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해당되는 글 9건

  1. 10:30:18 이병훈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될 뻔 했던 ‘동이’ (2)
  2. 2009/11/23 공정하게 편파적인 시상식
  3. 2009/11/09 옛날 음악을 듣는 동안
  4. 2009/11/05 한국의 걸그룹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5. 2009/06/25 좋은 음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들
  6. 2009/05/27 꼰대들 (1)
  7. 2009/05/18 반성의 음악 (1)
  8. 2009/01/13 소녀시대 '신곡'에 대한 폄훼, 정당한가 (13)
  9. 2008/11/19 이재규 PD에게 듣는 ‘베토벤 바이러스’ (3)
2010/03/19 10:30

이병훈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될 뻔 했던 ‘동이’

 
 
▲ 이병훈 PD ⓒMBC

MBC 창사 49년 특집드라마 〈동이〉의 첫 방송을 앞둔 이병훈 PD가 〈동이〉가 마지막 작품이 될 뻔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MBC 용인 세트장에서 열린 〈동이〉(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제작발표회에서 이 PD는 “〈대장금〉 때는 어깨가 부러져 6개월 고생했고, 〈서동요〉 때는 이마를 다쳐서 16바늘을, 〈이산〉 때는 크레인에 부딪쳐 12바늘을 꿰맸다”면서 “아내가 〈이산〉으로 끝을 내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PD는 “그래서 〈이산〉 이후에도 작품 하나가 계약이 남았다고 했더니 거기까지는 하라고 했고, 아내가 그냥 이야기하면 약속을 안 지킬테니 그 말을 꼭 기자들에게 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한 것이 공표가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PD는 “〈이산〉이 잘되고 나자, 〈동이〉 끝나고 몸이 괜찮으면 다시 생각해보자 해서, 지금 몸조심을 하고 있다”고 웃었다.

◇ ‘허준’의 의술, ‘상도’의 상술…‘동이’에선 음악!


드라마 〈허준〉에서 의술을, 〈상도〉에서는 상술을, 〈대장금〉에서 음식 그리고〈이산〉에선 미술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던 이병훈 감독은 〈동이〉에서는 장악원을 무대로 아악(雅樂), 향악(鄕樂), 당악(唐樂)으로 구분되는 조선의 화려하고 우아한 음악세계를 보여줄 전망이다.

차천수 역을 맡은 배수빈은 “800~900명의 대규모 연주장면이나 최소 200명이 넘는 군중씬이 드라마 초반에 대거 등장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PD 역시 “〈선덕여왕〉을 봐도 그렇고, 드라마 초반에 많이 배치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며 “6~7회까지 제작비를 집중하고, 이후에는 아기자기하게 규모를 줄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주인공 ‘동이’ 역의 한효주는 “숙빈최씨가 실존한 인물이라 처음엔 걱정이 많이 앞섰다”고 말했다. 10대의 천민에서 50대 임금의 어머니까지 연기하는데 대해 “과연 인물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욕심도 생긴다”며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MBC 용인 세트장에서 열린 〈동이〉(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MBC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임금 역할을 맡은 숙종 역의 지진희는 “이번 숙종은 기존 사극에서 시청자들이 가지고 있는 왕의 고정관념과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숙종은 절대군주의 모습과 여인들에게 다정다감한 캐릭터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다.

특히 동이와 맞서게 되는 희빈장씨 역의 이소연은 “그동안 장희빈이 악을 많이 쓰는 샤우팅형이었다면 이번의 장희빈은 지능형 악역이 될 것이다. 소리를 먼저 지르기보다는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제3의 인물을 통해서 악행을 일삼게 될 것”이라고 언급, 다른 ‘장희빈’의 모습을 기대하게 했다.

◇ 김재철 사장 “일본에서도 제작발표회 열고 싶다”

한편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김재철 사장을 비롯해 최근 김 사장으로부터 보도본부장에서 ‘해임’ 된 이후 자리를 옮긴 황희만 특임본부장 등 MBC 임원진들이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김 사장은 4개 지역 MBC가 공동 제작하는  드라마 〈김수로〉 세트장을 방문한 데 이어 2번째로 〈동이〉 오픈 세트장을 방문했다.

김 사장은 “나주에 〈주몽〉 세트장도 가보고, 완도에 〈해신〉 세트장, 김해에 〈김수로〉 세트장 등을 다녀봤다”면서 “여기 세트장도 산에 둘러싸여 부감이 참 아름답게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출신이지만 서울문화재단 이사 3년을 해 PD에 접근하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평한 뒤 “기회를 주신다면 제작발표회를 동경이나 후쿠오카에서도 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병훈 PD는 “사장이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온 적이 없었다”며 “MBC가 요즘 어렵다고 하는데 〈동이〉가 잘 돼서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선조 제21대 영조임금의 생모이자 19대 숙종임금의 후궁이었던 천민출신 여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과 아들 여조임금의 극적인 성장과정을 극화한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동이〉는 오는 22일 오후 9시 55분에 첫 방송을 한다.

