신원 stonyjin@empal.com 
 
 
지난달 22일 아침, 영국의 대표적인 리얼리티 TV 스타인 제이디 구디(Jade Goody)가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죽음은 지상파 텔레비전 메인 뉴스를 포함한 거의 모든 미디어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BBC와 가디언(Guardian) 등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한 특별 부고 기사를 내보냈다.

런던 근교 지역에 있는 그녀의 집 앞에는 수많은 헌화들이 가득 놓여졌고,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의 다이애나 왕비의 죽음처럼, 구디의 죽음은 일반 대중의 수많은 추모 속에 국가적인 미디어 이벤트가 되었고, 이를 통해 한 때 “무식한 떠벌이 계집”으로 비난 받았던 구디는 암과 투병하는 “용기 있는 여성의 전형”이자 “고난을 극복하는 성녀”로 추앙 받았다.

    


▲ 지난 달 22일 사망한 제이디 구디. <사진제공=BBC>

영국 사회에서 구디는 빈민 계층 출신 스타를 상징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춘 중계인이자 마약 중독자였고, 어머니 또한 교통사고로 팔을 잃은 장애인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구디는 5살 때부터 어머니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6살 때는 불타는 집에서 엄마를 자신의 힘으로 끌고 나와야만 했다. 그녀가 2002년 처음 <빅브라더> 쇼에 합류했을 때도 아버지는 마약 사범으로 감옥에 있는 상태였고(결국 2005년도에 약물과용으로 죽었다), 그녀와 엄마는 집세가 밀려서 막 쫓겨난 상태에다가 밀린 세금으로 감옥에 가야 할 판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이 <빅브라더> 쇼였다. <빅브라더> 쇼에서 보여 준 구디의 언행은 중산층 계급 사람들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신문 <선>(SUN)은 구디의 행동에 대중의 반감을 이끌었는데, 예컨대 영향력 있는 칼럼리스트인 도미닉 모한은 “TV에서 ‘떠벌이 돼지’를 추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가디언>에 부고 기사를 쓴 스투어트 제프리는 구디가 <빅브라더> 하우스에서 추방될 때의 분위기를 중세시기에 비유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가지고 ‘미스 돼지’라고 불렀고, 미디어들은 ‘제이디 구디는 공공의 적 1호’라고 칭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심지어 ‘어느 정도 취해야 제이디 구디와 잘 것인가’라는 설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로, 구디는 이후 자신의 악명을 이용해, 살과의 고군분투를 담은 다이어트 비디오와 ‘못난이들(Ugly’s)‘이라는 이름의 뷰티 살롱을 냈고, 빈민 계층으로 성장했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출판하면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구디가 비난 받았던 ‘무식함’, ‘과체중’, ‘하층 계급’ 등의 특성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일반 사람들이 구디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 것이다.

<가디언>은 부고 기사를 통해, 그녀가 선택한 죽음의 방식에 대한 상반된 평가도 이러한 계급적 차이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그녀를 비난하는 근거인, ‘존엄성’을 유지하는 죽음이라는것 자체가 중산층 계급적 취향에 적합하게 포장된 것에 불과하고, 죽음이란 구디가 TV를 통해 보여 준 것처럼 변비와 불면증과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에 대한 극단적 평가는 정당성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계급투쟁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보수주의적인 미디어가 그녀가 보여 주는 저급의 ‘취향’(Taste)을 비난하며 중산층의 계급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반면, 진보적 미디어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서민적인 ‘가치’(Values)를 강조하며 노동자 계급의 정당성을 방어하고 있다. 이처럼 한 리얼리티 TV 쇼 스타의 죽음은 현재 리얼리티 TV 쇼 산업의 붐과 맞물려 있는 영국 사회 내의 오래된 계급투쟁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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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11:15

학업성취도 평가? 영국을 보라!