용인 = 원성윤 기자 socool@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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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15:23

공정하게 편파적인 시상식


[최민우의 음악한담]

 
▲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 편집장
요즘은 잘 안 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전화를 받자마자 “축하합니다 고객님!” 하는 외침과 함께 “고객님께서는 저희회사 우수고객으로 선정되어 회사 창립 5주년을 맞아 벌이는 설악산 콘도 3박 4일 무료 쿠폰 이벤트에 당첨되셨는데 이 이벤트에 참여하시려면 이것저것(대개는 개인정보나 신용카드 번호)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약정에 동의하시면……” 운운하는 전화가 꽤 있었다.

물론 알고 있다. 대개 “축하합니다 고객……”에서 전화를 끊는다는 건. 이 자리에서 텔레마케터의 엄청난 감정노동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텔레마케터의 권유를 끝까지 들을 만큼 착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얼마 전 한 인터넷 기사에서 가수 백지영이 “10년 동안 가수라는 직업을 해오면서 연말에 받는 상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걸 읽고, 이제는 가수들 본인들에게도 상이라는 것이 그런 이벤트 당첨(을 빙자한 광고)전화 정도의 가치를 갖게 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해 본 소리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상이라는 것이, 특히 대중음악 분야의 많은 상이 일종의 공로상으로 둔갑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나 혼자뿐인가. 그게 아니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의심스러운 것도 혼자뿐인가. 상을 주관하는 주최측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혹여 상이란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점을 느끼는 이들이 종종 이르는 결론은 상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백지영의 발언도 한 온라인 음원 업체가 ‘공정하게’ 열겠다는 시상식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좀 다르다.

 
 
▲ 2009 Mnet Asian Music Awards ⓒMnet
상이란 애초에 공정한 게 아니다. 상은 ‘편파적’이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공정한 걸 원하면 수능시험장에 앉아 있으면 된다. 공정성을 보편성과 혼동하면 안 된다. 공정성은 절차의 문제고, 보편성은 상이 포괄하는 대상과 관련된 문제다. 상이 가져야 하는 건 보편성이 아니라 개성 혹은 ‘취향’이다. 이를테면 그래미상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상의 취향 자체가 다르다. 전자는 좀 ‘있어 보이는’ 음악을, 후자는 ‘많이 사랑받는’ 음악을 택한다.

그 취향에 따라 수상자 선정 방식도 달라진다. 전자는 ‘있어 보이는’ 심사위원, 후자는 팬들의 투표. 따라서 자기 취향이 분명한 시상식은 자연스레 공정해진다. 왜? 자기들 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그에 어울리는 절차에 맞춰 뽑으면 그게 공정한 거니까. 공정성은 그 절차에 빈틈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애초에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건 상을 줄 생각도 없는 후보자를, 그래서 그걸 미리 알고 참여하지 않겠다는 후보자를 ‘공정성을 위해’ 억지로 목록에 올려놓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언급이 최근 있었던 어떤 특정한 시상식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그리고 실은 그렇다. 안 그러면 왜 갑자기 여기서 이러겠나).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게 단지 그 특정 시상식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공정한 척 하는 편파적인 시상식이 아니라 공정하게 편파적인 시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것이 결국에는 그 상을 받는 아티스트의 미래에도 근본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상이란 게 마일리지 적립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 불평이 누군가에게는 텔레마케터의 홍보멘트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요즘의 시상식이란……”하는 순간 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까. 내가 가끔 착하게 그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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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4:16

옛날 음악을 듣는 동안


[최민우의 음악한담]

 
▲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 편집장
음악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입장에서 ‘옛날 음악이 더 낫다’는 말을 하는 건 자살골을 차는 것과 진배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월드컵 4강 진출을 놓고 벌이는 일본과의 경기 후반전 40분쯤에 넣는 자살골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설사 실제로 요즘 음악보다 옛날 음악이 더 낫다 하더라도 그렇다.

이를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과거의 ‘명반’과 현재의 ‘똥반’ 중 하나에 대해 써야 한다면 의당 현재의 ‘똥반’을 골라야 한다고 말이다. 명반 내지는 걸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편하고 게으른 일이다. 좋은 것에 대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써먹을 자료는 넘쳐나고 찬양은 화려하다. 취향의 차이에 대한 논쟁 따위는 초저녁에 묻어 버린 검증된 작품을 가지고 요즘의 ‘상업적인’ 혹은 ‘덜 된’ 음악과 비교하면서 불평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천재’니 ‘혁명’이니 하는 수식어를 써가며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에서 헤엄치는 것만큼 달콤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까닭은 오늘날만큼 대중음악의 창작과 수용, 감상에서 옛 음악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서다. 20세기의 대중음악과 21세기의 대중음악은 연속적인 흐름을 타면서도 뚜렷이 구분되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 지점들 중에는 대중음악의 창작 방식이 ‘영향’에서 ‘참조’로 옮아갔다는 사실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비틀스는 척 베리의 영향을 받아서(즉 척 베리를 따라하면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카니예 웨스트는 레이 찰스를 참조해서(즉 레이 찰스 음악의 샘플을 따 와서) 음악을 만든다. 힙합만 그런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최근 ‘거장’ 대접을 받는 영미권 인디 록 밴드에 대한 비평에는 ‘비틀스를 참조하면서 비치 보이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 같은 말이 빠지지 않는다.

 
 
▲ 카니예 웨스트 ⓒhttp://www.kanyeuniversecity.com/
이렇게 음악의 창작방식이 영향에서 참조로 옮겨가면서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를테면 후자는 전자에 비해 ‘권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드러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드러나게 가져오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독창성’이 무엇이냐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필요해진다. 영향관계에서는 아티스트의 독창성이 비교적 뚜렷이 드러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참조관계에서 아티스트의 독창성은 종종 지나칠 정도로 의심을 받는다(그런 대접을 받아도 싼 경우가 물론 많긴 하다). 샘플링이냐 표절이냐 오마주냐 레퍼런스냐 하는 복잡한 논쟁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이런 논쟁에서 편하게 발을 빼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옛날 음악은 안 그랬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패러다임의 변화를 무시하고 옛 걸작으로 무책임하게 도피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평가를 유보한 채 사실 관계, 즉 관련 정보의 제공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그 비평을 읽는 이들에게 착시 효과(‘정보’를 ‘평가’로 착각하는)에 따른 지적 포만감(우리도 이제 이만큼 알게 됐다!)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옛 음악에 반성 없이 기댄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만큼이나 한계도 명확하다. 대중음악에 대해 비평적 관점을 유지하고자 할 때 경계해야 할 두 가지가 아닐까 싶고, 더불어 표절과 관련하여 올해 벌어진 몇몇 사건들은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걸 입증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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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5 11:47

한국의 걸그룹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연재기획(6)] 여성 대중음악 뮤지션을 말한다

<여성 대중음악뮤지션을 말한다> 연재기획 순서

1. 여성가수의 음악을 둘러싼 편견들
2.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1):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3.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2):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4. 중성 혹은 남성형 캐릭터들: 피터팬과 톰보이 사이에서
5. 종교와 신화 사이에서 : 주술자, 사제, 여신
6. 다양한 유형을 한 자리에: 여성 그룹 (1)
7. 새로운 세대, 새로운 여성 그룹 (2)
8. 전기기타를 든 여자들
9.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학
10. 홍대 앞 여성 뮤지션
11.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



걸그룹의 백가쟁명

올해는 ‘소녀들의 시대’로 기록되지 않을까. 상징적이게도 ‘소녀’ 또는 ‘걸’의 이름을 각각 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수없이 명멸해왔던 걸그룹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카라 등이 신보를 내고, 2NE1, 포미닛, 애프터스쿨, 티아라, f(x) 등의 신인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이러한 계보도 복잡다단하게 분화하는 중이다.

게다가 ‘걸그룹 스페셜’, 추석특집 ‘여성 아이돌 그룹 서바이벌’이나, 걸그룹의 주요 멤버(이른바 ‘G7’)가 참여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 브라운관까지 장악했다.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방송까지 결탁하는, 이들의 공감지수를 높이기 위한 미디어와의 긴밀한 공조 현상도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바야흐로 ‘걸그룹 춘추전국시대’이다.

 
 
▲ 소녀시대, 2NE1, 애프터스쿨, 포미닛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실 ‘걸그룹’에 대해 원본을 캐고 가자면 한국의 현재 양상과 멀고도 가깝다. 걸그룹이란 (연주까지 하는 밴드의 포맷과 달리) 노래와 댄스를 위주로 하는, 소녀들만으로 구성된 그룹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음악 시스템 및 구현되는 장르/스타일은 변화를 겪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걸그룹 현상은 영미권에서 주로 말하는 좁은 의미의 ‘걸그룹’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선, 영미권에서도 역시 오래 전부터(가령 1930년대 보드빌이나 뮤지컬 시대에도) 여성만으로 구성된 노래하는 그룹들이 존재했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상징적인 걸그룹의 시대는 1960년대 미국의 흑인음악의 메카 ‘모타운 사운드’에 의한 것이다. 소울, 알앤비 등과 팝 사운드, 캐치한 멜로디에, (특히 소년에 대한) 순수한 그리움과 과장된 감정, 유머감각 등을 탑재한 많은 걸그룹 음악들은 1960년대 로큰롤 폭발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비틀즈를 위시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후 큰 영향력을 끼친 걸 그룹은 뭐니 뭐니 해도 1990년대 후반,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다.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며 ‘걸 파워’를 증명했고, 이들과 소녀 문화는 학계의 연구대상으로 등재되었다. 더불어 미국의 TLC,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도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푸시캣 돌스나, 슈거베이브스, 아토믹 키튼 등이 몇몇 걸그룹이 활동했지만, 보다 주목적인 현상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보다 흥미로운 현상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에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시스터즈, 혹은 자매들의 시대

우리에게도 소녀들(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 형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걸그룹들이 탄생했다고 하지만, 그전부터 ‘시스터즈’ 또는 ‘자매들’이라는 이름으로 산개한 이력이 있다. ‘시스터즈’란 ‘브라더즈’와 더불어 중창단 스타일의 보컬 하모니를 강조한 형태를 말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모타운의 걸그룹 혹은 그 이전의 가스펠이나 소울의 포맷에서 (일본을 경유하여) 영향도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양 팝음악과 일치하지는 않는다(혹은 ‘가요화되어’ 종착되었다).