[헨드릭스의 책읽기] (7) 위기의 학교 -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헨드릭스 webmaster@pdjournal.com 
 
 
영국의 〈가디언〉 지를 좋아한다. 처음엔 그냥 영어공부를 위해서 읽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G2〉의 기획이나 그들의 탐사보도 기사들이 좋아서 자주 들어가서 사전을 펼쳐놓고 읽는 게 습관이 되었다. 〈G2〉의 재기발랄한 기획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들의 ‘탐사보도’에 대한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 <위기의 학교 -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닉 데이비스 (지은이), 이병곤 (옮긴이)/ 우리교육)

〈가디언〉 지의 닉 데이비스 기자의 〈위기의 학교〉라는 책이 있다. 영국에서 대처 정부 이후 시작된 ‘교육 개혁’이 불러온 일을 낱낱이 파헤친 기자의 이야기이다. 처음 개혁의 시작은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학부모의 선택권을 부정할 수 없는 권리라고 추켜세우며, ‘선택되지 않은’ 학교에는 재정보조를 축소했다. 둘째는 그러한 ‘선택되지 않은’ 학교의 교원들을 해직시켰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간단했다. 기숙학교로 대변되는 사립학교들에는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내려고 안달이 났고, 중산층 이상의 ‘훌륭한’ 학생들은 높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국가의 지원은 원칙에 따라서 늘어났다. 반면 공립학교들에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이 빠져나가게 되고, 서민들의 자식들로만 구성된 학교는 낮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했다. 그래서 사립학교와 달리 낮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했다. 그리고서는 학업성취도의 측정보다 학교 밖에 끌어안을 곳이 없는 아이들을 끌어않던 교사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학업성취도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영국의 초·중등교육의 문제는 만성적인 것이 되었다. 20년의 보수당 정권이 끝나고 블레어의 新노동당 정권이 들어섰다. 그들은 진보의 말을 했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빈민층의 공립학교 중에서 성적이 안 나오는 학교를 ‘특별관리가 필요한 학교’로 지정하고, 거기서 개선이 보일 경우 그런 조치를 해지해주고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특별 관리’ 대상인 학교에 누가 가려고 하겠는가? 그건 낙인에 불과했다. 교육의 양극화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영국의 교육 이야기가 갑자기 요즘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학업 성취도 평가를 지속하겠다”며 “이 평가를 해야 맞춤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성적 조작 파문에 대해서는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와 ‘국제중’, ‘국제고’, ‘특목고’ 입시가 점차 과열되고 있는 지금, 며칠 전 벌어졌던 학업 성취도 평가와 관련된 일련의 일들이 기시감을 느끼게 했다.

학업 성취도 평가에 반대했던 교사들은 무능한데다가 반골이라는 이유로 해직당하는 수순도 영국의 교사들과 비슷하다. 또한 ‘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를 조작해서라도 지역 학교들의 ‘등급’을 더 높여보려는 시도들이 ‘성적조작’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기숙형 공립고’의 사례들을 생각하면 그러한 교육청의 행태들이 이해되는 것도 당연하다.

    


▲ 경향신문 2월 19일 1면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맞춤 교육’은 상류층에만 집중될 것이고, ‘재발방지’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영국의 경우와 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쁘게 전개될 것이다.

여전히 한국의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학구열’ 하나는 끝내주게 갖고 있고, 그건 전쟁의 경험과 유교적 분위기를 통해 생성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기억이 제공하는 폐허에서 싹을 틔웠던 ‘입지전적 경험’이라는 것은 경제적 규모의 성장과 함께 봉쇄되고 있다. 잠시 DJ의 ‘벤처기업’ 붐을 타고서 창업 열풍이 불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이 많이 없어진 상태다.

사회는 규모의 성장만큼이나 고착화되기 시작했고, 계급이라는 것이 점차 ‘세습’되는 경향은 한국사회 도처에서 발견된다. 명품소비에 열 올리는 강남과 신도시의 ‘졸부’들의 부는 별 탈 없이 여러 가지 ‘회계적 기법’을 통해서 상속되고 있고, 반대로 ‘가난’이라는 변명으로 인해서 교육의 기회에서 박탈되는 것은 ‘사교육 붐’의 이면에서 양산되고 있다.

한동안은, 학부모들의 열의와 희생을 통해서 ‘사교육’ 기제는 작동할 테고, 서민층의 많은 수가 교육을 포기하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한세대 뒤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쉽게 기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미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서장이 펼쳐졌고, 이제 학부모의 ‘쥐꼬리 월급’과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그것을 충당시키기에 슬슬 힘이 부칠 태세다.