1960년대 전후로 (미국진출의 원조 쯤되는) 김 시스터즈를 비롯해 이 시스터즈, 김치 캣츠, 정 시스터즈, 아리랑 시스터즈, 펄 시스터즈, 준 시스터즈, 리리 시스터즈, 체리 시스터즈, 바니 걸스 등 수많은 시스터즈들이 태어났다. 자매(혹은 친척)나 쌍둥이로 구성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연주와 노래를 모두 하는 김시스터즈 같은 경우는 흔치 않았고 보컬 하모니를 강조하는 대개 중창단 스타일이었다. 펄 시스터즈가 소울 사이키델릭 ‘신중현 사운드’의 촉매제 역할을 하거나, 준 시스터즈가 ‘그룹사운드’ He5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등 다단하게 분화했지만, 대개는 작곡이나 연주까지 하는 밴드 형태가 아니라 노래만 하는 형태였다.

1980년대에는 국보자매, 서울시스터즈, 희자매 등 몇몇 시스터즈들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아이돌 소녀그룹의 전범으로 삼을 수 있는 형태는 1980년대까지도 별로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세 또래 정도를 들 수 있을까. 이는 1980년대 인기를 얻었던 일본의 소녀대를 벤치마킹한 그룹이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사실 1990년대, 아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이자 공식적인 시험 무대였다).

본격적인 소녀그룹의 시대

‘아이돌 시스템’이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 SES, 핑클, 베이비복스, 디바 등을 필두로 하여, 2000년대 초가 되면 샤크라, 쥬얼리, 슈가 등 소녀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 가세한다. 물론 SES와 핑클의 쌍두마차가 단연 압도적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DSP미디어의 ‘기획사’ 대결로도 비쳐졌는데, 이는 두 소녀그룹의 라이벌 대결이라는 명목하에 상호적으로 인기를 추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 마디로 틴 아이돌의 음악은 ‘기획의 산물’이다. 아이돌 음악(혹은 주류 음악 대부분)에는 여러 음악내외의 위험요소들이 동반된다. 때문에 이전과 달리 음반사 혹은 기획사의 상품화 전략과 프로듀서의 기획 역량이 부각되는 시대에 접어든다. 199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 SES (왼쪽부터 바다, 유진, 슈)
가령 그룹별 좌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SES와 핑클이 모두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로 알앤비 댄스 및 발라드에 기반을 둔 팝음악으로 출발했지만, SES가 순수하고 신비로운 요정 콘셉트로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데 반해, 핑클은 ‘내수용’ 전략으로 발랄하고 친근한 ‘옆집 소녀’ 이미지에 초점을 주었다. 이에 반해 베이비복스는 처음에는 다소 빠르고 강한 랩에 파워풀한 댄스를 선보였고 〈남자에게(민주주의)〉, 〈미혼모〉, 〈머리하는 날〉 등 여성의 주체적인 삶이나 자의식이 담긴 노래들을 포함했지만, 나중에 섹시 콘셉트로 전향하고 멤버 교체를 여러 번 단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인기를 끌었다.

프로모션 방법과 타깃 등도 상호간에 중첩되지 않도록 기획되었다. 가령 SES가 일본 활동에 주력할 때라면, 핑클은 광고나 연예 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자주 비춰 대중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다. 이들의 음반 발매 시기도 서로 겹치지 않게 조정되었다.

더불어 한 그룹 안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찾아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려되었다. 말하자면 그저 ‘아름다운’ 소녀가 아니라, ‘예쁜’, ‘귀여운’, ‘발랄한’, ‘보이시한’ 등의 다채로운 속성을 멤버 각각에게 부여할 수 있는 구성을 지녔다. 이전의 시스터즈와 달리 현재로 올수록 멤버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런 분화는 더욱 심화된다. 가창력이 뛰어난(그러나 외모에서는 다소 약한) 리드 보컬과, 외모에서 출중한(하지만 노래 실력은 약한) 멤버들로 위험 부담과 인기 요소를 분산시켰다.

 
 
▲ 핑클 (왼쪽부터 이진, 성유리, 옥주현, 이효리)
하지만 이들의 ‘막후’에 대해서는 오랜 난제들이 있다. 가장 먼저 ‘남성’이라는 배후를 떠올릴 수 있다. 음악을 만들고 기획하는 창작자(작·편곡가, 연주자, 프로듀서 등)들이 바로 그들이다. 더불어 기획사(매니저)와는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도 작동한다. 게다가 소녀그룹은 애초부터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소년그룹의 ‘자매편’ 정도의 포지셔닝이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가령 SES의 인기 판도에 HOT나 신화의 팬덤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소녀그룹들은 ‘남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남자를 위해’ 노래하고 춤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아이돌 그룹에 찍힌 ‘기획 상품’이라는 낙인까지 부여되곤 한다. 사실 이는 너무도 진부한 공식으로 우리만의 사례가 아니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관계로만 파악해서는 걸그룹 현상 이면의 다른 층위에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의미들을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SES와 핑클의 시대 이후, 많은 여성그룹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완전히 정상의 위치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쥬얼리 등이 선전했지만, 언제나 최고의 영예는 동방신기, 빅뱅 같은 소년 아이돌 그룹이 차지했다. 그렇지만 SES, 핑클이 데뷔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이르자, 전과는 또 다른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다.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soundscap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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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17:37

좋은 음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들


[차우진의 내키는대로 듣기]

 
▲ 차우진 대중음악웹진 'weiv' 에디터
가끔, 아니 자주 지인들로부터 좋은 음악을 소개해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최근 즐겨 듣는 음악을 추천해준다. 물론 그게 잘 될 때는 거의 없다. 좋은 음악이라고 할 때의 그 ‘좋은’은 이른바 취향이고, 취향이란 지독하게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항상 그의 좋아하는 음악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추천받고 싶어 한다. 좋은 음악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음악은 도처에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도 그렇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찾아야할지 모른다는 것뿐이다.