이미 교육에서의 ‘학비’ 문제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교육계의 이해당사자들은 그 비용을 이미 '만만한' 학부모에게 전가시키기로 암묵적 동의가 형성된 상태다. ‘가난은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언명은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만연해 있지만, 동시에 그 가난 덕택에 교육의 기회는 점차 포기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더 문제는 그나마 ‘4년제 대학’ 티켓을 끊은 이들도 곧, ‘해외파’에게 잠식당할 것이며, 사회는 약육강식의 구도를 그대로 교육과 그에 이어지는 ‘구직’에서 펼쳐낼 것이라는 데에 있다.

만약 학교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원이 부족하여 유능한 전문 치료사들의 과로가 누적된다면, ‘부적응 학생을 학교에 정착시키는’ 전략이 먹혀들지 않으면, 그리고 학교 간 성적 순위표나 교사 성과급 제도같이 이 목표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인해 그나마 흔들리던 출렁다리가 완전히 무너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 무단결석하던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학교 중퇴자들이 교문 밖으로 쫓겨 나왔을 때 예전보다 더 열악한 사회 안전망밖에 없다면, 더욱 많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청소년 범죄가 증가하고, 매춘은 늘어날 것이며, 노상강도도 많아질 것이다. 빈민가 아파트촌에서 맥없이 빈둥거리며 목적도 없이 절망에 차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도 늘어날 것이다(p.218).

영국에는 그나마 ‘노동자’라는 ‘자존심’ 하나는 끝내주게 갖고 있는 노동 계급이 칼 맑스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며 살고 있고, 영국인들은 최소한 ‘대학 교육’이 부의 원천이라거나 입신양명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는 않다.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은 여전히 이러한 문제의 구조적 역학과 사건들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보고 기록하고 또 외친다.

‘탐사보도’가 점차 사라지게 유인하는 미디어 환경, 그리고 ‘탐사보도’의 외진 길을 구태여 가지 않음이 결합하여 지금의 사태를 만들고 있지 않는가? 지금 필요한 건 한 명의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의 면면과 그 구조를 추적하여 보여주는 저널리스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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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10:31

영국 최초 이종배아 실험 성공에 언론 차분

'황우석 신화' 만든 한국언론 태도와 비교

지난 4월 뉴캐슬대학 연구팀이 영국 최초로 이종배아(Hybrid Embryos)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다른 나라 국민들 같으면 “이종배아? 그게 뭔데?” 하고 묻겠지만 황우석 사태로 온 국민이 생물학 박사가 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생활용어에 가까울 터. 그저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DNA를 주입해 줄기세포를 체취하기 위한 것” 정도로 용어에 대한 설명은 끝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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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최초 이종배아 실험 성공과 관련한 영국 <더 타임스> 보도.

발표가 있은 후 영국의회는 이 동물과 사람의 교잡을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 두고 볼 것이냐 금지할 것이냐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인 표차로 연구허용 결정을 내렸다. 이런 일련의 뉴스가 영국 방송사들의 식탁위에 주요 메뉴로 올랐음은 물론이다.

TV화면을 통해 동그란 세포를 바늘로 살며시 찌르는 너무도 익숙한 장면을 보면서 황우석과 대한민국을 떠올린 건 파블로프가 실험했다는 조건반사처럼 당연한 현상이었을까? 2005년 5월 20일, 런던 한복판에서 황우석 박사가 처음 치료용 줄기세포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던 날 필자는 현장에 있었다. 그곳엔 영국의 주요 신문방송뿐 아니라 다양한 전 세계 언론사 기자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우린 “세계 최초”, “대한민국이 이룬 쾌거” 등의 용어를 써가며 자못 흥분해 있었다.

<더 타임즈> 기자 등 유명 언론사 기자들이 윤리문제를 들먹이며 황우석 박사를 향해 질문을 던질 때 우린 그들이 시기 혹은 질투를 하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뉴스 말미에 “그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마디 던짐으로써 대한민국 안방의 시청자들이 적이 흐뭇해하길 바랐다. 여러분 모두가 기억하듯 그때 대한민국 언론은 참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황우석의 성과를 조명했다. 수많은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황우석의 줄기세포는 전 국민이 꼭 알아야 할 국가적 교육과정처럼 되어 버렸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학문인만큼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쉽고 자세한 설명은 기본이고, 앞으로 난치병 환자 치료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엄청난 소득을 안겨 줄 것이라는 따위의 분석과 전망을 기억할 것이다. 특허관계가 어떻고, 세계 과학계의 반응이 어떻고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황우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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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의 이종배아 실험 허용 관련 영국 BBC 보도.

물론 윤리적 찬반 논쟁도 있기는 했으나 모두가 기억하듯 그 논쟁은 “세계 생명공학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황우석의 줄기세포는 떼돈을 보장해주는 미래의 산업이다”라는 주장에 간단히 밀려 버렸다. 황우석이 전략적으로(난 그렇게 믿는다. 전략적 이었다고) 강조했듯 그 모든 뉴스와 프로그램의 중심엔 국수주의에 가까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었다. 필자는 기억한다. 어렵게 뉴카슬 대학의 줄기세포 연구센터를 방문해 인터뷰 하면서 물었던 잊을 수 없는 질문 하나. “황우석 (대한민국)이 너희보다 더 잘하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 물론 그 질문은 대한민국 생명공학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의도의 질문이기는 하였으나, 거기엔 “대한민국이 부럽지? 대한민국에서 연구하고 싶지?”하는 낯간지러운 의미도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낯이 뜨거워진다.

이제 비슷한 주제를 놓고 영국의 방송과 우리 방송이 어떻게 다른 방송을 하고 있는지 그 차이를 이야기해야겠다. 뉴카슬 대학이 새로운 줄기세포 추출 방법을 찾아냈지만 영국방송은 그 연구성과에 주목할 뿐 뉴카슬 대학이라는 연구센터에도, 그 연구센터의 과학자 누구에게도 특별히 주목하지 않고 있다. 영국 최초라고는 하지만 최초라는 것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른 나라의 반응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 뉴카슬 대학의 연구성과 발표도, 이번 의회의 결정도 주요 이슈로 다루기는 했지만 영국의 방송과 신문은 그 이슈에 대해 이틀 이상 주목하지 않았다.

독립적으로 뉴카슬 대학의 연구와 논쟁에 대한 프로그램은 제작되지 않고 있으며 뉴스는 주로 정계,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가 등장해 윤리적으로 연구를 보장해 주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언론도 특허문제라든지, 생명공학연구나 산업의 주도권 문제라든지, 영국의 생명공학계가 안겨줄 경제적 가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만 접해서는 뉴카슬의 연구결과가 성과라기보다는 영국사회에 하나의 고민을 던져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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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장정훈 통신원/ KBNe-UK 대표

그리고 언론은 그 연구결과에 대한 학문적, 경제적 평가 혹은 국민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미화보다는 논란이 되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철저히 객관적인 위치에서 따져 보는 데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송만 보아서는 영국이 마치 높은 도덕적, 윤리적 지위를 가진 나라처럼 보인다. 뭐 최소한 방송계는 아직 그런 순수함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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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17:08

광우병 전쟁 20년, 영국에서 배운다

[글로벌] '불신' 먹고 자라는 광우병...'무작정 안심' 정책으로는 실패

영국 것이 세계 표준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그리니치 표준시 말고도 많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것들 가운데는 의회민주주의나 산업혁명처럼 ‘오래된 근대’의 유물만 있는 게 아니다. 바야흐로 한국을 바싹 달구고 있는 그 유령, 비록 헛것이되 결코 헛되이 다룰 수만은 없는 대중적 열병의 진원, 바로 광우병이 있다.

   
▲ 스페인에서 두명의 광우병 환자가 사망했다는 내용으로 지난 4월 7일 영국 BBC에 보도됐다. (사진출처=BBC)

영국에게는, 광우병도, 인간 광우병도, 그에 관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도, 모두 실재했던 과거이자 엄존해 있는 현재이다. 1986년에 ‘소 해면상 뇌증(BSE)’이 확인된 후 무려 18만 건이 접수됐고, 1994년부터 2007년 사이에 163명이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으로 사망했다. 농업장관 존 거머가 네 살배기 딸을 데리고 나와 쇠고기 햄버거를 먹이는 눈물겹게 엽기적인 장면을 선뵌 게 1990년. 그로부터 6년 후, 영국 정부는 변형 클로이펠트-야콥병과 소 해면상 뇌증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 즉 인간 광우병을 유발한 물질이 광우병 쇠고기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공표하기에 이른다.