물론 수백만 네티즌이 애용하는 각 분야의 지식인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음악 사이트를 애용할 수도 있다. 마니아들이 득시글거리는 커뮤니티를 활용할 수도 있고, 신뢰할만한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 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좋은 음악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할 지 모른다. 맞다, 세상에 음악은 ‘알아서 찾아 듣기엔’ 너무 많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온 세계의 음악을 몇 번의 클릭으로 찾아 들을 수 있게 된 지금은 더 그렇다. 어쩐 일인지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마이스페이스닷컴이니 유튜브니, 혹은 온갖 p2p 사이트들이 포진해있어도 그걸 일일이 사용해서 음악을 찾아듣자니, 일단 귀찮다. 당신이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다. 21세기의 인터넷은 정보의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그 정보에 접근하는 수 만 가지 방법이란 쪽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찮은 건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는 몇 개의 유용한 사이트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당연히 좋은 음악을 ‘알아서 추천’해주는 사이트들이다.

 
 
▲ 뮤직커버리(http://musicovery.com/) 화면 갈무리
먼저 뮤직커버리(http://musicovery.com/)란 사이트다. 이 사이트의 첫 화면은 단순하다. 흰 바탕에 리모컨 하나가 덜렁 나온다. 거기엔 시대별 그래프도 있고, 장르명이 적힌 버튼도 있다. 그걸 누르면 해당 시대, 장르의 음악이 무작위로 나온다. 일종의 ‘웹 라디오’다. 재미있는 건 이 리모컨으로 장르 뿐 아니라 분위기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제틱’, ‘긍정적인’, ‘어두운’, ‘조용한’ 등의 분위기를 선택하면 랜덤으로 해당 분위기의 음악이 흐른다. 로그인만 하면 거의 대부분의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다음은 아큐재즈닷컴(http://www.accujazz.com/)이다. 재즈 전문 웹진이자 스트리밍 사이트다. 여기서는 당대의 재즈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전문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도 있다. 플레이어를 실행시키면 짧은 음성 광고가 나온 뒤에 음악 방송이 시작된다. 재즈에 대한 모든 것을, 그것도 현재 진행형의 음악을 동시대적으로 들을 수 있다. 스타일별, 음악가별, 연주자별, 그리고 앨범별로 나눠진 섹션을 통해서 정보들을 찾을 수 있고, 그게 귀찮다면 그냥 스트리밍 채널을 열고 나오는 음악을 제 멋대로 흐르게 내버려둬도 좋다.

이런 사이트들이 의미심장한 건 일단 무료란 점 때문이다. 저작권은 레이블들과 광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물론 이런 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예상과는 달리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길거리에서 노래만 따라 불러도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한국에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어쨌든 이들은 모두 ‘좋은’ 음악으로 가는 길잡이로서는 충분하다.

 
 
▲ 아큐재즈닷컴(http://www.accujazz.com/)


차우진 대중음악웹진 'weiv' 에디터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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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15:57

꼰대들


[차우진의 내키는대로 듣기]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오랫동안 궁금한 게 있다. 왜 한국 남자들은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경력만 쌓이면 ‘꼰대’가 되는 걸까. 꼰대의 정의에 대해서 일단 내 생각은 이렇다: 1)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한다(<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세대라서 그런가). 2) 여차하면 나이가 등장한다(혹은 어느 새 반말이…). 3) ‘다르다’는 말보다 ‘틀렸다’는 말을 애용한다.

최근 전인권의 인터뷰가 잠깐 화제가 되었다. 무척 수척해진 사진에 깜짝 놀라 안쓰러웠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동정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아야 마땅할 사람이 온전히 대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픈 분노였다. 그런데 전인권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또 다른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정신세계가 없는 음악은 서커스”라는 제목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이 발언의 저변에는 ‘진짜와 가짜’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발언들은 윤도현이나 신해철, 혹은 최근에 새 앨범을 발표한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의 홍보 문구에도 등장한다. 윤도현은 라이브를 절대적인 기준처럼 얘기했고, 신해철은 댄스 가수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백두산의 경우엔 새 앨범의 홍보에 ‘형님들의 귀환’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진짜 가수가 없는 음악계를 한탄하고, 진정한 음악이 나오지 않는 시대를 개탄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들은 노래운동 진영이나 대학 운동권에서도 들을 수 있다. 다른 점이라면 ‘삶과 노래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시대’를 격하게 논하는 이들은 신해철도, 윤도현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래서 누가 진짜 가수냐는 게 아니다. ‘진짜와 가짜’라는 게 어디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건 함정이다. 그걸 구분하기위한 절대적인 기준, 그러니까 모든 상황, 모든 조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기준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영리하거나 멍청한’이란 기준이 더 합당하다. 적어도 전략에 대해서 말할 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진짜 vs 가짜’란 구도는 수용자들도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이를테면 ‘홍대 앞에는 진짜 음악이 있고 방송국에는 가짜 음악이 있다’거나 ‘누구누구는 진짜 가수고 누구누구는 가짜 가수다’라는 구분이 여전히 설득력을 가진다.