“미친 소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헤드라인이 등장한 1996년 이후 지금까지, 광우병은 영국 언론의 단골 소재이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테마다. 광우병 발생 건수는 1993년을 정점으로 확연히 감소했고, 인간 광우병 역시 2000년을 고비로 현저히 꺾였지만, 2003년 무렵의 수혈에 의한 전염 문제, 최근의 학교 급식을 통한 인간 광우병 발생 주장 등 광우병에 대한 사회적 감도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위험에 대한 대중적 지각은 흔히 공포감, 생소함, 노출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공포를 안겨주는 위기란 대개 치명적이고, 비자발적이며, 잠재적으로 파국적인 것으로서 특히 미래 세대에 큰 위협을 안겨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껏 관찰된 바 없고, 확정된 지식이 매우 부족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위해의 실제성이 드러나는 경우에 생소함이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위험의 노출 빈도가 높을수록 그에 대한 대중적 지각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영국정부에서 인간 광우병을 유발한 물질이 광우병 쇠고기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공표하기 전인 1990년. 당시 영국의 농업장관이었던 존 거머는 쇠고기의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쇠고기 햄버거를 먹는 장면을 선보였다. (사진출처=BBC)

광우병이라는 ‘위험’은 이 세 가지 요소들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소재다. 그만큼 뉴스 가치가 높고, 또 그만큼 담론적 폭발력이 강하다. 영국 언론과 대중이 1996년을 전후로 토해낸 엄청난 물량의 사회적 히스테리는 축산업, 과학, 환경, 음식, 공중 보건에 관련된 불확실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일종의 살풀이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할만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음울한 시나리오, 혹은 이른바 광우병 괴담의 원형이라고까지 할 만한 종말론적 공포가 영국을 넘어 유럽 대륙을 들끓게 했으니 말이다.

영국 언론이 광우병 의제를 다루던 구체적인 방식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일정한 변형을 거듭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선도적 언론들의 경고성 보도가 있었는데 “질병에 걸린 쇠고기가 판매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영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정부의 입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정도였다. 영국 쇠고기에 대한 첫 수입 금지가 시작된 1990년은 광우병 담론의 선정성이 확연해지는 시기였다. 예방 조치로 암소 600만 마리를 살처분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종감염 가능성에 대한 불길한 시나리오가 퍼져나갔다. 결국 1996년을 기점으로 인간 광우병 ‘괴담’이 현실화됐는데, 유럽연합이 내린 금수조치 이후로는 애국주의적 언론에 의한 ‘쇠고기 무역전쟁’ 담론이 영국 정부에 단비를 내려주기도 했다.

방송과 신문이 각각 광우병 담론을 다루던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방송은 위기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불편부당성’ 원칙에 따라 냉철히 추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백한 정책 실패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수행하면서도 서로 대립되는 전문적 견해와 정치적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와 달리 ‘정파성’에 근거를 둔 신문들은 주로 ‘친유럽연합’과 ‘반유럽연합’ 성향에 따라 대립했다. 쇠고기 금수 조처를 수긍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쪽과, 유럽 각국이 광우병 위험을 과장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 한다는 애국주의적 선동에 초점을 맞춘 쪽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앞장서 광우병 묵시록을 전파하더니, 갑자기 쇠고기 전쟁 ‘음모론’을 들고 나온 황색지들도 있었다.

당면한 위험에 대한 대중들의 직관적 판단은 흔히 ‘분노’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부풀려진 위협이라든가 통제 불가능한 공포와 같은 비합리적인 감정이 그 안에 섞여드는 건 외려 정상에 가깝다. 여기서 정부가 적절한 위험관리를 해내거나 정치의 순기능을 활용해 대중적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면 위험담론은 곧잘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기존 신념에 일치하는 정보만 선별하고, 그에 반하는 증거나 견해는 신뢰할만하지 않다거나 대표성을 띠지 못한다며 부정하는 태도는 불신을 가중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심리적 공황을 야기한다는 관점에서 언론을 통제하려 든다거나, 전문가들의 지식을 대중들에게 ‘교육’시키면서 무작정 안심을 유도하려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이것이 바로 광우병 위기 국면에서 영국 정부가 행한 그대로이다.