 
 
▲ YB밴드 ⓒ다음기획
음악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수시로 벌어지고 서로를 ‘까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상황이 달라지긴 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을 제시하는 게 촌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한 수용자들은 아이돌 가수와 록 밴드의 음악을 동시에 소비하며 잘 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과 스스로를 구분하면서 고고하게 꼰대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엄중한 목소리로 가르치려고 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너는 틀렸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이야말로 우리 같은 하급자들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절대자로 거듭난 존재들이다.

나는 꼰대야말로 한국 사회를 좀먹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꼰대는 일종의 태도다. 그것이야말로 권위주의에 기대서 세상을 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임의적인 서열에서 우위를 차지한 자가 당연히 권력을 가지는 걸 합리화하는 태도다. 그러니까 반-민주적이다. 좋은 세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우리는 대부분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꼰대 노릇을 즐겨 하고 있다. ‘진짜 음악을 들려주마’로부터 ‘이 형이…’로 시작되는 문장을 구사하거나 혹은 모든 분쟁을 앞장서 ‘해결’하려거나, 타인의 삶에 기어코 끼어들어 참견하면서 우리는 꼰대로 살고 있다. 그걸 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성찰’부터 해야 한다. 내가 누군지 결정하는 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요 며칠 정신없었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토요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접한 비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 문학계에서 유래 없이 ‘노동의 문제’에 집중해왔다고 평가받으며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까지 거론되던 황석영 작가가 뜬금없이 ‘한국 제국주의론’을 들고 나오기 무섭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감사 결과가 발표되며 황지우 총장이 사퇴를 하더니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비보까지 날아왔다.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믿고 있던 어떤 기준이 무너지는 기분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끝까지 부수고 싶어 했던 권위주의에 대해서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없애는 일이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기껏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별 거 아닌 일에도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무의식중에 어떤 태도로 음악을 대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꼰대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저도 모르게 민주주의의 가로막으로 살지 않으려면, 바보 같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바보처럼 그가 믿었던 세계를 기어코 이루겠다면, 아이들에게 마침내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물고 있다면.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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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15:40

반성의 음악


[차우진의 내키는대로 듣기]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요즘 나는 조용한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 힘들고 일상이 번잡해서 그렇다. 이번 달로 회사를 그만둔 지 10개월이다. 혹자는 〈PD저널〉에 연재도 하고, 기타 등등의 매체에 글도 쓰는데 뭐가 그리 큰 걱정이냐고 묻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글 품 파는 일 해봤어요? 안 해봤으면 말을 마세요’다. 그나마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음악)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게 정설이다.

누가 취미생활을 묻는다면 ‘이력서 쓰기’라고 답할 정도로 많은 이력서를 썼고(어제도 하나 썼다) 매번 연락이 오지 않는다. 경제 불황과 매체, 글품 팔기에 대해선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자(사실 할 얘기 많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조용한 음악을 즐겨 듣는다. 내 기준에 ‘조용한 음악’이란 보통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음악이다. 그러니까 클래식도 포함되는데 좀 더 세분화하자면 ‘클래시컬한 록 음악’이다. 잉베이 맘스틴의 바로크 메탈을 떠올리진 말자. 지금은 21세기니까.

내가 즐겨듣는 건 포스트 록, 혹은 익스페리멘틀 록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음악이다. 몇 년 전 파스텔 뮤직에서 ‘에곤 쉴레를 위한 음악’이라는 타이틀로 라이센스한 레이첼스가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밴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밴드에는 전기기타나 드럼이 없다. 대신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등 실내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이 록 밴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재현이 아니라 레코딩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렇다.

클래시컬 음악은 거장들의 악보를 재현하는데 의미가 있다. 록 음악은 레코딩이 중요하다. 라이브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기본적으로 록 음악의 탄생은 레코딩 스튜디오 앨범의 탄생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걸 상기하자. 그러므로 실내악 구성의 밴드라도 그들의 음악이 사운드 레코딩과 믹싱에 근거한다면 록 밴드가 될 수 있다. 록 음악의 정의를 확장시키면 쉬운 문제다. 포스트 록이란 바로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장르다. 록 이후의 록 음악,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멜로디가 아니라 악기 자체, 실제 악기 소리가 아니라 전자적으로 변형된 노이즈에 집중하는 사운도도 많다.

 
 
▲ 레이첼스(Rachel's)의 에곤쉴레를 위한 음악(Music for Egon Schiele)
하지만 내가 즐겨듣는 음악은 그런 류가 아니라 레이첼스처럼 클래시컬한 사운드의 록 음악이다. 그렇다고 전부가 클래시컬한 악기로 편성된 건 아니다. 전기 기타와 신서사이저가 활용되는 음악도 있고, 벤조나 우크렐레가 활용될 때도 있다. 악기와 관계없이 정서적으로 아름답게 들리는 사운드라는 게 키워드일 것이다. 스위스 밴드인 엡파토리아 리포트, 스웨덴의 포스트록 밴드 도레나, 그리고 핀란드 출신의 젠틀맨 루저스와 미국 텍사스에서 활동하는 발모레이 등이 요즘 즐겨듣는 밴드들이다. 궁금하다면 이 이름들을 기억해두자.

이런 밴드들의 음악은 기승전결이 비교적 뚜렷하다. 보통 5분 이상, 길게는 10분 이상의 곡들이 많은데 낮은 음의 아르페지오에서 시작해 천천히 상승하면서 몇 차례 머뭇거리는 듯 우물쭈물 애간장을 태우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뭐 그런 구성이다. 대부분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혹은 희박하기 때문에 사운드에 집중하기가 더 쉽다.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크게 높이면 우주 공간을 혼자 외롭게 떠도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번잡함이나 뭐 거시기한 것들도 금방 잊게 된다. 최근에 또 하나 깨달은 건, 이런 종류의 음악이 ‘정신을 맑게 하는 것’과 동시에 ‘반성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런 음악은 때론 영적인 감흥을 준다. 성가나 찬송가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음악이 어떤 영성을 전달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이건 분명히 영혼을 각성시키는 소리다. 그래서 기껏 제트오디오의 볼륨을 조절하는 주제에 나는 가당치않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열심히 살게 된다. 과연, 내가 이력서를 왜 썼던가. 과연, 내가 공존을 생각했던가. 과연,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했던 적이 있었나. 김영승의 〈반성〉도 떠오르고, 안도현의 〈연탄 한 장〉도 떠오른다. 그러니까 유익하다. 바야흐로 실용적인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실용적인 분들과 함께 듣고 싶어진다. 실용은 사실 반성 후에 가능하다. 반성은 돌아보는 것이고, 돌아보는 건 앞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 단계다. 앞으로 나가고자 할 누군가는 반드시 잠깐 멈춰 뒤돌아 봐야한다. 이 세계의 어느 누구도 자기반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므로 실용적인 분들, 이왕이면 청기와 집에 살고 계신 분들과 여의도에 기거하시는 분들과 이런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 분들이야말로 이 타이밍에 절대적으로 반성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군다고 바쁜 경찰들이나 이리저리 불러대지 말고 가만히 자기 영혼을 들여다보면 세상도 달리 보일 것이다. 영혼이란 게 아직 거기에 있다면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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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3:41

소녀시대 '신곡'에 대한 폄훼, 정당한가

모든 음악은 평등하다 
[e-야기]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최근에 소녀시대의 신곡이 발표되었다. ‘Gee’라는 곡은 등장하자마자 화제가 되었다. 물론 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아이돌 그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곡의 완성도나 수준이 기대 이상이었다. 나도 관심깊이 그 노래를 들었다. 곡이 시작되고 30초 만에 중독성 강한 코러스가 등장하는 구성도 그렇고, 빠르게 진행되다가 멈칫거리는 신서사이저 리듬도 매력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한국의 대중음악은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보이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동안 주류 댄스 음악은 외국의 최신 트렌드를 베끼는데 치중하거나 인디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음악은 곡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태도 때문에 높은 점수를 얻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계는 그야말로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장이 되었다고 본다. 그건 꽤 흥미로운 관점이고, 또 그런 관점에서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나 빅뱅의 음악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입장이다.

    


▲ 소녀시대 ⓒSM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아이돌 그룹을 한국 대중음악계를 좀먹는 악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일부분 맞는 견해다. 생산과 분배의 관점에서 아이돌 그룹과 그런 그룹을 기획해내는 기획사는 언제나 쟁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필연적으로 대중음악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보게 만든다. 그 기준은 진정성이다. 진정성이라는 건 음악이 음악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관점의 산물이다. 물론 진정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대중문화라는 건 복합적인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어떤 현상에는 산업적인 맥락과 예술적인 맥락이 동시에 존재한다. 거기서 창작자의 태도나 세계관, 가치관이 중심을 차지하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게 부재한다고 해서 그 창작물이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니다.

소녀시대의 음악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20세기 초에 영어문화권의 대중문화를 지배한 재즈를 폄훼한 시선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진정성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유용한 개념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최근의 한국 대중음악들이 정말로 흥미롭다. 소녀시대의 노래에 대해서 마음껏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이었다면 분명히 이 정도로 흥미롭진 않았을 것이다. 일본 대중음악이나 미국의 트렌드를 거론하면 그걸로 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항상 표절 시비에 시달렸고, 대부분은 음악적 가치보다는 생산자와 수용자의 관계, 팬덤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말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 원더걸스 ⓒJYP


하지만 지금은 음악적으로도 흥미롭다. 거대 기획사에 소속되거나,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작곡가들이 만들어내는 비트와 소스들도 흥미롭다. 그것은 대부분 창의적이기도 하고 때때로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그런 변화들이 한국 대중문화에서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이 벌어지고 있다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진정성을 거론하고, 어떤 기준을 들이대고, 그걸로 이쪽 편과 저쪽 편을 나누는 건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대중문화의 발전(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을 위한다면 더더군다나 유해한 일이기도 하다. 그건 문화 수용자들에게 어떤 가이드도 제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는 발언자들의 권위만 챙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개인의 자기표현이자 산업의 결과물이다. 그 양쪽의 균형을 지키지 못할 때, 비평은 보다 나쁜 쪽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모두 음악 주변의 환경과 산업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은, 결국 동등하다. 그런 관점이 수용자로서의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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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3:15

이재규 PD에게 듣는 ‘베토벤 바이러스’

“TV 보는 동안 시청자들이 행복했다면 만족한다”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조금은 지쳐 보였다. 지난 18일 만난 이재규 PD는 드라마가 끝났지만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고, 밀렸던 집안일을 처리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 떠나는 3개월간의 뉴질랜드 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 시원섭섭하다”는 이재규 PD에게 아직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들었다.