한국이 영국과 동일한 경로를 걸으리라는 보장은 물론 없다. 영국은 광우병을 직접 겪은 당사자인 반면 한국은 “광우병 발생 건수가 미미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입장이다. 광우병 초기에 비해 통제 노하우도 많이 늘었을 테니 남들이 겪은 호들갑을 우회하여 ‘쿨’하게 행동할 만도 하다. 게다가 오늘날의 한국에는 광우병이란 소재의 엄청난 뉴스 가치를 외면할 수 있는 놀라운 인내력을 보유한 언론도 있지 않은가.

   
▲ 런던=정준희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문화연구센터 박사과정, KBS <해외방송정보> 영국주재 연구원

자국 쇠고기에 대해 수입제한 조치를 취한 나라들에게 영국 보수우파 언론이 제기하던 음모론을 자국의 수입제한 논의에 대한 “반미 빨갱이” 음모론으로 대체하고, 수출국의 쇠고기 품질까지도 나서서 보증해주는 한국 보수언론. 진정한 실증론적 과학주의와 국제적 개방성을 통해 보수우파의 고질적인 애국주의마저 넘어선 한국 언론의 신기원이 쿨하다 못해 자못 오싹해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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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5:33

유럽 광우병도 방송 고발로 잡았다

[글로벌 미디어] 위험성 은폐하려는 영,프 정부에 맞서 BBC,M6 시사프로그램 고발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에 따른 광우병의 안정성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그런데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생하는 국민들에게 마음껏 먹게 해서 국민건강을 지켜 주시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일부 몰지각한 선동 언론들에 의해 그 본심이 왜곡돼 다수의 순진한 국민들이 현혹되고 있다는 한국 언론계 갈갈이 삼형제의 기사들과 사설을 보면서 문득 황우석 사태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그당시 자신의 입맛과 이익을 위해 사실을 마음대로 각색하고 왜곡했던 그들이 황우석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난 후 최소한의 반성기간은 가지고 다시 펜을 들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 <조선일보> 5월 5일자 사설. <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해 비과학적, 선정적 보도로 매도하고 있다. ⓒ<조선일보>
유럽의 광우병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진실을 은폐하고자하는 부당함 앞에서 언론이 보여준 자세에 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이다.  1980년대 말 영국에서 동물사료 사용으로 인해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생겨나고 급기야 사망자가 발생하자 영국정부는 자국 내에서 동물사료 사용을 금지하고 광우병에 걸린 소들을 대량 도살해 소각했다. 그 당시 영국정부가 조용히 덮으며 넘어가려고 한 동물사료와 광우병 환자 사망 문제는 B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고 그 파장은 컸다.

광우병의 공포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가자 프랑스 정부는 1989년 영국의 동물 사료의 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프랑스 소들은 광우병의 위험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프랑스 6번 방송(M6)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금지구역(Zone Interdite)은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영국산 동물사료가 벨기에의 수출업자들을 통해 프랑스로 수입되었으면 프랑스도 결코 광우병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광우병에 관한 정부 당국의 철저한 검사를 요구했다.

방송이 나간 후 정부와 축산업계에서는 이방송이 사실을 왜곡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들과 방송들은 금지구역(Zone Interdite)의 방송 내용을 확인, 보충 취재해서 동물사료가 프랑스에 수입된 사실과 수많은 축산농가에서 동물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린 4월 29일 MBC < PD수첩>의 한 장면 ⓒMBC
이와 같은 언론의 보도가 알려지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학교급식을 담당하는 지역자치단체의 시장들과 학교장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가 국내산이건 수입산 이건 프랑스 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쇠고기의 안정성에 관한 정확한 검사와 그 결과를 발표 할 때까지 학교급식에서 쇠고기를 금지 시킨다고 발표했다.

결국 언론의 문제제기와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프랑스 정부는 자국산 소에 대한 대대적인 검증작업을 실시했고 그 와중에 동물사료로 키워진 소들에서 광우병 증세를 보이는 소들과 감염 가능성이 있는 송아지들 도축했다.

프랑스는 1998년 식품위생안정국(AFSSA)을 만들고 국제 수역사무국(OIE) 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광우병 평가를 하고 있다.

영국에서 최초로 광우병이 발생한 것이 80년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선동언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시계를 대한민국의 80년대로 되돌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파리=이지용 통신원/ KBNe  France 책임프로듀서, kbnefr@gmail.com/ www.kb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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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4 16:06

[글로벌] 英 지상파 뭉쳐 ‘캥거루 프로젝트’ 시행

KBS, MBC, SBS가 조인트 벤처를 차린다? 아니다. 사실은 영국의 이야기다. 영국 대표 지상파 방송사인 BBC (엄밀히 말하면 BBC Worldwide), ITV, 채널4가 ‘또’ 조인트 벤처를 차렸다. 이들이 과거 디지털 지상파 방송 서비스인 프리뷰(Freeview), 디지털 위성 방송 서비스인 프리셋(Freesat)에 이어 다시 힘을 뭉쳤다.

바로 ‘프로젝트 캥거루(Project Kangaroo)’다. 시청자들이 한 곳에서 디지털 방송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통합 콘텐츠 시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형태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미국 애플 iTune의 방송콘텐츠 전문 버전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점이라면 시장의 원리보다는 방송의 공영성을 우선시하는 영국식 퓨전 서비스라는 점이다.

   
▲ 디지털 지상파 방송 서비스인 프리뷰(Freeview) 홈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최근 BBC의 애슐리 하이필드(Ashley Highfield)가 이 조인트 벤처의 CEO를 맡을 예정이라는 점이다. 하이필드는 지난 8년간 BBC의 뉴미디어 분야를 이끌면서 BBC 웹사이트, 인터랙티브 서비스, 모바일 서비스, BBC 디지털 아카이브 등 BBC가 디지털 환경에 단단한 기반을 다지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34세의 나이로 뉴미디어를 총책임지는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BBC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능력 있는 신임 CEO지만, 캥거루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방송사로부터는 프로젝트를 BBC에 유리하게 꾸려가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각 방송사 사장들은 한입으로 가장 적임자가 CEO를 맡았다며 오히려 반기고 있다.

영국의 지상파 방송사인 BBC, ITV, 채널4, 파이브는 지배·수익구조는 다르지만 모두 공영방송의 책무를 가지고 있다. 물론 디지털 환경에서 공영방송의 책무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지고 있지만, 아직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임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이 뭉쳐 사업을 진행할 때면 각자 속내는 무엇이든 간에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가 있다. 바로 ‘시청자가 최고 품질의 콘텐츠를 추가 비용 없이 향유할 권리’다. ‘공익’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때문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미국과 같이 시장에 입각한 결정은 아닌 것이 틀림없다.

사실 이들 지상파 방송사들이 힘을 뭉치는 경우가 잦아진 것은 디지털 환경이 본격적으로 전통 방송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 즈음부터다. 이미 이들은 시장에서 실패를 한번 경험했다. 1998년 상업방송사들이 주도한 유로 디지털 방송 서비스가 큰 적자만 남기고 가입자 부족으로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시청자가 세분화되고, 시장의 파이가 급속도로 조각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대형 방송사들은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프리뷰가 디지털 방송 서비스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생존을 위한 협력관계에 기반해 있다. 또한 프리뷰 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대형 방송사들은 추가 채널을 확보하여 디지털 환경 속에서 브랜드 입지를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프리뷰는 신규 진입 채널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소규모 채널들은 공영성과 전통에 기반한 대형 방송사들의 이미지와 더욱 대비가 되는 틈새시장으로 뛰어들어 시청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영국 방송사들의 채널 브랜딩이 뛰어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현상이다.

   

유료 디지털 위성방송인 BSkyB의 공익적 대안인 프리셋(Freesat)을 ‘HD시대의 프리뷰’라는 슬로건 하에 준비하고, 주문형 비디오의 통합 시장으로 캥거루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영국의 그들을 보면서 언제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을 위해 힘을 뭉친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된다. 



영국 = 성민제 통신원 /프리랜서 프류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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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7 17:28

프리랜서 언론인 차별없는 영국

공식기자증 발급 받으면 취재지원·법률자문·보험까지 제공

“방송은 자유를 먹고 산다. 그래서 방송판은 생각도, 행동도 모두 자유로운 사람들의 신나는 놀이터다”라고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겠지? 그 놀이터에 자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자유만큼의 긴장도 늘 존재하지 않던가? 동전의 양면처럼. 등을 맞대고서 말이다.