1악장. “처음엔 쉽게 생각했죠”

처음엔 쉽게 생각했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캐릭터만 잘 살리면 쉽게 찍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장소도 비교적 단조로웠다. (〈다모〉나 〈패션 70s〉에 비해) 이번엔 즐겁고, 편하게 일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국, 제일 힘들었던 작품이 되고 말았다.

    


▲ 이재규 PD ⓒMBC


2악장. “그러다 큰 코 다쳤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4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등장했다. 연기자들은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오보에 등 생소한 악기를 불과 몇 개월 만에 실제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익혀야 했다. 연주하는 장면 하나를 찍는데도 24시간 이상 걸렸다. 연기자들의 손동작과 음악을 일일이 맞추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이재규 PD는 “음악 촬영을 하게 되면 3분짜리 한 곡을 위해 사운드 25개, 비디오 25개 트랙이 나온다”며 “1~2초짜리 컷을 많이 쓰다 보니 그 데이터를 보고 편집을 한다는 것이 보통 초인적인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작업이 쉽지 않은 만큼 회가 거듭될수록 꾀가 늘거나 시간에 쫓겼을 법도 한데 〈베토벤 바이러스〉는 끝까지 대규모 공연 장면을 이어갔다. 그리고 ‘초반에 몇 번 공연하는 장면이 나오다 사랑 이야기로 빠지겠지’ 하던 일부의 우려를 씻어냈다.

3악장. “훌륭한 대본, 연기자, 스태프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회가 거듭될수록 〈베토벤 바이러스〉를 향한 시청자들의 지지는 커졌다. 여러 악기들이 모여 완벽한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출자를 포함한 스태프, 배우, 작가의 ‘협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PD는 “기본적으로 좋은 대본이 있었고, 여기에 배우들의 좋은 연기, 스태프들의 헌신적 노력이 모두 어우러져 잘 된 것 같다”며 “당초 비주류들이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아웃사이더가 되는 이야기를 하려던 의도도 거의 이뤄진 것 같다”고 평했다.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그려졌다. 주인공 두 세 명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 각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그렸다.

이 PD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뭉쳐져야 전체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까워진다”며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음악으로 인해 희망을 갖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MBC


4악장. “강마에는 기본적 전형에서 벗어난 인물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한 여러 인물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사람은 역시 지휘자 강마에(강건우)였다. 직설적이고 독선적이면서도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강마에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강마에의 독특한 말투 역시 화제가 됐다. 

이 PD는 “강마에 캐릭터는 드라마 주인공이 가져야 된다는 기본적 전형에서 많이 벗어난 인물이었다”며 “만날 먹던 밥에 먹던 반찬 아니니 일단 호기심을 가졌고, 그래서 오히려 더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이나 행동에서 점점 조심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강마에는 하고 싶은 말, 해야 되는 말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가감 없이 얘기하죠. 그런 것을 보고 시청자들이 대리만족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생각해요.”

이 PD는 강마에를 연기한 탤런트 김명민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그는 “김명민 씨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며 “이전 드라마까진 개인 스태프랑 농담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계속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다. 생활 전부를 드라마에 쏟아 붓는 사람이고, 너무 충실한 연기자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 이 PD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드라마를 보고나서 자신의 삶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였다면 좋겠다”며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이 조금이나마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며 는 바람을 밝혔다.

    


▲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MBC

5악장.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음식 주고 싶어요”

〈베토벤 바이러스〉는 단편을 빼면 이 PD에게는 세 번째 작품이다. 퓨전 사극 〈다모〉를 시작으로 〈패션 70s〉를 거쳐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이 PD는 세 작품에서 모두 다른 색깔을 드러냈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를 묻자 이 PD는 “천성이 그런 것 같다”며 “시청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색다른 음식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가 연출한 단막극 세 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MBC 베스트극장 〈나비〉, 〈소림사에는 형님이 산다〉, 〈이영숙 사진관〉이다.

“세 작품이 각각 너무 달라서 아마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예요. 새로운 것을 해야지 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쌓이다 보면 저의 색깔이 보이지 않을까요?”

세 작품 내리 좋은 성적을 얻은 것에 대해 스스로 “억세게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 PD는 “그러나 이 행운이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점 불안하기도 하다”며 “한두 번쯤 실패하더라도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들이 그랬듯 용기를 갖고 다시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연출자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PD는 다음 작품 계획에 대해 묻자 “영화도 고려하고 있고, 여러 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단은 여행을 떠나 푹 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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