   
▲ 영국의 취재현장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고, 사회변화에도 긍정적으로 이바지해야 한다는 직업적 부담감. 그리고 그런 직업적 소명의식과는 별도로 도처에 널려 있는 수많은 제약들…. (테러와의 전쟁 이후에 영국도 취재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영국의 방송쟁이들은 어떻게 해결하면서 살아갈까? 더구나 둥지 없는 프리랜서라고 하면?

우리나라도 요즘 그렇지만 영국엔 프리랜서들이 정말 많다. 프로그램에 따라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뭉쳤다 흩어졌다 한다. 엄밀히 말하면 방송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프리랜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스고 다큐멘터리고 할 것 없이 이동이 많다. 그럼 그들은 어떻게 각종 사건 사고 현장을 누비며 취재를 할 수 있는 언론인으로서의 지위를 부여 받을까?

영국엔 NUJ(National Union of Journalist)와 FSA(Foreign Press Association)라는 단체가 있다. 이 두 단체에서는 신청자가 언론인으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명서(최근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뉴스, 기사와 함께 방송국 혹은 기타 언론매체의 책임자로부터 자신의 매체를 위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신분 확인서 그리고 몇 가지 제반 서류)를 제출하면 영국 경찰청으로 부터 공식 기자증(Press Card)을 발급 받아 주고, 각 단체의 회원으로써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 영국 프리랜서 언론인에게 발급되는 기자증

기자증을 받으면 공공장소나 공식적인 행사에 기자로서 취재를 보장 받을 수 있고, 두 단체의 회원으로서 취재중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에 대한 자문을 받을 수 있다. 경찰 등으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경우 변호사를 선임해 주고, 회원이 활동하는 매체로부터 불편 부당한 대우나 처벌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정당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물론 회원 간 친목도모나 정보교류는 기본이다. 기자, 프로듀서, 방송카메라맨, 사진기자 등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자증을 발급받고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어느 매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든 영국에서는 영국 경찰청이 인증한 똑같은 모양의 기자증을 가지고 있다.

FSA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언론인들을 위한 단체다. 외국 언론인이라고 해서 차별은 없다. 한편 언론인 노동조합 BECTU(Broadcasting Entertainment Cinematograph and Theatre Union)는 방송, 연예, 영화, 극장(연극, 뮤지컬 등)의 연합체로 역시 개별적으로 조합원자격을 얻을 수 있다. BECTU에 가입을 하면 월 4만원 정도의 조합원비로 여러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공책임보험(Public Liability Insurance)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거다. 영국에서는 박물관이나 공원등 공공장소를 섭외할 경우 촬영중 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요구할때가 많다. 이럴 때 언론인 노동조합 BECTU는 큰 힘이다. 조합원에게 5백만 파운드 (약 천억원)짜리 보험을 제공해 주니 말이다.

그밖에도 임금협상, 세금이나 연금문제, 저작권 상담, 사적 혹은 공적 문제에 대한 무료 법률 상담 등을 해준다. 특이한 점은 노동조합이 여러 산업체들과 연계해 조합원들이 가정이나 사무실의 전기 및 가스비를 아낄 수 있도록 해주고, 형편이 어려운 조합원을 위해 저이자 대출을 해주는가 하면 휴가 시 이용할 렌트카나 호텔, 극장값을 할인해 준다는 거다. 그리고 직업을 잃었을 경우 새직장을 찾는데도 도움을 준다.

BECTU는 공영방송 BBC안에 지부를 두고 BBC의 노동조합원까지 아우르고 있다. BECTU와 NUJ, UNITE(일종의 한국노총)는 방송인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조직체로 BBC와 같은 큰 조직과의 협상이나 투쟁에 연합체를 이루어 나선다.

비록 영국의 노동조합이 BBC의 대량 해고 문제 등에 있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힘이 없어서라기보다 명분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무모한 싸움은 하지 않는다, 투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라는 전략적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 런던=장정훈 통신원/ KBNe-UK 대표, www.kbne.net

프리랜서에게도 똑같이 언론인 혹은 방송인으로서의 지위가 주어지고 평생둥지가 없어도 노동조합의 회원으로 차별 없는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영국의 시스템을 우리도 한번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누가 누굴 배척하기 보다는 개인도, 단체도 함께하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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